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낮은 조도

별빛의 부력-1부

by 시쓰는 충하

처음 와본 화장장의 공기는 얇고 차가웠다. 벽을 따라 긴 의자들이 줄지어 있었고, 전광판의 빨간 숫자가 느리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창문은 높고 좁아서 밖이 잘 보이지 않았다. 종이컵에 따른 보리차는 금방 식었고, 컵 바닥에서 미지근한 곡물 냄새가 올랐다. 나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숫자를 올려다보다가, 눈을 내리깔았다. 시선이 바닥과 내 신발끈 사이를 왕복했다. 아빠는 옆에서 두 손을 포갰다. 손등의 작은 흉터와 마디의 굴곡이 도드라졌다. 말은 꼭 필요한 만큼만 오갔고, 필요한 말이 있어도 때를 놓쳐 입술에 머물렀다.

직원이 다가와 낮게 말했다.

“입로(入爐) 전 마지막 인사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빠가 먼저 일어섰다. 나도 뒤를 따랐다. 좁은 복도를 돌아 유리 칸막이 앞에 서니, 이동대 위 관이 정지해 있었다. 우리와 관 사이에 공기가 한 겹 더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씩 멀어 보였다. 나는 손바닥을 유리에 조심히 올렸다. 차가움이 피부를 지나 뼈까지 스며들었다. 숨이 닿은 자리마다 얇은 김이 동그랗게 번졌다.

“엄마.”

한 번은 입술로, 두 번은 속으로 불렀다. 더는 말을 늘이지 않았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허리가 자연스레 접히고, 이마가 유리를 스쳤다. 이마와 유리 사이에서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뒤에서 아빠의 손이 내 어깨에 얹혔다. 강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은 손의 압력.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 손바닥에 있었다. 우리는 오래 인사했다. 들숨 하나, 날숨 셋—날숨을 최대한 길게 끌어내자 가슴 밑바닥이 잠깐 덜 조여 왔다.

직원이 고개를 숙이며 알렸다.

“이제 입로하겠습니다.”

짧은 신호음이 울리고, 이동대가 아주 느리게 전진했다. 금속이 굴러가는 소리가 낮게 깔렸다. 문이 열렸다 닫히는 동안 건조한 공기가 한 번 스쳤다. 관이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히는 동안, 나는 눈을 감고 인사했다. 문짝이 안쪽에서 완전히 밀착되는 소리가 작고 분명했다. 엄마와의 마지막 인사가 두 번이나 문 닫는 소리란 사실이 서글펐다.

대기실로 돌아와 아까와 거의 같은 자리에 앉았다. 직원은 한 시간이 조금 넘을 수 있다고 덧붙였고, 우리는 고개만 끄덕였다. 시간은 가고 있었지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종이컵을 다시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손끝이 떨려 물이 컵 벽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빠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괜찮니?”

물음표의 끝이 마침표처럼 낮았다.

“응.”

대답은 했지만, 내 목소리는 ‘응’과 ‘아니’ 사이 어딘가에 걸렸다. 나는 숨을 길게—더 길게—내쉬었다. 날숨이 이어지는 동안만큼은 목이 덜 조였다. 그러자 다시 울음이 얕게 올라왔다. 오늘 하루 내내 울음과 숨 사이의 경계가 흔들렸다.

기다리는 동안, 머릿속에서는 엄마의 마지막이 돌아왔다. 김이 오르던 미역, 반짝이던 잡채, 그릇을 내려놓던 손등의 결. 그 모든 장면은 그저께 아침의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전의 것처럼 어느새 멀리 멀리 뒤로 물러났다. 그럼에도 손에 남은 온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고마웠어.’ 그 말 한 줄을 속으로 썼다. 보리차는 식어 있었다. 마지막 한 모금을 천천히 삼켜냈다.

전광판 숫자가 우리 번호를 불렀다. 직원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수골실로 안내하겠습니다.”

