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수영장

별빛의 부력-1부

by 시쓰는 충하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이 물결 모양으로 흔들렸다. 실제로 흔들리는 건 물이었지만, 빛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염소 냄새가 코끝을 톡 건드렸다. 타일 바닥은 흰색과 파란색이 체스판처럼 이어져 있었고, 검은 라인이 수면 아래에서 길게 뻗어 있었다. ‘수심 1.2m’라고 적힌 표지판. 벽 끝의 ‘T’자 표시. 발끝을 타고 차가움이 올라왔다. 나는 맨발이었다.

“은하야.”

엄마가 부르자, 소리가 반사되어 벽에서 한 번 더 났다. 같은 이름인데 물 위와 물 아래의 목소리가 겹치며 조금 달라졌다. 엄마는 옅은 회색 수영모를 쓰고 있었다. 젖은 모발이 조금 삐져나온 모습이 낯익었다. 수영복은 검은색이었다. 어깨끈을 한 쪽씩 정리하던 손놀림. 엄마의 눈은 사진을 찍을 때처럼 집중하고 있었지만, 조리개를 조절하는 대신 내 호흡을 살폈다.

우리는 얕은 쪽에 섰다. 물은 발목을 감싸고 종아리를 지나 무릎을 덮었다. 허벅지까지 차오르자, 공기가 뒤로 밀려났다가 돌아왔다. 작은 출렁임이 등이랑 배를 번갈아 쳤다. 물살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내 몸도 아주 조금 흔들렸다.

나는 어깨를 뒤로 젖히고, 고개를 살짝 들어 천장을 봤다. 형광등이 네모난 칸마다 떠 있었고, 물결이 그 네모를 구부렸다. 엄마가 내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숨 들이쉬고—하나, 둘. 내쉬고—하나, 둘, 셋.”

그 리듬은 장례식장에서도, 병원에서도, 그리고 지금 물 위에서도 같은 모양이었다.

“뜨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엄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려운 건, 힘을 빼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몸은 모르는 것 같았다. 알아야 할 것이 몸에서 도망치는 느낌. 물살이 종아리를 스치고, 배 옆을 툭툭 건드렸다.

“등으로 누워 볼까.”

엄마가 팔을 길게 펴 보였다.

“귀가 물에 잠기도록. 턱은 너무 올리지 말고.”

나는 천천히 엉덩이를 낮추고, 물이 허리를 덮게 했다. 등 뒤로 물이 들어왔다. 척추 사이사이에 아주 얇은 손바닥들이 끼어드는 것 같았다. 귀에 물이 차자 소리가 둔탁해졌다. 천장의 형광등이 둘로 갈라져 보였다. 세상의 소리가 물막을 지나올 때마다 모서리를 잃었다. 엄마의 얼굴도 물과 공기 사이에 나뉘어 있었다. 위의 엄마와 아래의 엄마가 있었고, 위의 엄마가 입술을 떼면 아래의 엄마는 조금 늦게 말을 했다.

“그대로, 숨을 길게 내보내.”

날숨—하나, 둘, 셋.

처음에는 떴다. 물이 내 등을 떠밀었다. 등이 물 위에 넓게 펼쳐졌고, 배가 하늘 쪽으로 낙엽처럼 들렸다. 나는 잠깐 놀랐다. 떠오르는 건 무게가 사라지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 무게를 물이 안쪽에서 받아 내는 일이었다. 떠오르면서도 무거웠다. 그 무거움을 물이 감싸 안는 느낌. 이게 부력이라는 건가, 생각하는 찰나, 배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그건 거의 반사였다. 떠오르는 느낌이 낯설어서, 나는 그 낯섦을 통제하려고 배를 조였다. 배가 단단해지자 숨이 얕아졌다. 얕아지자, 몸이 아주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물과 내 사이의 얇은 공기 같은 틈이 사라졌다.

“힘 빼.”

엄마의 목소리가 물막을 통과해 왔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끄덕이는 동안에도 배에 힘이 더 들어갔다. 등은 여전히 넓게 펼쳐져 있었지만, 어깨가 조금씩 솟았다. 귀가 물에서 빠져나오고, 물 밖의 소리가 갑자기 선명해졌다. 선명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나는 다시 등을 눌러 물에 귀를 담갔다. 배를 느슨하게 하려는 순간, 발끝에 쥐가 났다. 발을 꼼지락거리자, 균형이 깨졌고, 몸이 옆으로 슬쩍 돌아갔다. 물이 한쪽 귀에만 들어갔다. 반쪽짜리 울림. 그 울림 사이로, 나는 숨을 멈췄다. 멈추자마자, 더 빠르게 가라앉았다.

