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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Aug 09. 2020

네 멋대로 해라 : 장 뤽 고다르 영화리뷰

거장의 꼴사나운 코미디

내로남불이란 말이 있다. 내가 하면 로씨아 혁명, 남이 하면 불란서 혁명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68년 프랑스 혁명은 기존의 '혁명'들과는 명백한 차이점이 있었다. 퇴폐적이고, 발칙하며, 전복적이고, 하위문화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사춘기 같고, 목적이 불분명하다.



  사실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란 말이지만, 세상은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네 멋대로 살아라'의 장 뤽 고다르 역시 세상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며, 지적이고, 농담을 좋아하고, 시니컬하며, 거칠고, 젊음을 사랑한다.


"모든 게 다 정치적이야, 영화에서 정치적인 요소를 빼는 결정도 정치적이야 아닌 척하는 게 웃긴 거지"


그는 1967년 '중국 여인'이라는 영화에 배우로 캐스팅한 안느와 사랑에 빠진다. 고다르는 안느에게 작품에 '즉흥성과 젊음'을 부여한다고 칭찬한다. 안느는 매력적이며, 헌신적이고 고다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평범하다.


  장 뤽 고다르의 '중국 여인'이 철저히 실패하고(대학생도, 중국인도, 심지어 마오쩌뚱도 내 영화를 좋아하지 않아!) 1968년 68혁명이 일어나면서 고다르는 영화와 현실 사이에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나는 늙은이들이 싫어, 내가 늙는다면 나는 나를 혐오할 거야"



  영화나 소설에서 두 번 이상 나오는 장면은 중요한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고다르의 안경은 자꾸 깨진다. 시위에 앞서서 2번 박살 나고, 68년 칸영화제 중단 요청 간에도 인파에 밀려 박살 난다. 이것저것 합해서 한 5번은 깨진 것 같다. 고다르는 그 어두컴컴한 영화관 안에서조차 저 안경을 쓰고 나타나는데 이는 위대한 영화감독의 남다른 시선과, 그 시선이 자주 빻았음을 나타내는 게 아닐까 싶다


고다르의 주변 사람들은 고다르에게 '예전처럼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달라'라고 주문한다. '현실에는 슬픈 일이 넘치도록 많은데, 영화관에서까지 그것을 보고 싶지 않다'라는 에밀(운전대를 잡고 있다)의 말에 대해 고다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를 촌뜨기라고 모욕한다. 안느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고다르의 말과 행동에 서운함과 불안감을 느낀다.


"영화가 왜 재밌어야 하나"



20세기 예술이 19세기를 빠져나오면서 영화인은 실험적인, 아방가르드 영화를 찍기 시작했고 소설가는 주제도 없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실용적 가치, 돈, 심미적 추구와도 거리가 멀었다.(이 부분은 68혁명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 그들의 움직임은 오직, 파괴에 목적을 둔 것 같았다. 68혁명을 경험한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를 '마조히즘'에 비유하며 "폭력적인 세계를 믿고 살아가기 위해서"한 행동으로 정의했다. 장 뤽 고다르도 같은 맥락의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예술 / 영화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세계를 가장한다면, 이 부조리한 세계에 부역할 뿐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혁명도 좋은데 나를 좀 사랑해 줬으면 좋겠어


  전통적인 예술과 전위(아방가르드)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예술 카테고리 안에서도 종교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아방가르드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특정 작품에 오래 머무르며, 다른 작품에 상당히 비판적이고 '당신 작품 외의 나머지는 다 쓰레기'라는 태도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 기존의 미학을 지닌 전통 예술은 단지 예술의 조수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그에 비해 전통적인 예술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수용적이고 예술을 하나의 여흥/여가와 같이 생각한다. 전자는 후자를 나이브다하고 비판하며  후자는 전자를 공격적이라고 비판한다.


  장 뤽 고다르는 안느를 사랑하면서도 예술이나 삶에 수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경멸한다.(경찰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는 것까지 꼬투리 잡는다) 여기서부터 고다르는 예술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주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게 이 영화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위대한 예술가이자 철학가인 그의 삶의 이면에 하찮고 지질한 일들이 광안리 해수욕장의 모래알 이상으로 잔뜩 깔려있다.


두 사람의 연애는 로맨틱하지 않다. 멜로 영화와는 거리가 멀고 버드맨, 위플래쉬와 비슷한, 고다르의 예술관을 조명하는 전기영화에 가깝다. 고다르는 영화에 재능이 있었을지언정 사랑에는 별 재능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신은 존중과 사랑을 헷갈려 해'라는 '버드맨'의 대사가 생각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특히 안느의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불쾌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몇몇 장면은 기분이 아주 드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영화를 좋게 보는 이유는 흔치않게 68혁명을 아주 직접적으로 드러내 보여주었고(그 허무함까지 포함하여) 예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영화로는 '킬 유어 달링'을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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