하얀 분말. 하얘서 내가 항상 부러워했던 엄마의 피부보다 더 하얀 분말. 그 분말을 담은 유골함의 뚜껑이 닫혔다. ‘닫힘’이라는 동사가 이처럼 조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명패 확인 부탁드립니다.”

이름과 날짜가 반듯했다. 세상이 이렇게 기울어져도, 문자의 직선은 살아 있었다. 그 반듯함에 이상하게 안심이 됐다.

직원이 유골함을 양손으로 들어 아빠에게 건넸다. 아빠는 두 손으로 받아 품에 안았다. 그 자세는 오래전 나를 안고 찍은 사진 속 포즈와 닮아 있었다. 나는 유골함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감촉. 뜻밖에도 분명한 무게. ‘엄마’라는 두 글자가 부피를 잃고 남긴 무게가, 아빠의 팔을 통해 내 손끝으로 전해졌다. 나는 그때 비로소, 하루아침에 세계의 중심이 자리 바꿈을 했다는 사실을 담담히 알아챘다. 알아챘다는 사실이 늦은 울음을 몰고 왔다. 울음은 오지 않은 척하다가, 날숨 끝에서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아빠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옆에서 호흡의 길이를 조금 더 늘렸다. 들숨 하나, 날숨 셋. 날숨의 끝에서 가슴 어딘가가 아주 얕게 떠올랐다. 떠오른 만큼 다시 가라앉았다. 그렇게 반복되는 사이, 우리는 문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복도 끝 유리문에 우리의 모습이 작게 비치고 사라졌다. 유골함은 아빠 품에서 미동도 없이 안겨 있었다. 그 고요가 오늘 우리가 가진 가장 단단한 문장이었다.


우리는 대구 외곽의 납골당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납골당의 회색 벽을 따라 난 긴 복도는 끝이 바로 보이지 않았다. 바닥 타일이 일정한 간격으로 빛을 반사했다.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그 빛들이 발 아랫부분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거울 속의 우리 둘과 은빛 유골함만 있었다. 층수가 올라갈수록 내 호흡이 조금씩 깊어졌다.

유리문이 부드럽게 열리며 낮은 조도가 펼쳐졌다. 벽에는 작은 창 같은 칸들이 층층이 이어졌고, 꽃과 사진과 이름들이 조용히 빛났다. 직원이 지정된 칸 앞에서 멈췄다. 투명문이 조용히 열렸다. 안쪽에는 하얀 받침과 작은 꽃병 자리가 비어 있었다. 공간은 작았지만, 우리에게는 충분할 만큼 넓어 보였다. 아빠가 유골함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팔꿈치가 살짝 떨리자, 나는 반대쪽 모서리를 받쳐 주었다. 둘의 손이 잠깐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짧은 닿음이 오늘 하루의 가장 선명한 감각처럼 느껴졌다.

나는 짧게 자른 국화 한 송이를 옆에 꽂았다. 유리문에 손바닥을 대자, 이번에는 내 숨이 금세 사라졌다. 투명해진 면 너머에 자리 잡은 이름표가 또렷했다. 직원이 조용히 물었다.

“명패 문구, 이렇게 맞으실까요.”

엄마의 이름과 날짜가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다.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이 오늘 들은 모든 말보다 분명했다.

우리는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마가 유리에 닿을 듯 말 듯 멈췄다. 유리문이 닫히며 아주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철컥이라 하기엔 가늘고 고요한 소리—누군가의 마지막 숨이 얌전히 놓이는 소리 같았다. 그 소리를 기억해 두자고 다짐했다. 언젠가 이 소리를 떠올릴 때 오늘의 공기가 함께 떠오르도록.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납골당의 긴 벽을 훑어보았다. 이름마다 수많은 사연이 있다는 것을. 그 사연에는 깊은 눈물의 바다가 저마다 존재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낮인데도 공간에는 작은 빛방울이 떠다녔다. 유리 표면을 따라 옅은 햇빛이 흔들리고, 그 흔들림이 내 눈물 위에 반사되어 자잘한 별처럼 흩어졌다. 낮에도 별이 있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밤을 기다리지 않아도, 빛은 있는 곳에서 나타났다.

