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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Oct 26. 2022

대문호 마루야마 겐지와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 외'

fr. 예전에 쓴 리포트



  혹시 여러분들은 마루야마 겐지라는 작가를 아시나요? 아마도 국내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만큼 인지도가 높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문학계에서는 꽤나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해양 통신사일을 하면서 익힌 통신문체로 소설을 써서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최연소로 56회 아쿠타가와 문학상 수상한 것이지요. 비슷하게 헤밍웨이는 대서양 케이블을 통해 기사를 전송해야 했던 외국 특파원이었습니다. 마루야마 겐지와 헤밍웨이는 '전신적(telegraphic)'문체를 소설에 도입했어요. 두 사람 모두 마초에 하드보일드한 문체로 소설을 썼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마루야마 겐지는 좀더 탐미주의적이고 심미적인 방향으로 문체를 전향합니다. '해와 달과 칼'을 쓰면서는 작가 스스로  "이 아찔한 이야기에 걸맞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20년 세월을 보냈다."라고 인터뷰했을 정도로 해와 달과 칼은 무척 화려한 문체의 소설이며, '납장미'에 와서는 농염하다 싶을 정도로 깊이있는 문체를 보여주고 있어요.


야쿠자 아님


  그는 『산자의 길』에서 소설가가 된 이유를 자세히 밝힙니다. 일본 나가노현에서 고등학교 국어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몇권의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는 당시 일본 문학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무기력한 인텔리의 맥없는 주절거림’ 


  그런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은 멜빌의 『백경』이었습니다. 그는 백경의 영향으로 해양통신사가 되려고 마음먹었지만, 낙제를 반복했고 1963년 도쿄의 한 무역회사에 취직했습니다. 1966년 회사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위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름의 흐름』을 쓰게 되는데 이것이 제 23회 『문학계』신인문학상 수상, 56회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로 수상하는 계기가 됩니다. ‘기적’이라는 회사 동료의 반응과 ‘뭘 베껴 썼느냐’는 아버지의 반응에 크게 실망한 마루야마 겐지는 사회에 어떤 기대도 버리고, 이후 어떤 문학상도 거부한 채 고향 오오마치에 살면서 집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생명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어 호평을 받았던 『물의 가족』, 무명 무사의 치열한 삶을 다룬『해와 달과 칼』출소한 늙은 야쿠자 보스의 귀향과 죽은 줄 알았던 딸과의 재회, 젊은 야쿠자와의 대결을 다룬 『납장미』정박아의 시선으로 사물과 인간의 경계를 해체하고 온갖 사물의 시점을 소설에 도입한 『천일유리』등 주옥같은 작품이 많지만 문학과 삶, 그리고 작가에 초점을 맞추어 산물을 중심으로 리포트를 꾸려볼까 합니다. 제가 주목한 책은 세 권의 산문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지 않는다』, 『그러히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 울리 없다』입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단연 반사회적이라 할 만큼 문단과 세상에 거리를 두고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노년에 이른 지금에도 청년 못지않은 기백으로 마치 대나무를 보는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는 작가이자 사상가이며, 그의 사상은 ‘올바른 삶이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저자마루야마 겐지출판바다출판사발매2017.06.12.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의 소제목을 살펴보면 1장. 부모를 버려라, 그래야 어른이다 부모란 작자들은 한심하다 / 태어나 보니 지옥이 아닌가 별 생각 없이 당신을 낳았다 / 낳아 놓고는 사랑도 안 준다 노후를 위해 당신을 낳은 거다 / 그러니 당장 집을 나가라 집 안 나가는 자식들은 잘못 키운 벌이다. 2장. 가족, 이제 해산하자 가족은 일시적인 결속일 뿐이다. 부모를 버려라 당신을 직시하고 뜯어 고쳐라 / 밤 산책하듯 가출해라 내 배는 내 힘으로 채우자 / 직장인은 노예다. 3장. 국가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 국가는 당신을 모른다 / 바보 같은 국민은 단죄해야 한다 영웅 따위는 없다 / 국가는 적이다 / 분노하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다 4장. 머리는 폼으로 달고 다니나 국가는 적당한 바보를 원한다 / 텔레비전은 국가의 끄나풀이다 머리가 좋다는 것은 홀라 살아가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어른애’에서 벗어나라 / 인간이라면 이성적이어야 한다 부모의 과도한 사랑이 자식의 뇌를 녹슬게 한다 5장. 아직도 모르겠나, 직장인은 노예다 엄마를 조심해라 / 남들 따라 직장인이 되지 마라처럼 보편적으로 쉽게 공감할 수도, 칭찬할 수도 없는 내용들로 빼곡하지만, 그 실존주의적인 태도가 마루야마겐지로 하여금 일본 문학에서 그를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의 입지를 갖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본의 문화는 집단주의적인 성향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마루야마 겐지’같은 작가가 나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주인공 ‘네오’처럼 현실의 안락과 명예를 거부하고 오로지 삶의 본령을 쫒아 행동하는 고독한 철학가와 같은 풍모를 더합니다.