“멈추지 마.”

엄마가 내 손목을 받쳤다. 아주 가벼운 힘. 들어 올리는 게 아니라, 가라앉는 속도를 늦추는 정도.

“숨—들이쉬고, 길게 내쉬고.”

나는 다시 내쉬었다. 내쉬는 동안만큼은, 가라앉는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 하지만 다시 들이쉴 때, 나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올려 목을 보호했다. 어깨가 올라가면, 몸은 가라앉는다. 그것도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몸이 먼저 움직였다.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다시.”

우리는 얕은 쪽에서만 계속 연습했다. 나는 뜨려고 애썼고, 애쓰는 순간마다 가라앉았다. 뜨는 일과 애쓰는 일이 서로 반대 방향이라는 걸 아는데도, 고쳐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그냥 맡기면’이라는 문장이 밝혀졌다가, 발끝부터 어둡게 꺼졌다. 나는 물 위에 누운 채, 천장에 매달린 형광등 개수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세다가 잊었다. 잊다가 다시 셌다. 세다가 숨을 내쉬고, 내쉬다가 숫자를 놓치고, 놓치다가 배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면 또 가라앉았다.

“어릴 때처럼 해 볼까?”

엄마가 물었다.

“양동이동동”

나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우리 동네 작은 실내수영장에는 양동이를 테이프로 감아 만든 작은 부판들이 있었다. 어린 나는 그걸 ‘양동이동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코치가 그것을 우리 배 위에 얹어 주고, 손으로 받쳐 주며 물 위를 밀어줬다. 부판은 물 위에 떠 있으면서, 배 위에서는 기울었다. 그 미묘한 기울기를 배가 알아차려야 했다. 부판을 잡아당기지 않고, 그 위에 누워 있기. 눌러 누르지 않기.

엄마는 내 배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손바닥은 따뜻했고, 물은 차가웠다. 그 사이에서 내 배가 조금 평평해졌다.

“여기.”

엄마가 말했다.

“여기가 힘이 들어가려고 할 때를 알려줘.”

“어떻게 알아?”

“손이 알아.”

엄마는 물속에서도 사진을 찍던 사람이었다. 렌즈 대신 손바닥을 들고, 초점 대신 내 호흡을 맞췄다. 나는 눈을 감고, 배 위의 온기를 느꼈다. 손바닥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내 숨이 움직일 때마다, 손바닥의 압력이 아주 조금 달라졌다. 들이쉴 때에는, 손이 내 배에서 미끄러져 내려갈 듯했고, 내쉴 때에는, 손이 내 배를 가볍게 밀어 올리는 듯했다.

“지금.”

엄마가 속삭였다.

정말, 지금이었다. 들이쉬려는 찰나. 들숨이 오기 직전, 배의 피부 아래에서 작은 근육들이 동시에 수축하려고 했다. 나는 그 순간을 붙잡았다. 붙잡으려는 강박이 오히려 힘이 됐다. 배에 힘이 들어갔다. 몸이 또 가라앉았다.

“또.”

엄마의 목소리가 물과 함께왔다.

“그다음.”

“다시.”

“다시.”

멈추고, 가라앉고, 떠오르고, 또 멈추고.

몇 번을 반복했는지 모를 만큼 반복하다가, 수영장 소리가 합창처럼 들렸다. 스테인리스 사다리에서 물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샤워부스 물줄기가 기침하듯 터지는 소리, 멀리서 코치의 휘슬이 높은 음으로 두 번, 낮은 음으로 한 번. 왼쪽 레인에서 발차기만 배우는 아이들의 웃음. 누군가 물을 세게 치자 생긴 작은 폭포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물 위에 한꺼번에 떠다녔다. 나는 그 소리들을 따라 호흡을 맞춰 보려 했다. 휘슬에 들숨, 사다리 물방울에 날숨. 하지만 소리는 제각각이었고, 박자는 맞춰지지 않았다. 박자가 맞춰지지 않자, 또 불안해지고, 불안해지자 배가 단단해졌다. 몸은 가라앉았다.