아빠가 내 옆으로 와서 아주 낮게 말했다.

“은하야.”

부른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하나의 문장만 꺼냈다.

“우리, 오늘부터 천천히 배워보자.”

무엇을 배울지 말하지 않았는데, 나는 알 것 같았다. 없는 사람과 함께 사는 법, 떠난 사람을 떠나보내지 않으면서도 앞으로 걷는 법, 숨을 길게 내쉬는 법. 나는 작게 대답했다.

“응.”

우리는 돌아서서 복도를 걸었다. 엘리베이터 거울 속에서, 아빠는 유골함을 대신하듯 내 가방 끈을 한쪽으로 잡아 주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동작이 ‘같이 가자’라는 문장처럼 정확했다. 1층 로비의 자동문이 열릴 때, 초봄의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차갑기만 한 건 아니었다.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동안, 피부 아래 깊은 곳의 뜨거운 부분을 알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느껴졌다.

밖으로 나오자 날씨가 갑자기 흐려졌고, 구름이 낮게 깔렸다. 주차장으로 걸어가는 동안, 멀리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잠깐 보았다. 햇빛이 거의 없는 하늘도 하늘이었다. 구름 사이로 아주 얇은 빛 한 줄이 보였다. 그 빛이 땅까지 닿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 거기 있어?’ 나는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속으로 물었다. 대답 같은 바람이 불었다. 진짜인지 착각인지 가를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차에 타자 차창 밖 풍경이 뒤로 흘렀다. 아래께 병원으로 향하던 길과 같은 노선인데, 모든 것이 다른 속도로 지나갔다. 신호등이 빨강에서 초록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때와 다르게, 신호가 바뀌는 데 시간을 줬다. 바뀌는 그 잠깐 동안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또다시 아침의 식탁이 자꾸만 올라왔다. 미역국의 김, 잡채의 윤기, 그릇을 내려놓던 손. 나는 그 장면들을 하나하나 불러낸 뒤, 마지막으로 조도를 낮췄다. 어둡게 만드는 게 아니라, 눈을 감아도 볼 수 있을 만큼 은은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야 마음속에 오래 놓아둘 수 있었다. 아빠가 운전대 위에서 손을 옮겼다. 방향지시등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그 소리에 맞춰, 나는 또 한 번 숨을 길게—더 길게—내쉬었다.

집 앞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더 흐려져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닥의 먼지 냄새와 잔열이 섞인 공기가 우리를 맞았다. 나는 신발을 벗고, 한쪽 벽에 기대어 섰다. 아침에 닫았던 그 문이, 같은 소리를 내며 닫혔다. 같은 소리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로. 나는 현관에서 한 번 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웠을 때 천장은 평소보다 낮아 보였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별 스티커 몇 개가 들뜬 채 붙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한 개를 살짝 눌러 붙였다. 손끝에 붙은 접착제의 끈적임이 현실을 끌어당겼다. 눈을 감고 들숨 하나, 날숨 셋. 내쉬는 숨이 길어질수록, 가라앉던 마음이 한 마디씩 떠올랐다. 떠오른 마음은 금세 또 내려갔지만, 내려가면서도 완전히 바닥에 닿지는 않았다. 그 사이사이에 얇은 공기층이 생겼다. 나는 그 얇음을 부력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름을 붙이고 나니, 밤이 아주 조금 덜 무거웠다.

아빠 방에서 가끔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사라졌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에 있었지만,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리듬에 귀를 기울이며, 나는 눈을 감았다. 잠은 금방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낮의 유리면, 이름표, 국화가 번갈아 떠올랐다. 숨을 세었다. 아주 얕게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 얕음이 겹겹이 포개지다가 어느 순간, 나는 물 냄새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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