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잘 다녀와. 아니, 잘 가.

별빛의 부력-1부

by 시쓰는 충하

택시가 응급실 앞에 멈춰 섰다. 내리자마자 차가운 공기가 폐 속으로 깊게 들어왔다. 소독약과 금속이 섞인 것 같은 냄새와 함께. 응급실 자동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안쪽의 소리들이 잘게 잘려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휠이 바닥을 굴러가는 소리, 알람 같은 삑 소리, 누군가의 울음이 곧장 울음이 되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미끄러지는 소리.

아빠는 대기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리 학교 옆 남고에서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아빠도 나처럼 정신없이 왔는지 양복 상의가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고, 타이도 느슨했다.

“아빠, 나 왔어.”

“은하야…”

아빠의 눈은 부을 대로 부어 있었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슬픈 영화를 봐도 거의 울지 않던 사람이, 오늘에서야 울음이라는 행위 자체를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무너져 있었다. 아빠 얼굴을 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수면 밑으로 급격히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엄마가 방금…”

사람에게는 직감이라는 것이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아빠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내게서 무언가를 영원히 앗아갈 단어로 이어질 것만 같았다. 아빠의 다음 말보다도 빠르게 내 눈이 먼저 반응했다. 뜨거운 것이 뺨을 타고 흘렀다. 울어야만 하는 감정이, 먼 길을 돌아 결국 찾아온 것처럼.

“방금… 돌아가셨다.”

단어는 아주 천천히 내게로 박혔다. ‘돌아—’에서 한 번 멈추고, ‘—가셨다’에서 고개를 떨궜다. 그 말은 바닥에 떨어진 유리 조각 같았다. 손을 뻗으면 반드시 다치게 되는. 나는 그 조각을 줍지 않기 위해, 손을 무릎 위로 겨우 꼭 붙잡았다. 손등에 내 숨이 닿았다. 들이쉬는 게 아니라, 아주 길게 내쉬고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 내쉬며 버티는 동안, 울음은 잠깐 가라앉았다. 그러나 잠깐뿐이었다.

의사가 와서 차분히 무언가를 설명했다. 병원에 도착한 시각, 시도했던 여러 가지들. 단어들은 있었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한 문장은 되지 않았다. 종이 위에서 펜을 긋는 소리가 멀리서 바람처럼 들렸다. 아빠가 서류에 사인을 할 때, 펜 끝이 종이를 눌러 파고들었다. 그 움푹한 자국이 마음에 그대로 찍혔다.

간호사가 비닐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신분증, 카드, 작은 핸드크림, 립밤. 익숙한 향이 났다. 나는 립밤의 뚜껑을 한 번 돌렸다가 조용히 닫았다. 뚜껑 닫히는 ‘딸칵’ 소리가 내 안에서 너무 크게 울렸다.

나는 고개를 숙여 신발끈을 한 번 더 묶었다. 이미 묶여 있는 끈을 다시 묶는 일은, 갑자기 느슨해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붙들고 싶다는 몸의 반사 행동이었다. 숨이 얕아졌다. 나는 한 번 크게 들이마시려다, 이내 길게 내쉬었다. 내쉬는 동안만큼은, 몸이 아주 조금 떠오르는 것 같았다. 바닥과 발 사이에 얇은 공기가 생기는 느낌. 아주 잠깐, 그리고 다시 가라앉는.


누군가 우리에게 다가와 빈소 준비 절차를 안내했다. 말끝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이 붙었다. 하지만 시간은 천천히가 아니라, 빠르게 흘렀다. 장례식장의 조도, 흰 국화의 냄새, 검은 옷의 사이즈, 종이컵의 얇은 두께. 삶의 표면에 붙었던 낱말들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새로운 낱말이 제자리를 찾기 전까지의 공백. 나는 갑자기 그 공백 속에 앉아 있었다.

아빠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상하게 가벼웠다. 마치 아무것도 올리지 않은 것처럼.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아주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저녁에 하려고 했던 말, 이제 어쩌지?’

모든 것이 비현실적이라 나는 하루 종일 고민했던 생각만을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마치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자꾸만 졸음에 빠지는 사람처럼. 그리곤 아침 식탁 위에 있었을 미역국의 김을 떠올렸다. 많이 따뜻했을까, 빨리 식어 버렸을까. 미역은 국물 속에서 계속 부풀어 오를까, 가라앉을까. 떠오르고, 가라앉고. 나는 그 움직임들을 가슴에서 더듬었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마음속에서 말했다. ‘미안해. 잘 다녀와.’ 겨우 정했던 두 말의 순서가 이젠 쓸모 없어졌다. 다녀오라는 말을 가라는 말로 바꿔야만 했다.

