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Aug 07. 2020

직관에 대한 단상 feat. 라스푸틴

  직관이 강하면 종종 투원반을 하게된다. 운이 좋으면 비거리만큼 통찰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가 더 많다.  천재와 미친놈은 한끗 차이인게 천재는 a에서 시작해서 b, c....z까지 갔다가도 다시 a로 되돌아 오지만 미친놈은 중구난방으로 계속 나아갈뿐 되돌아올줄 모른다. 가기도 전에 알았다. 앞서 알고있었다고 자만하다가도 종종 박살나는 경우가 있다. 작두를 탔는데 발에서 피가나는 상황과 비슷하다.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너무 커서 착륙할때 바닥에 구르는 경우가 많다. 경계를 넘고 이면을 뒤집어 보는 능력은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최대한 멀리가는데 관심이 있다면 예술가가 철학가보다 낫다. 성실할 필요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기 때문이다.(도낀개낀이긴 하지만..) 요승 라스푸틴은 자신에게 치유능력이 있다고 진심으로 믿었다. 결과는 작두에 발을 베이는 것 보다 좀 심각했다.



  라스푸틴은 20세기 초 제정러시아를 박살 낸 요승으로 알려져 있다. 라스푸틴은 특유의 공감능력과 카리스마, 치유능력(?)과 동물적 영민함으로 차르(교황/대통령/대법관/킹/마제스티/충무공이 합쳐진 자리)의 가족, 특히 황후 알렉산드라의 비호를 받으며 권력을 휘두르는 비선실세가 된다. 


  300년을 유지해온 로마노프왕조와 제정 러시아는 1차 세계대전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무너저버린다.(이런거 보면 500년을 버틴 조선왕조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제정 러시아의 몰락과 라스푸틴을 연관시키는 것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각종 스캔들과 기행, 신비주의자, 실세로서 그가 당대 러시아인들에게 받았던 관심은 어마어마했다. 

  라스푸틴이 살던 시대의 러시아는 문맹률 80%에 육박하는 곳이었다. 특히 시베리아 소작농 출신인 그는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몹시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글을 깨우친다. 당시엔 글을 모르더라도 웅변이나 설교 능력이 있으면 종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지지자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 라스푸틴은 매우 깊은 눈빛의 소유자였고 선지자적 매력이 있었다. 그의 눈은 푸른색, 회색, 심지어 회색과 갈색의 앙상블이라 표현되기도 했으며, 잠깐이나마 그의 신실함이나 영적 능력은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책에는 라스푸틴의 고향과 어린 시절, 당대 러시아의 분위기(특히 시베리아와 수도의 차이), 순례자 라스푸틴이 비선실세가 되어가는 과정과 라스푸틴의 몰락-제정 러시아의 몰락 순서로 아주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다루고 있다. 책을 쓰기에 앞서 이미 발간된 서적, 라스푸틴에 대한 연극, 영화들은 이미 섭렵한 것으로 보이며 서두에서 이 자료들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진행한다. 모두 다루려면 끝이 없으니, 책을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지점만 몇 가지 골라본다.


러시아 맥주 라스푸틴의 로고

  사진에서 보다시피 라스푸틴은 매우 강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눈빛 외에도 키가 193cm라는 설이 있는데, 책에서는 라스푸틴의 시신을 부검한 코소로토프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의 키는 175cm였다고 한다. 그 외에 신체적 특징이라면 그의 존슨(...)이 매우 크고 아름다웠다는 설이 있다. 현재는 잘려 방부 용액에 담긴 채로 러시아 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신뢰할 수 없는 것이 라스푸틴의 존슨 표본은 총 3개였고 그중 하나는 해삼으로 밝혀졌고 하나는 대형동물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그 외에도 청산가리가 든 포도주를 마시고 총을 세발이나 맞았는데 강물에 던져질 때까지 살아있어서 사인은 익사였다던가 하는 괴담이 있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독이든 포도주를 마시고는 복통을 호소했으며,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한 것으로 나와있다. 

