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Oct 01. 2021

올해 해서 잘 안된 것들을 모아봤다.


2021/02/21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 공모전 탈모르파티 투고, 실패


2021/07/17 윌라 오디오북 투고, 실패


2021/08/21 모두의 전람회(생애 첫 전시)지원 실패


2021/09/17 의정부 리버카운티 청약 당첨후 부적격


2021/09/30 MBTI 도서 제안 받았다 시안 통과 못함, 실패




올해는 많은 것을 도전했고 과분하게 얻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많이 실패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좌절을 경험할 때마다 쌓이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 없다. 심리학에서는 효능감이라고 부르는 게 있다. 어떤 성공 경험이 자신감이 되어 계속해서 연쇄적으로 선순환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나는 최근 들어서 효능감을 많이 상실했다. 머릿속에서는 '아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지만, 그때그때 받은 스트레스가 그렇게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잠깐 사라질 스트레스라면 차라리 다행이다. 이게 촉매가 되어 자꾸만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트리거 라고 할까? 무의식에 몰아놓고 외면했던 소쩍새 우는 사연들과(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 있을까마는) 이대로 도태될 것만 같은 근본적인 불안감이 문틈 사이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헤르만 헤세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글은 오로지 자신을 위한 정원과 같다고 말한 적 있다. 그것참 외롭고, 지옥 같은 정원이 아닐까 싶지만.




이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문제도 큰 것 같다. 문제의 해결 방식에는 문제 중심의 대처 전략과 정서 중심의 대처 전략이 있는데, 문제 중심의 대처 전략은 문제를 인식하고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능력을 기른다거나, 돈을 번다거나, 권력을 획득하는 등 직접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정서 중심의 대처 전략은 관계를 통해 위로를 받는다거나,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지지를 얻는 등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다. 무엇 하나 우월한 것은 없다. 둘 다 훌륭한 대처 전략이다.




나는 밖에 나가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직업군인을 택했고, 전역해서는 거기서 얻은 효능감으로 서울에 상경해 독립했지만, 문제 해결 방식이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라 끝내 고민하는 중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이라도 살뜰히 잡아볼 걸 그랬다고 후회하는 아쉬운 사람들과 순간들이 많다.




내가 최근 문제 해결의 단초를 잡았던 사건은 '청약 당첨' 정도였다. 3억짜리 아파트에 당첨되었는데, 호재가 깔려있는 의정부라 피(계약금만내고 분양권을 팔아 이익을 내는 것)만 받아도 내가 8년간 쉼 없이 일해 벌어 모은 돈보다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부적격으로 당첨이 취소되기 전까지는..!




저 일이 있고도 입맛을 잃는 일 없이 회사에서 점심을 잘 먹었고, 저걸 소재로 소설까지 한편 써봤다. 저런 일조차도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누가 내 돈을 훔쳐 간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근본적인 문제는 보다 감성적이고 정서적인 곳에 있다. 이렇게 또 이렇게 문제 중심의 대처 전략으로 빠져들고 만다.




이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지만 이미 굳어버린 경향성을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아주 잠깐 외향형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돌아와 버렸다. 이게 나의 천성인지, 아니면 코로나 거리 두기 이전부터 연고 없는 서울에 상경해 오랜 기간 '비 자발적 거리 두기'상황에 처했던, 경험의 관성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적 관종은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그것은 아마도 과하게 억압된 리비도가 펄펄 끓는 기름과 같고 거기에 '어떤 계기'가 물 붓듯이 쏟아지고 나면, 모든 걸 승화시키고 폭발하는 것이다.




나는 내 문제를 '사랑과 돈에 굶주렸다'라는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모든 상황이 명확해 보이는 대신 나는 완전히 입맛을 잃었다. - 최정화 <<지극히 내성적인>> 중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이다.




최근 오징어 게임을 보면서 에반게리온이 떠올랐다. 잔혹함에 어울리지 않는 밝고 즐거운 음악, 잔혹한 상황에서 어떻게든 인간성을 유하려는 중년 신지 이자성, 프리메이슨이나 제레를 연상시키는 vip 등등... 비극적인 상황에서도 인간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 뭐랄까,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었다.




언어지능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언어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기암시나 설득에도 유능하다고 한다. 흔히 말하는 자기합리화의 고급 버전이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설득할만한 논리를 구성해서 언어화한 다음 그것을 도구처럼 쓴다. 잘못 쓰면 똥고집이고 도그마지만, 올해 책을 내면서 그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내 책은, 나보다 낫다. 마치 세이브포인트처럼 느껴진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얼추 소설을 네 편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내년도는 신춘문예 등단도 해보고 싶다. 아직 해보고 싶은 게 많다. 그리고 나만의 정원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유원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