 3포 세대를 넘어 5포, 현재는 n포 세대라고까지 불리는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 무기력함은 어쩌면 이런 시스템을 너무 맹신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가 소설이나 산문을 통해 일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개인의 자존과 자립이며, ‘분노하지 않는 자는 죽은 것이다’라는 명료한 메시지를 제시합니다. 


  ‘불끈거리는 혈기와, 극적인 사상을 꿈꾸는 불온한 감정과,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정신의 갈등은 다 어떻게 한 것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싶다는 강한 소망과, 자신에 대한 중대한 오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몸으로 부딪치는 두둑한 배짱과, 파멸을 각오하고서 정신세계의 변경으로 떠나 보려는 결의는 다 어디다 내다 버렸는가.’2 2 마루야마 겐지,『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65p 같은 날카로운 필치가 과연 백미입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비슷하게 가족과의 결속이 단단한 편입니다. 가장이거나 꼭 가장이 아니더라도 제일가는 가치로 ‘내 가족’을 드는 것은 보편적일 것입니다. 이 책은 어쩌면 금기의 영역일 수 있는 가족애에 대해서도 찬물을 들이붓습니다.



  그는 자식을 마치 소유물처럼 여기는 태도를 혐오합니다. 낳았을 뿐인데 ‘학교며 직장이며 결혼상대며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자신이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달려야 한다고 믿는’모습이야말로 뻔뻔스러운 것이며, 진정한 부모자식 사이가 되기를 바란다면 있는 그대로 놓아주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입니다. 


  허전하다는 이유로 자식을 껴안고 싶어 하는 부모에게는 넌지시 ‘그러면 서로에게 좋지 않습니다. 자기 인생은 있는 힘껏 혼자 사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며 밀쳐 내야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부모 자식이 다 함께 타고 남은 재 같은 가엾은 인생을 살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다소 극단적이지만, 최근 문학의 동향을 보더라도 ‘가족’과 ‘폭력’은 커다란 화두입니다.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가 가족 이데올로기적이라면 백가흠이나 편혜영, 황정은 작가의 경우는 새로운 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애써 보지 않으려했던 모습,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마루야마 겐지는 그것을 가장 직설적으로, 산문의 형태로 제시합니다.


  우리가 문학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교과서나 사회는 결코 가족을 버리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의 구동계통으로서 최선을 다해 기계처럼, 상식과 법을 벗어나지 않는 모범시민으로 살아가야할 무슨 의무가 있는 것처럼 믿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도르노는 합리성과 주관성에 대한 비판과 함께 여러 가지 화두를 제시합니다. 


  실제 현실에는 갈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답게 미화, 포장하는 것은 작품이나 예술이 아닌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입니다. 버지니아 울프는 현대인의 삶을 ‘산송장’에 비유했습니다. 이는 마루야마 겐지 역시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카프카는 형식의 파격을 통해 현대 시대의 부조리를 폭로한 천재이며, 피카소가 그렇듯 예쁘거나 편안하지 않더라도 예술로서 가치를 지닙니다.



                      나는 길들지 않는다저자마루야마 겐지출판바다출판사발매2014.10.06.