“깊은 쪽으로 갈까?”

엄마가 물었다.

“아직…”

나는 대답하려 했지만, 말 대신 물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맛은 아주 옅은 소금과 염소였다. 목구멍 아래로 내려가려는 물맛이 느껴지자, 공포가 올라왔다. 나는 허리를 꺾어 몸을 세웠다. 물방울이 얼굴에서 떨어져 턱을 때렸다.

엄마가 말했다.

“지금은 얕아서 가라앉아도 바로 서는 거야. 깊은 쪽은 다르겠지.”

그래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내 표정을 보고 한 발짝 물러섰다. 물러섰다는 건, 물러나는 연습을 하자는 뜻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한 발짝 앞에 서거나, 한 발짝 뒤에 섰다. 나를 밀지도 당기지도 않고,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확인했다.

다시 등, 다시 귀를 물에 담그고, 천장을 바라보고, 들숨 하나—날숨 셋. ‘셋’이라고 속으로 말하는 그 순간, 배가 끌려 올라간다. 그 끌림을 놓아줘야 하는데, 놓아주려는 순간 무릎이 굳는다. 무릎이 굳으면 발목이 굳고, 발목이 굳으면 발끝이 아래로 향한다. 발끝이 아래를 향하면 곧장 가라앉는다.

“무릎.”

엄마가 말했다.

나는 무릎을 살짝 풀었다. 무릎에서 힘을 빼자, 발끝에서 긴장이 풀렸다. 발끝이 아래를 가리키던 화살표가 둥글게 말려 올라왔다.

“턱.”

엄마가 말했다.

나는 턱을 조금 내렸다. 턱을 내리자 목이 길어지고, 목이 길어지자 어깨가 내려갔다. 어깨가 내려가자, 귀가 다시 물에 잠겼다.

“배.”

그 말이 들리자마자, 배는 먼저 반응했다. 단단해지지 않으려고 단단해졌다. 나는 웃음이 났다. 웃음이 나는 순간, 물이 입으로 들어왔고,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자마자, 몸은 또 가라앉았다. 엄마가 내 등을 받쳤다. 손바닥이 날개뼈 아래쪽을 스쳤다. 나는 몸을 더 곧게 하려 했다.

시간이 지났다. 어떤 순간에는 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찌를 것 같았고, 어떤 순간에는 빛이 너무 흐려서 가장자리가 지워졌다. 나는 빛 대신 타일의 숫자를 세었다. 파란 타일이 몇 줄인지, 흰 타일이 몇 줄인지. 세다가 물컹한 알 수 없는 숫자에 닿으면, 다시 숨을 세었다. 들숨 하나—날숨 셋. 셋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몸의 경계가 느슨해졌다. 그러면 떠올랐다. 그 느슨함을 감당하는 일이 어려웠다. 떠오르는 동안, 나는 ‘가벼워진다’고 믿고 싶었지만, 사실은 ‘맡긴다’는 말이 더 정확했다. 맡긴다는 건 포기와는 달랐다. 포기는 손을 놓는 일이고, 맡김은 손을 펴는 일이었다. 손을 놓으면 빠지고, 손을 펴면 뜬다. 나는 그 차이를 머리로는 알았지만, 몸으로 배워야 했다.

엄마가 말했다.

“이제 깊은 쪽으로 가자.”

이번에는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쪽으로 걸어갈수록, 물이 허리를 지나 가슴을 덮었다. 심장이 물 안에서 더 크게 뛰는 것 같았다. 발바닥이 바닥을 놓지 않으려 했고, 무릎은 모르는 사이에 굳었다. 레인로프가 옆에서 부딪쳐 작은 파동을 만들었다. 파동이 복사되어 내 배 위에 얇은 곡선을 만들었다. 나는 그 곡선을 따라 호흡을 맞추려 했다. 곡선의 위쪽에서 들숨, 아래쪽에서 날숨. 그러나 곡선은 내가 맞추려는 순간 직선이 되었고, 직선이 되자마자 부서져 여러 개의 작은 점으로 흩어졌다.

“이제 바닥이 닿지 않으니 준비해.”

엄마가 말했다.

