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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 Jan 01. 2024

2023년 리뷰, 2024년 각오

자기연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다 큰 성인이 자기 자신에 대해 연민을 가진다는 건, 왠지 모르게 나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하고, 나약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를 마냥 비판하기에는 세상이 그렇게 만만찮다. 어쩌면 개인에게 있어서는 자기연민 만이 심리적, 정서적 문제와 트라우마에 최초로 가 닿을 수 있는 적절한 접근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슬프고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 옆에 있다고 했을 때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처럼, 나 자신에게도 최소한 비슷한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나 자신의 한심함과 초라함에 대한 용서는 쉬워질 것이고, 서툴게 감정을 쏟아내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나는 겁에 질려있다’라고 말하면 이야기가 수월할 것 같다. 2022년 파혼 이후 마음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새로 살 집을 구해야 했다. 서른이 넘도록 박봉에 불안정한 직장을 다니다 보니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전세 기준 억단위의 집을 찾아봐도 햄스터 굴 만한 집들 뿐이었고, 진지하게 ‘고향에 내려가야 하나’하는 고민을 하던 시기 였던 것이다. 작은 일상의 스트레스에 불과하다면 불과한 것이지만,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정서적 스트레스를 많이 겪는 나이대가 27-33살 이라는 뉴스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때 하는 결정들이 남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어릴 적 했던 ‘의자 앉기 게임’을 떠올린다. 의자를 중심으로 뱅뱅 돌다가 신호에 맞춰 의자에 앉는다. 하지만 의자의 수는 사람의 수보다 적다. 그렇게 의자에 앉지 못하고 남아있는 사람은 뱅뱅 돌기를 계속한다. 일도, 사랑도, 관계도 뭐하나 온전한것 없이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하던 22년 말, 운이 좋게도 직장동료와 함께 관악구 봉천동의 작은 집을 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3년은 호시절이었다.


새로 취업한 직장에서 무사히(?) 1년 근속을 하게되었고(이후 퇴사 했지만), 룸메이트와도 합이 잘 맞는 편이었다. 당시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잃었다는 뉴스, 자살자가 속출하고 있었던 사회상에 마음이 온전히 편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대하던 예술 활동 증명을 마무리 하고 사월 즈음에는 연애도 시작했다.(쾌활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월세로 넘어오면서 다시 쥐게된 목돈을 미국주식에 투자 했고 10개월 사이에 두 배로 불렸다. 최근엔 예술세계 소설 신인상도 탔으니 자아실현에도 한발짝 다가설 수 있었다.


신인상과 관련해 덧붙이자면, 이십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소설을 열심히 썼고, 올해 말에 일을 그만두게 되면서 2편을 공모받는 신인상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1편은 새로 쓰고 1편은 이십대 중반에 쓴 소설을 끼워서 제출했는데, 예전에 쓴 소설이 당선되었다. 그동안 사회에서 마음고생도 많이하고, 굴러떨어진 부분이 있어 엄청나게 기쁘다기 보다는 더 늦기 전에 받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더불어 내 글이 별볼일 없다는 강박도 조금은 떨칠 수 있게 됐다.


사소한 것도 운이 좋았다. 다녔던 직장 건물 바로 위에 예술인 무료 심리상담 센터가 있어 12회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때 나왔던 키워드가 ‘겁’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혼자 상당한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지 모든걸 잃을 수 있다는 강박에 휩싸여 있는 것 같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가령 전세사기로 전 재산을 잃는 다거나, 새로 직장을 구하더라도 적응하지 못할것과 같은 부정적인 상황에 지나치게 몰입 하면서 현재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리고있지 못하다는 말이었다.(무심하게 입을 벌리고 있는 아래를 내려다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좀처럼 낮게 깔리는 기분을 어찌할수는 없었다. 지난달 부터 룸메이트도 퇴사를 했다. 나도 다시 취업준비생이 되었다.(실업급여를 받으며 청년 취업 사관학교 마케팅 과정을 이수중이긴 하다.)


준비되지 않은채 다가오는 시간을 지켜보는 것은 참 막막한 일이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올라오는 한편, 나쁘지 않은, 좋은 일도 많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2024년은 어떨까? 다시 시작이구나, 내년을 올해와 같이 반복할 수 있다면 그래도 더 나은사람이 되어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내년에는 내가 나에게 좀 더 다정한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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