  『나는 길들지 않는다』는 『인생따위 엿이나 먹어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산문집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젊음을 죽이는 적들에 대항하는 법’입니다. 하이데거 철학 중 ‘죽음에의 선주’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책은 ‘어느 참새의 위대한 죽음’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즉 그들의 삶은 ’완벽하게 자립한 젊음‘이라는 필수 조건 없이는 찬란하게 빛날 수 없는 것이다. 자립한 젊음에서 시작해 자립한 젊음으로 끝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생애이다. 그렇기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마주치든 그 생명이 그토록 생기발랄하고 아름다우며,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순수한 기쁨으로 가득한 것이다.(중략) 그에 반해, 인간의 마지막 모습은 얼마나 형편없고 꼴사나운지 모른다. 가령 평균수명을 넘은 나이까지 산 자가 최고급 설비를 갖춘 1인용 병실에서 친족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미소를 머금고 죽음의 길을 떠났다 해도 그렇다.(중략) 자신의 힘으로 1미터도 움직일 수 없는 노쇠한 몸을, 타인의 도움과 투약과 수술과 방사능과 간병 등 온갖 것에 의존해 간신히 이 세상에 붙을어 두고 있는 자에게 무슨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오래전에 죽은 목숨이다.’ 33 마루야마 겐지, 『나는 길들지 않는다.』프롤로그  


  작품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와 대동소이 하지만, 제 4장 ‘목적이 없는 자는 목적이 있는 자에게 죽임을 당한다’에 이르러서는 국가나 종교, 가족이 아닌 ‘내 안의 의존’을 떨쳐낼 것을 권하는 강령한 메시지가 담겨있습니다. 나의 가장 큰 적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에게 자립한 젊음을 좌우하는 것은 의지의 힘이며, 의지야말로 인간을 다른 동물과 차별화 하는 위대한 능력입니다. 자신의 품 안에 잔뜩 껴안고 있는 의존을 떨쳐내는 것, 어쩌면 마루야마 겐지의 사상체계는 불교의 그것과 유사한 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만 그의 의지는 산자의 욕망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그 비뚤어진 형태인 중독이나 궁극적으로 삶을 파괴하는 해로운 습관들을 혐오할 뿐 삶 자체를 오욕으로 보고 부정하는 염세주의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저자마루야마 겐지출판바다출판사발매



 그는 끊임없이 추구하는 사람입니다.『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는 앞선 두 권의 산문집보다 부드럽고 미학적입니다. 이 산문집은 마루야마 겐지가 스스로 정원을 가꾸면서 느낀 것을 옮겨놓은 작품입니다. 그에게 정원은 사적인 소우주 이며 소설쓰기와 동등한, 어쩌면 그것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예술의 경지입니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봄의 들놀이가 수만 권의 책을 읽는 것 보다 낫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노구의 몸으로 300여평의 정원을 관리하는 것은 과연 중노동 이며, 미적 감각과 섬세함이 필요한 작업이지만, 그의 이성은 버릴 것은 버리고 채울 것은 채우면서 하나의 온당한 소우주를 만들어냅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사뭇 귀기스러운 것이고 몇 사람은 이미 농담 반, 걱정 반으로 그런 지적을 해 준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럴 때 마루야마 겐지는 말합니다.


 ‘우선 말해두자면 나는 파괴자가 아니다. 다툴 여지가 없는 창조자이며 개조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러 가지를 평균 정도만 잘 하는 걸로 만족하는 타입은 아니다. 가치가 있는 것 같은 일을 철저히 해야만 하는 타입으로, 사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나 자신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확신한다. 소설이든 정원 가꾸기든 나는 그것을 통해 본의 아니게 이 땅에 정착하고 있는 나 자신을 찾고, 존재 이유를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마음의 갈증, 이성의 졸음, 인간 정신에 대한 뿌리 깊은 불만에 시달리고 있는 자아로부터 벗어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44마루야마 겐지,『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100p


 세 권의 산문집을 통해 살펴본 마루야마 겐지는 독불장군 같으면서도 한없이 미를 추구하는 탐미주의자적인 면모를 동시에 갖춘 괴인입니다. 산문의 특성상 그의 사상이나 철학이 비교적 여과 없이 드러나기 때문에 거부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는 소설가로서 ‘살아있는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그가 바라는 세계를 강렬하게 호소합니다.   


 70대 중반의 원로작가로 청년과 같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는 실존주의에 관한 독보적인 존재가 아닐까 합니다. 투쟁하듯이 살아온 문인의 삶에 적은 이데올로기도 정치도, 문단도 아닌 자기 자신이며, 그렇기에 세상의 명예를 견분처럼 여기고 자기본위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1 두산백과

2 마루야마 겐지,『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65p

3 마루야마 겐지, 『나는 길들지 않는다.』프롤로그

4마루야마 겐지,『그렇지 않다면 석양이 이토록 아름다울 리 없다』1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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