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데 부르크의 유니콘

창작에 대한 단상

by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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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3년 독일에서 털코뿔소의 화석이 발견되었다. 부분 화석으로 엮은 그것은 누가 보더라도 한심한 모습으로 전시장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괴상한 모습이지만, 어쩐지 정이 간다. 수 세기에 걸쳐 일종의 예술작품처럼 소비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문예창작학과 재학시절 완벽주의에 빠진 적이 있다. 놀랍게도 그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소설을 한 편도 쓰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서 시도는 많이 했지만, 완결까지 간 경우가 거의 없었단 말이다. 내 작품은 한없이 모자라 보였고 주변의 평가도 좋지 못했다.


합평은 소설 하나를 놓고 여러 명이 평가하는 자리다. 평가가 좋았던 적이 거의 없었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느니 '작가의 감상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누가 있냐'느니 하는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이미 세상에 좋은 글을 쓰는 작가가 많은데 내가 꼭 글을, 소설을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소설을 써온 누나가 합평이 끝나고 한 말이었다. 문체부터 스토리, 캐릭터까지 두루두루 욕을 먹다 보니 아주 심각하게 자신감이 꺾여버린 모양이었다.


그땐 나도 '욕을 먹는 일'은 수준에 이르기 위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겼고 그걸 견디지 못하면 포기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이미 세상에 나보다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재능이 없으면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게 맞다'라는 생각이었고 글쓰기, '문학은 특정해 말하기 어렵지만 어떤 재능, 자격을 갖추어야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였다.


그때는 잘 쓰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욕심을 꺾었다. 그리고 여러 사례에서 꼭 처음부터 천재성이나 재능, 특별함을 가져야만 책을 쓰거나 글, 소설, 예술을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는 세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주말마다 그림을 그렸다. 아카데미의 화가들은 그를 세관 공무원, 일요화가 등으로 부르며 어설픈 딜레탕트(전문가적인 의식이 없고 단지 애호가(愛好家)의 입장에서 예술 제작을 하는 사람)로 볼뿐이었다. 그림체도 그림의 주제도 무엇 하나 기존과 같지 않았다. 실제로도 기초적인 원근법과 묘사, 붓 터치가 많이 서툴렀다.


앙리 루소는 상심하는 일이 없었다. 꾸준히 식물원을 드나들며 주말마다 자신의 그림을 그렸다. 자신이 천재라고 확신했고, 자기 그림에만 몰두했다. 다시 말해 아카데미나 주변의 시선을 염두에 두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꾸준히 그림을 그리던 앙리 루소는 마흔을 넘어 오십이 다 돼서야 세관 공무원이 아닌 '화가'로서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특히 피카소의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피카소는 앙리 루소의 그림을 많이 수집하게 된다. 아카데미의 타성에 젖지 않은 순수함, 상상 속 경험을 그리는 화가라는 인정과 함께 야수파와 초현실주의의 시초로 자리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야수가 처발라 놓고 간 거 같다"라는 조롱에 가까운 멸칭이 '야수파'라는 하나의 개성과 장르로 굳어진 사례다.


'글은 아무나 쓴다.'


만약 합평을 하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그 누나에게 '의견은 듣되 개의치 말고 계속 본인의 글을 쓰시라'라고 말해드리고 싶다. 누군가 '글은 아무나 쓰냐'라고 묻는다면 먼저 기초적인 한글을 떼면 쓸 수 있다고, 일기를 쓸 수 있다면 책도 쓸 수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에 혼자 쓰고 혼자 보거나, 아예 글쓰기를 접으셨다면 꼭 다시 글을 쓰시고 포스팅, 칼럼 또는 책으로 만들어 공유하면 좋겠다. 설령 부족한 부분이 있더라도 좋다. 영국의 밴드 오아시스의 노엘 갤러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건 직업을 위한 활동이 되어서는 안 돼. 네가 즐거워서 해야지. 그리고 5년쯤 지나서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해도, 뭐 어때? 그냥 구석 스탠드에 세워놓기만 해도 보기에 멋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