정말, 한 발짝 더 나가자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잠깐의 무중력. 허공에 매달린 발이 허둥댔다. 무릎을 펴려 했고, 무릎이 펴지는 순간, 몸은 빳빳해졌다. 배가 단단해지고, 어깨가 올라가고, 목이 굳었다. 몸은 아주 빠르게 가라앉았다. 물이 얼굴을 덮고, 코를 덮고, 이마를 덮었다. 천장이 칠해진 것처럼 사라졌다. 검은 라인이 눈앞에 왔다. 바닥 쪽의 소리들이 더 크게 들렸다. 휘슬 소리는 멀어지고, 내 심장 소리가 가까워졌다. 둥, 둥, 둥.

어둠이 아니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밝음이 약해지는 게 아니라, 색이 줄어드는 느낌이었다. 색이 지워진 자리에는 소리와 촉감이 남았다. 귀 주변을 감싸는 물, 팔뚝을 통과하는 물,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드는 물. 가라앉는 동안,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눈을 떠도 무엇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불안은 시야가 좁아질 때가 아니라, 모든 게 보일 것 같을 때도 커진다.

엄마의 손이 내 옆구리를 스쳤다. 손의 온기는 물의 냉기에 의해 다른 종류의 따뜻함이 되었다. 나는 잠깐 그 손을 잡으려 했지만, 엄마는 손을 내 옆에 두기만 했고, 잡히지 않게 했다. 잡히지 않는 것이 지금은 더 안전했다. 잡으면 끌어올리려고 하겠지만, 지금은 나 스스로 떠야 했다.

“숨.”

엄마의 목소리는 물속에서도 들렸다. 어떻게 들리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들렸다. 나는 들이쉬려 했다. 물속에서 들이쉬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대신 내쉬었다. 내쉬는 것은 가능했다. 내쉬자, 몸이 잠깐 멈췄다. 멈춘 동안, 나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빼는 순간, 몸은 아주 미세하게 떠올랐다. 그 미세함은 거의 착각에 가까웠지만, 내 몸은 그 착각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떠오르는 방향으로 몸의 결이 돌아섰다.

그러나 들숨이 필요했다. 들숨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 공포가 몸의 모든 관절을 잠갔다. 나는 팔을 휘저었다. 물속의 팔질은 허공의 손짓처럼 허망했다. 물은 내가 휘두른 만큼 되돌려 치지도 않았고, 내가 휘두른 만큼 앞으로 나아가게 하지도 않았다. 무엇을 되돌려 받고 무엇을 밀어내는지 알 수 없는 세계. 나는 결국 몸을 둔각으로 꺾어 위를 향했다. 위로 향한다는 게, 반드시 올라간다는 뜻은 아니었다. 방향만 위였다.

엄마의 손이 등에 닿았다. 내 등을 밀지 않고, 등 곡선을 따라 손바닥을 미끄러뜨렸다. 내 척추를 하나하나 확인하듯 내려가다, 다시 올라왔다. 그 손길이 내 등뼈 사이사이를 벌렸다. 벌어진 곳으로 물이 들어왔다. 물이 들어오자, 나는 등으로 또 다른 ‘바닥’을 느꼈다. 물에는 바닥이 없지만, 넓은 바닥처럼 감싸 안는다. 바닥이 넓을수록 사람은 덜 요동친다.

“등.”

엄마가 말했다.

나는 등으로 눕는 동작을 머리로 먼저 수행했다. 이미 누운 등은 더 눕지 못하지만, 등으로 버티는 일은 가능했다. 몸의 중심을 등에 두는 일. 중심이 배에 있으면 가라앉고, 중심이 등에 있으면 뜬다—엄마가 예전에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물 위로 떠올랐다.

다시 내쉬었다. 내쉬는 동안, 어깨가 내려가고, 귀가 물에 잠기고, 턱이 너무 올라가지 않고, 무릎이 잠깐 풀렸다. 그때, 떠올랐다. 정말로. 아주 짧게. 떠올랐다는 걸 느끼는 순간, 나는 놀랐다. 놀라면 사람은 강해진다. 강해지면, 사람은 무거워진다. 다시, 가라앉았다.

눈을 감았다가 떴다. 떴다가 감았다. 눈꺼풀의 움직임이 물의 두께를 바꿨다. 엄마의 그림자가 위로 지나갔다. 엄마의 손이 다시 내 배 위에 올랐다.