자동문이 한 번 더 열렸다 닫혔다. 우리는 천천히 응급실 복도를 걸어 나갔다. 내 발걸음은 바닥을 분명히 딛고 있었지만, 어디에도 완전히 닿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 느낌을, 오늘 하루의 이름으로 받아 적었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공존.

문밖의 공기가 내 뺨을 스쳤다. 나는 또 숨을 길게 내쉬었다. 내쉬는 동안만큼은, 조금 덜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잠깐이 끝나면, 다시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 두 움직임 사이에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조문객들이 모두 돌아간 뒤, 장례식장은 조용해졌다. 유족들이 머물 수 있도록 빈소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서 휴대폰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메시지 창에 ‘수정아’라고 쳤다가 지웠다. ‘엄마…’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화면 위의 ‘돌아가셨어’가 너무 커 보였다. 결국 짧게 썼다.

— 수정아 나, 영대 병원 장례식장에 있어. 엄마가 돌아가셨어.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야 소리가 돌아왔다. 상을 치우는 소리, 멀리서 끌리는 신발 소리, 안내 방송의 낮은 멘트. 생각보다 밤에는 더 많은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들이 밤을 붙잡았다. ‘어제 내가 일찍 잠들었다면?’ 그 생각이 밤을 가득 채웠다.

아빠는 밤 늦도록 엄마 사진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나도 방에서 나와 의자에 앉았다. 천천히 숨을 셌다. 들숨 하나, 날숨 셋. 내쉬는 쪽을 길게 하자 가슴의 모서리가 조금 둥글어졌다. 아주 잠깐, 덜 가라앉는 느낌. 그러나 나의 새벽은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고만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자동문이 천천히 열리며 차가운 공기가 빈소 안으로 들어왔다. 운동화 끈을 단정히 묶은 흔적과 함께 수정이가 문턱에서 숨을 고르며 섰다.

“은하야.”

그 한 마디가 방의 온도를 바꿨다. 나는 일어나서 수정이에게로 걸어가,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찾지 못한 채 그대로 안겼다. 수정은 한쪽 팔로 내 등을, 다른 손으로 내 머리 뒤를 받쳐 주었다. 오래 알고 지낸 사람만이 아는 각도와 힘으로.

수정이는 엄마 영정에 절을 올렸다. 아빠에게도 절하고 인사한 뒤, 빈소 밖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국화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낮게 흘러 오는 것 같았다.

“나… 어제 아침에 그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 목소리가 작은 접시처럼 떨렸다.

“엄마가 새벽부터 준비했을 텐데. 조금만이라도 먹고 가라는 엄마한테 생일날까지 왜 그러냐고… 그렇게 말해 버렸어.”

말의 꼬리가 말을 끌어오자, 숨이 얇아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양손에 파묻었다. 참아 두던 것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마지막 인사도 못 했어. 아무 말도 못 했어. 현관문을 큰 소리로 닫아 버렸어. 그게… 마지막이었어.”

말끝이 새하얀 포말처럼 부서지며 울음이 터졌다. 목에서 올라오는 소리는 마치 잠겨 있던 문이 안에서부터 열리는 소리 같았다. 가슴이 안쪽에서 쪼개지는 것처럼 아팠다. 바닥으로 무너져 내리는 느낌.

“나, 다시는… 다시는 기회가 없는데… 엄마가 내 생일상 차려 준 게… 어제가 마지막이었는데… 내가… 내가…”

말이 울음에 삼켜졌다. 숨을 들이쉬는 것도, 내쉬는 것도 제멋대로였다.

수정이 내 등을 천천히 문질렀다.

“마지막이 될 줄 몰랐잖아. 너무 자책하진 마.”

나는 눈을 비벼 겨우 흐려진 시야를 되찾았다.

“저녁에 만나면 미안했다고, 미국 잘 다녀오라고 꼭 말하려고 했는데….”

수정이 귀 가까이에 낮게 속삭였다.

“그 말, 지금 해. 다 듣고 계실 거야. 말로 못하겠으면 마음속으로라도.”

나는 눈을 감고 속으로 말했다.


엄마, 미안해. 정말… 미안해.


말이 끝나자 내쉬는 숨이 한 번 더 길어졌다. 어깨가 한 마디 내려앉았다. 손등에 묻은 눈물을 소매로 훔치고, 나는 입을 열었다.

“아빠가… 사고 얘기해 줬어.”

