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의 부력-1부
“은하야, 그래도 아침은 조금이라도 먹고 가지? 새벽부터 미역국에 잡채까지 다 준비했는데.”
반쯤 열린 문 틈으로 음식 냄새가 새어 들어왔다. 미역국 냄새는 바다 냄새 같았고, 참기름이 살짝 올라간 잡채의 윤기는 새벽의 별처럼 반짝였다. 내 이름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는 아직 새벽과 아침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다.
“아니, 엄마 지금 시간 좀 봐. 그냥 가도 늦어.”
헐레벌떡 교복을 챙겨 입고,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꾹꾹 눌렀다. 물방울이 수건 틈에서 튀어나와 팔목을 적셨다. 손목시계의 초침이 유난히 큰 소리로 고막에 부딪혔다.
“그러니까 좀 일찍 자라니까 정말. 너는 꼭 중요한 날에 항상 이러더라!”
“생일날 아침부터 잔소리야 또?”
“아침부터 말에 날 세운다 또?”
내 목소리는 유리잔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긁는 것처럼 날카로웠고, 엄마의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그 유리잔 같았다. 요즘 들어 별것 아닌 일에도 엄마에게 짜증을 부렸다. 아빠와 엄마는 그런 나를 두고 못 말리는 사춘기에 접어든 고등학교 1학년 소녀라고 놀리곤 했다. 나는 그 말에 괜히 더 심술이 나곤 했다.
“아 몰라 몰라, 나 간다.”
뒤도 안 돌아보고 가방만 챙겨 현관으로 뛰어 나갔다.
“진짜 안 먹어?”
엄마의 말이 현관문 틈에서 얇게 떨렸다. 쾅—하고 닫히는 문. 금속 도어록이 걸리는 소리. 문이 닫히는 순간, 그새 스며든 미역국 냄새가 내게서 빠져나가는 듯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시려다가, 아무것도 들이마시지 못한 채 내쉬어 버렸다. 들숨보다 먼저 나온 날숨. 그때는 몰랐다. 너무나 긴 여정의 시작이 이런 모습일 줄은.
학교로 달려가는 길 내내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신발 바닥이 아스팔트를 밟는 소리가 과하게 크게 들렸다.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했고, 사진작가인 엄마가 1년간 미국으로 출장을 가기 전날이기도 했다. 가장 익숙한 사람과 가장 익숙한 집이, 내일이면 왠지 조금 달라질 것 같은 느낌. 그 느낌이 발뒤꿈치를 자꾸만 땅으로 끌어내렸다.
‘생일상 좀 못 먹으면 어때? 어차피 저녁에 같이 또 외식할 건데 뭐.’
전날 밤, 수정이와 생일 축하 통화를 하다가 새벽 두 시에 잠들었다. 우리는 서로 하품까지 나누다가 동시에 끊자고 말하고도 10분을 더 떠들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10년째 친구인 그녀는 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름처럼 맑고 투명하면서도 어른스러운 사람. 수정이에게는 이상하게 속에 있는 마음을 거리낌 없이 내보여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수정이는 항상 잘 들어 주었고, 절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법이 없었다.
“야, 이은하! 너 머리 또 덜 마른 거 보니까 늦잠 잤구나?”
어깨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분명 수정이었다.
“당연하지. 넌 빨리 일어났어?”
“물론이지~ 나는 너처럼 잠꾸러기가 아니니까~”
수정이는 늘 그랬다. 시간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는 철저함. 젖은 머리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며 수정이의 장난스런 말풍선에 가볍게 튀었다.
“좋겠다~ 나는 엄마랑 또 한바탕하고 나왔어.”
“생일날까지 엄마랑 또 싸운 거야? 너도 참 대단하다 대단해~”
수정이 특유의 장난스런 얼굴이 내 옆에서 깐족댔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툭툭 치며 교실로 뛰어 들어갔다.
수업 종이 울렸다. 칠판 위의 날짜 밑에 ‘생일 축하!’라고 누가 작은 글씨로 쓰고 하트를 그려 두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하트만 살짝 문질러 흐리게 만들었다. 완전히 지우자니 괜히 아쉽고, 남겨두자니 너무 유난인 것 같아서.
