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큐레 Nov 15. 2023

나라는 책

오늘은 룸메이트와 10년 후 내가 40대가 되었을 때는 어떤 모습일까 하는 이야기를 나눴다. 마케팅 쪽으로 취업을 했다면 수치에 대해 깐깐하게 따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고, 작가로 성공했다면 상당히 오만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며, 어쩌면 먼 과거의 기억(책을 냈다는 사실)에 의탁한 채 배달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실 저는 작가거든요'이야기하는 실없는 사람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했을 수도 있고, 여자친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나는 헤실헤실 웃으면서 사실 제가 어렸을 땐 인기가 많았거든요.. 하면서 반지하로 기어들어가 카카미네린의 노심융해를 들으며 혼자 편의점 도시락을 까먹는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이런 이야길 하니까 여자친구는 같이 서울역에서 쓰레기통을 뒤지자고, 쓰레기통 안에는 생각보다 유용한 것이 많다는 이야길 해주었다. 


주식 투자에 성공했을 수도 실패했을 수도 있다. 혹은 전세사기를 당해 모은 재산을 모두 잃을 수도 있고, 큰 질병에 걸려 어쩌면 먼 과거의 기억(책을 냈다는 사실)에 의탁한 채 배달이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실 저는 작가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부러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어떤 세계에서는 정말 성공한 작가가 되어 풀 정장의 포멀한 옷차림에 오만하게 내리깐 눈으로 '저는 제가 16살 때부터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라는 말로 강연을 시작하며, '세상 사람들의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고 나만의 길을 개척할 것'과 같은 성공 담론을 설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무수한 난수표 위에 놓인 하나의 지점이고 선택에 따른 갈래에 대해 한 줌의 고민을 하곤 하지만 이내 아무렴 좋은 것처럼, 흘러가듯 살아가는 미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책에는 장이 있다. 각각의 장은 돌올하게 솟아있어서 게임의 세이브포인트처럼, 반추 지점으로 남는다. '왕년에 내가'로 시작하는 말들의 지표이자 끝내 돌아갈 부표다. 그렇다면 이렇게 밍숭맹숭하게 살아도 될까, 민달팽이처럼 매끈하고 하찮게, 구분감 없이 사는 게 옳은 일인가 생각해 보곤 한다. 벌레도 머리가슴 배로 나뉘는데, 내 삶의 중요한 지점들을 유기하고 '알빠노'할 수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나는 안녕하고 싶고, 잘 살고 싶다. 누군가에게는 자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며,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받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 그래 좀 더 설득력 있고 정교한 방식으로 나아가고 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