  꽁꽁 언 라스푸틴의 사체를 강에서 건지던 날 러시아 사람들은 대야를 들고 언 강을 찾아왔다고 한다. 라스푸틴의 신통력, 영성이 스며든 물을 퍼가기 위해서였다고 하니, 현재까지 전해지는 괴담이 이러한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종합하면 그의 신체적인 부분, 불가사의한 생명력까지 상당히 과장된 부분이 있다.(마치 관우가 키가 9척이고 82근(45kg) 짜리 언월도를 휘둘렀다. 화타에게 뼈 수술을 받는 동안 바둑을 두었다 와 같은 맥락이다.) 오랜 순례(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운동이다)와 시베리아 소작농 출신 특유의 탱킹 능력이 있었을 뿐 총에 머리를 맞으면 죽는 일반적인 인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방탕한 라스푸틴이 황후와 잤다는 식의 지라시가 나돌았는데,  라스푸틴이 황제와 황후를 대외적으로 이용했을지언정 1:1 관계에서는 황후가 갑 라스푸틴이 을이었다. 반대로 보면 황후도 라스푸틴을 이용했다. 그녀는 매우 내성적이고 내적, 종교적 신념이 강하며, 사뭇 이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라스푸틴은 러시아 황실의 저주와도 같았던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논란이 있지만 효과는 있었다) 하면서 황후와 공주들의 친구 겸 카운슬러를 겸했다. 

  제정러시아 말기 차르는 정치에서 거의 손을 놨다. 연패 중인 러시아군을 지휘하겠다고 동부전선으로 떠난 차르는 자신의 자리에 알렉산드라를 세워놓았다. 차르는 교황/대통령/대법관/킹/마제스티/충무공이 합쳐진 자리이기 때문에 대체가 불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벌인 어이없는 패착이었다. 러시아 내각은 만장일치(러시아 역사상 처음이었음)로 차르의 참전을 반대했지만, 알렉산드라와 라스푸틴의 부추김에 니콜라이 2세 스스로도 차르는 신이 내린 자리이므로 대체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러시아 국민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따를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폐하의 직관과 황후의 조언을 따르십시오


  이 말에서 라스푸틴의 특징이 드러나는데, 라스푸틴은 다른 사람도 모두 자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지냈던 것 같다. 유년시절에는 '도둑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에 그 이유를 보탰는데 '마음의 눈으로 보면 훔친 사람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했다.(실제로 아버지의 말을 훔친 범인을 한 번에 찾기도 했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영성과 직관에 자신감이 있었다. 그 자신감으로 하여금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추종자를 만들었으며 마침내 러시아 권력의 정점인 차르와 황후에게까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하지만 직관, 즉 감과 이상한 종교적 믿음(차르가 참전하면 승전보가 울릴 것이라는 둥) 만으로 제국과 같은 나라를 운영하는 것은 매우 무모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차르가 동부전선으로 떠난 이후 1916년 러시아 내각은 그야말로 박살이 나기 시작한다.

  알렉산드라는 매우 신실한 사람이었다. 순진한 구석도 있었던 것 같다. 그녀는 아주 일을 열심히 했고(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부상병을 돌본다거나) 라스푸틴과 함께 내각을 쥐었다 폈다 했다.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에게는 친구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그와 알렉산드라는 라스푸틴을 견제하기도 했고, 특히 라스푸틴은 알렉산드라와 이야기할 때 주로 이야기를 듣고 그저 동의하면서 그 이야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종교적 살을 입혀주었다. 이러한 행위는 알렉산드라에게 정치적 입지를 제공했다. '내가 이러이러한 생각을 했는데 라스푸틴도 그 말이 이러이러해서 맞다고 했어요'라는 식의 합작이 이루어진 셈이다. 라스푸틴도 황후의 눈치를 보고 비위를 맞춰준 다음 유명세와 권력을 모두 이용했다.

  직관이 강하면 종종 투원반을 하게 된다. 운이 좋으면 비거리만큼 통찰할 수 있지만, 실패할 때가 더 많다. 그의 영성은 한때 빛을 발했지만, 1916년에 이르러서는 최면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알코올중독에 방탕한 생활을 거듭하고 러시아 사람들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람이 망가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때로는 성자의 얼굴을 하면서도 가끔은 농민의 얼굴을 했고 뒤로는 탕아와 같은 행동을 일삼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라스푸틴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었던들 러시아가 무사했을까? 그의 악마적 / 오컬트적 이미지가 큰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아닐까? 여러 의문이 남지만 이쯤 갈음하고 글을 마친다.

작가의 이전글 MBTI 파다 찾아본 성격이란 무엇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