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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Nov 10. 2023

프롤로그 한국형 시티팝과 그 감수성

백예린, Dosii, 유키카, 스텔라장, 자우림, 이랑


나무13님의 일러스트


시티 팝은 1980년대 일본 버블경제 당시 넘쳐나는 돈으로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이 최고급 음악 장비들을 미국 등지에서 사 오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출발한 장르입니다 명확한 규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주로 도회적인 감상, 사적인 감성을 가진 가사가 섬세한 프로듀싱을 거친 화려한 반주와 함께 표현됩니다. 대표적인 노래로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 '마츠바라 마키'의 '한밤중의 도어'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백예린, Dosii, 유키카, 스텔라장 등등 시티팝의 감성을 공유하면서도 아티스트 별로 각자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각기 다른 아티스트를 한 장르로 묶는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동 쿨러는 장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멜랑꼴리함 속에서 피어나는 명랑함'을 지향하고 있어요. 사적인 감정을 내밀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아티스트입니다.


자우림의 경우 락밴드로서의 정체성을 지향하긴 하나 몇몇 곡에서는 그 가사나 미장셴에서 시티팝의 감성이 뭍어납니다. 얼터너티브, 블루스의 색채가 섞이기도 하고, 청춘예찬 등에서 간혹 동양풍 발라드의 에센스가 섞이기도 합니다. 이를 자우림은 '민트 락'이라는 장르로 설명하고 있지만, 자우림은 자우림이 할 수 있는 장르를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소화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것을 명확히 '시티팝'이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책에서는 '현대인의 섬세한 감성'이라는 면에서 책의 지면에 끌어들였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장르적으로 먼 감이 있긴 하지만, 싱어송라이터 김수영, 김사월씨의 가사도 조명해보고 싶습니다.



제인팝의 경우 감미로운 남성 보컬의 시티팝을 지향합니다. 


명확한 규정이 없는 시티팝답게 제인팝은 동양풍 발라드에서 쓰일법한 고풍스러운 표현의 가사와 음향을 시티팝에 접목합니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미련을 담은 노래 '우희'의 언어는 서정적이면서도 깊이감이 있습니다. 사운드는 시티팝에 가깝지만, 보컬의 감성과 가사는 동양풍 발라드에 가깝습니다. 


동양풍 발라드에는 여성보컬로는 이수영, 박정현 남성보컬로는 임형주가 있습니다. 임형주씨는 오페라 가수로 '팝페라'라는 크로스오버 장르를 개척하기도 했어요. 풍운애가, 이수영의 휠릴리, 박정현의 달 정도가 떠오릅니다. 그만큼 시티팝이 포용할 수 있는 장르의 범위가 넓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풍스럽고 애절한 가사에 동양적인 어휘나 악기를 요소로 하는 동양풍 발라드는 오페라 가수 임형주에 의해 팝페라라는 장르에 차용되기도 하고(풍운애가, 하월가), 최근 제인팝과 같은 아티스트에 의해 시티팝과 결합(우희, 넌 한 편의 시처럼)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장르적인 구분은 큰 의미가 없긴 합니다. 다만, 어떤 양식과 결을 가진 정서가 있어서 꾸준히 회자되는 것이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는 송서래의 한국어를 두고 '사극을 많이 봐서 말을 고풍스럽게 하나?'라고 중얼거리는 해준의 대사가 나옵니다. 그쪽으로 정서적 온도가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그중에서도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랑의 '환란의 세대'는 도시/현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악의 꽃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악의 꽃을 쓴  보들레르는 프랑스 파리의 퇴폐를 시로 풀어낸, 도시문화에 대한 통찰과 전복적 감수성을 최초로 보여준 시인이에요. 짓눌려있는 사적이고 내밀한, 말하기 힘든 감정을 도발적으로 풀어낸 이랑의 음악은 도시 안에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 어린 러브송입니다.   


비단 '도시인의 섬세한 감성'을 풀어낸다는 장르의 규정에서 벗어나 한국의 언더, 시티팝적 감수성은 나날이 그 바리에이션을 늘려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그 첨단에는 '환란의 세대'와 같은 비판적이고 강력한, 한편으로는 위험한 음악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랑은 싱어송라이터로 '포크'를 차용하고 있지만 특유의 현악기 사용, 예민성을 담은 가사, 현대미술을 보는듯한 퍼포먼스로 경계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각자의 개성을 담은 아티스트들이 불안한 시대에 맞서 개인의 감정과 자아를 편만하게 드러내는 것이 현재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제가 다소 메타적으로 확장한 시티팝에 속하는 아티스트들의 특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80년대 일본과 2020년대 한국은 모두 물질적 풍요 속에 잠식되어 있지만, 젊은 세대의 절망과 희망에 있어서는 극명하게 다른 감수성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런 시티팝의 정서가 MZ세대에 맞닿아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이 마음을 섬세하게 어루만지는 음악을 통해 그 심리를 직면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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