학교 일과 내내 빨리 저녁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랜만에 가는 아웃백의 빵이 아른거렸고, 무엇보다 아침의 짧은 소동을 털어낼 말이 차올랐기 때문이다. ‘미안해.’, ‘잘 다녀와.’라는 두 말이 머릿속에서 자꾸 순서를 바꿔 보고 있었다. 어느 쪽이 먼저여야 덜 어색할지, 너무나 어려웠다.
점심시간, 급식실 창가 쪽에 수정이와 나란히 앉아 급식을 먹었다. 콩나물국을 먹으면서도 엄마가 차려줬던 미역국 속 미역의 식감을 떠올렸다.
“저녁에 아웃백 가면 뭐 먹을 거야?”
“파스타랑 스테이크? 빵도 3번 리필해야지.”
“어유 돼지띠 아니랄까봐, 정말 야무지다 야무져.”
수정이는 특유의 악센트를 넣어 나를 놀렸다.
“화해는 할 거지?”
“응? 누구랑?”
“당연히 어머니지. 어머니 내일 미국 가신다며.”
“아, 그래 해야지.”
“어머니께 꼭 말씀드려. 아침엔 미안했다고.”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수정이는 언니처럼 말했다. 자꾸만 마음을 휘졌던 두 말이 ‘미안해, 잘 다녀와.’로 순서를 정했다.
급식실에서 교실로 돌아오던 길, 교무실에서 담임 선생님이 급히 뛰어나왔다. 가쁜 숨으로 선생님은 수정이 옆에 서 있던 나를 찾았다.
“은하야. 지금 어서 가방 싸서 교무실로 와야겠다.”
“네? 갑자기요?!”
“어… 일단 짐 싸서 와볼래?”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은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선생님은 더 할 말을 잠시 미루시는 것 같았다. 영문도 모른 채 짐을 챙기며 ‘가방을 싸라’는 말에 이상한 기대가 붙었만 갔다. 혹시 엄마가 선생님께 부탁해서 날 조퇴시키고, 저녁 먹기 전에 같이 쇼핑이라도 하는 건 아닐까?—그런 철없는 생각이 빠르게 스쳤다. 심장이 그 생각을 따라 반 박자 빨라졌다.
가방을 메고 교무실에 들어가자, 선생님은 평소와 다르게 나를 교문까지 배웅해 주겠다고 하셨다. 아무 말 없이 도착한 교문 철창 사이로 햇빛이 잘게 부서졌다.
‘왜 그러시지? 오늘 내 생일이라고 특별히 에스코트까지…?’
“저… 은하야. 아버지께서 연락이 오셨는데, 지금 바로 남구에 있는 영남대학교 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
“영대 병원이요? 왜요?”
“어머니께 사고가 있었나 봐. 위중하신 것 같더구나”
엄마와 사고.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서로의 모서리를 긁었다. 내 기억이 있는 시점부터 엄마는 항상 조심했고, 안전한 길을 택하는 사람이었다. 그 두 단어가 같은 문장 안에 들어가려면,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몸의 힘이 갑자기 한 번에 사라지는 듯했다.
“택시비는 있니?”
“네… 있어요.”
“그래, 그럼 어서 가봐. 선생님도 아버지께 출발했다고 연락드릴게.”
“네.”
교문 건너편에서 택시를 잡았다. 문을 닫자 차창에 학교가 한 번 흔들렸다. 익숙한 풍경이 왜 그렇게 낯설게 다가왔는지, 차가 출발하자마자 모든 것은 혼란스러워지기만 했다. 엄마, 사고, 엄마, 사고. 나는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그 두 단어를 억지로 이어 붙여 보았다. 그럴수록 나는 있어서는 안 될 곳으로 떠나는 승객이 되는 기분이었다.
신호등이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뀌는 사이사이, 아침의 식탁이 어른거렸다. 미역이, 흰밥이, 잡채가. 나는 자꾸만 국물의 간이 어땠을지—짰을지, 싱거웠을지—하는 쓸모없는 질문들을 떠올렸다. 입안이 말라 붙어서 그런 질문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오전 11시께 수성구 만촌네거리 인근 횡단보도에서 보행자와 차량이 충돌하는 사고가…”
치직—
“…40대 여성 한 명이 의식 불명인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되어…”
기사님이 불안정한 라디오 볼륨을 성가시다는 듯 살짝 낮추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에구, 또 사고가 났나 보네.”
사고란 말이 차창에 부딪혀 흩어졌다. 도로 표지판의 초록색이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 나는 창문을 손바닥으로 톡톡 두 번 두드렸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