수정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낮에 잠깐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운전자가 신호를 착각했대. 차가 그냥 횡단보도로… 돌진했대. 사람들이 구급차 불러 줬는데,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끝 단어가 입술에서 부서졌다. 숨이 너무나 가빠졌다.

“은하야 나랑 같이 숨 쉬자. 내가 셀게.”

수정이는 내 손을 꼭 잡았다.

“들이쉬고—하나, 둘, 셋—길게 내쉬자.”

하나. 둘. 셋.

내쉬는 동안 울음소리가 잦아들었다가, 다시 커졌다가, 또 줄었다. 파도에도 호흡이 있듯, 울음에도 박자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잠시 울음이 가라앉자, 수정이 내 옆에 따뜻한 물을 건넸다.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니 손끝에 온기가 돌았다. 로비 쪽 안내 방송이 낮게 흘렀다. 우리는 한참 말없이 앉아 있었다. 숨을 맞추듯, 들숨 하나—날숨 셋.

“조금 나아졌어?”

“응… 이제 좀.”

수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 어머니 발인이지?”

수정은 내 어깨에 덮인 담요 모서리를 한 번 더 펴 주고, 내 머리칼 한 올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맞아. 아침에 화장장에 갔다가 납골당으로 간다고 했어.”

“그렇구나. 내일 어머니 잘 보내드리고 학교에서 다시 만나자.”

“그래,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수정아.”

수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치맛단을 정리한 뒤, 다시 안으로 들어가 엄마 사진 앞에 조용히 절을 했다. 그리곤 아빠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문 쪽으로 돌아오던 수정이 내 앞에서 멈춰 섰다.

“힘들면 언제든 전화나 문자해. 기다릴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이 내 손을 한 번 더 꼭 잡았다가 놓았다.

출입문 앞에서 수정이 나를 향해 조용히 입모양을 만들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크게, 길게 내쉬는 흉내를 보여 주었다. 유리문이 천천히 열리며 찬 공기가 스쳤다. 운동화가 바닥에서 무겁게 떨어지고, 수정이 복도 끝 모서리를 돌아 사라졌다.

의자에 남아 있던 온기가 아주 천천히 식어 갔다. 나는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엄마…”

낮게 부르고, 방석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마가 천에 닿자마자, 울음이 목 깊은 데서 터졌다.

“엄마, 나… 이제 어떻게 해.”

말이 울음에 끊겼다.

“아침에… 미역국도, 잡채도… 안 먹는다고. 그게 마지막 말이었어. 엄마, 나 이제 어떡해. 집에 가면 현관에 신발 하나 비어 있고, 식탁에 사람 하나 비어 있고, 침대에… 엄마 자리 비어 있는데, 나 혼자…”

나는 바닥을 더듬어 방석 모서리를 꽉 잡았다. 손끝이 저릴 만큼 힘을 줬다.

“엄마,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바보처럼 같은 말이 자꾸 겹쳤다.

“미안해. 잘 가… 근데 나 어떻게 해.”

울음이 컵을 넘쳐버린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숨을 들이쉬는 것도 제멋대로여서, 나는 겨우 내쉬는 쪽을 붙들듯 길게 길게 내보냈다. 내쉬는 동안만큼은 목이 조금 덜 조였고, 그 틈으로 또 울음이 올라왔다.

어깨가 한 번 크게 들썩일 때, 누군가 조용히 내 등에 손을 얹었다. 아빠였다. 말은 하지 않았다. 담요가 내 어깨로 건너왔다. 비누 냄새와 향 냄새가 아주 옅게 섞여 났다. 나는 바닥을 짚고 일어나 아빠에게 안겼다. 품에 고꾸라지듯 안겼다. 울음을 삼킬 수 없어서, 그냥 아빠의 셔츠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어 울었다. 아빠의 손이 등 한가운데를 일정한 리듬으로 쓸었다. 그 리듬에 맞춰, 들숨 하나—날숨 셋. 내쉬는 숨이 조금씩 길어졌다.

“괜찮다.”

아빠가 아주 낮게 말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다시 흘렀다.

울다 지쳐 몸의 힘이 빠지자, 아빠는 의자 끝으로 몸을 당겨 앉고 내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했다. 심장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그 소리에 맞춰 숨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내쉬고, 또 내쉬고. 어느 순간, 울음과 숨 사이 경계가 희미해졌다.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아빠의 손길이 여전히 등을 타고 지나갔다. 나는 그 손길을 마지막 파도처럼 느끼며, 아주 얕고 따뜻한 잠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내쉬는 숨이 길어질 때마다, 가라앉던 마음이 한 마디씩 떠올랐다. 그렇게 아빠 품에서, 밤의 숨결이 조용히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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