“여기.”

손바닥이 말했다.

“여기서부터 단단해지려 해.”

나는 배 위에서 시작되는 작은 긴장을 느꼈다. 그 긴장은 배에서 시작해 갈비뼈를 타고 올라 등으로 번졌다. 번진 길은 곧장 목으로 갔다. 목은 보호하려는 습관이 몸에서 가장 오래된 장소다. 오래된 습관은 가장 빨리 반응한다.

“괜찮아.”

엄마가 말했다.

“괜찮아”라는 말은, 괜찮지 않을 때에만 제대로 들리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에 기대어 또 내쉬었다. 내쉬자, 몸이 아주 느리게 떠올랐다. 떠오르는 동안, 나는 옆 레인의 아이가 하는 발차기 소리를 들었다. 첨벙, 첨벙, 첨—. 박자가 조금 새는 발차기. 새는 박자에 내 호흡을 맞추자, 호흡이 덜 새었다. 물은 완벽한 박자를 좋아하지 않았다. 조금 어긋난 것들과, 조금 늦은 것들과, 조금 빠른 것들을 섞으면, 그때 비로소 몸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오래 물속에 있었는지 모를 때, 엄마가 나를 위로 끌어올렸다. 끌어올렸다는 말보다는, 손바닥으로 내 등을 받치고 위로 ‘올라오는’ 방향을 살짝 기울여 주었다는 말이 더 맞았다. 수면 위로 얼굴이 나오자, 공기가 얼굴을 덮었다. 공기는 물보다 가벼웠지만, 더 무겁게 느껴지기도 했다. 기침이 한 번 터졌다. 그리고 웃음이 조금 나왔다. 웃음이 나자, 물이 다시 입으로 들어왔다. 웃음과 물은 쉽게 섞였다.

“한 번 더?”

엄마가 물었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번은 더 나을 것 같았다. 그 ‘더’는 아주 작을 것 같았다. 작은 것들이 모여 큰 숨이 된다는 걸, 나는 그렇게 배우고 있었다.

시간은 제멋대로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우리는 얕은 쪽과 깊은 쪽을 오갔다. 나는 뜨다가 가라앉았다. 떠오르는 순간과 가라앉는 순간 사이에 있는 아주 짧은 평형의 칸막이를 채워 보려고 애썼다. 그 평형은 숫자로 세어지지 않았다. 그 칸은 눈으로 보이지 않았다. 몸으로만 알아채졌다. 숨을 내쉬는 끝, 들이쉬는 시작. 그 사이. 거기에 있었다.

엄마가 손목시계를 보듯 내 얼굴을 보았다. 눈동자가 초침처럼 움직였다.

“자 이제, 마지막.”

마지막이라는 말은 늘 둘 중 하나였다. 진짜 마지막이거나, 다음을 위한 마지막. 나는 그것이 다음을 위한 마지막이 되기를 바랐다. 마지막이 다음을 만든다면, 마지막은 마지막이 아니니까.

나는 한 번 더 등을 펴고, 귀를 물에 담그고, 턱을 너무 올리지 않고, 무릎을 살짝 풀고, 발끝을 길게 뻗었다. 배 위에서 올라오는 작은 긴장이 움직이려는 순간, 나는 손을 펴듯 배를 펴 보았다. 손바닥이 펼쳐지는 느낌을 배로 옮겼다. 배의 피부가 눈꺼풀처럼 얇게 펴졌다. 얇아지자, 따뜻해졌다. 따뜻해지자, 물이 덜 차가웠다.

떠올랐다.

이번에는 조금 오래. 오래라는 말이 꿈 속에서는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조금 ‘더’였다. 형광등이 한 칸, 두 칸, 세 칸, 네 칸. 네 칸을 넘길 때까지 나는 배를 단단히 하지 않았다. 그동안 내 몸은 계속 무거웠지만, 무거운 채로 떠 있었다. 떠 있는 동안, 나는 자신이 물 위에 놓인 얇은 나뭇잎 같다고 생각했다. 나뭇잎은 물을 미는 게 아니라, 물 위에 놓여 있다. 물은 나뭇잎을 들어 올리지 않고, 그저 밑에서 받쳐 준다.

그때, 휘슬 소리가 굉음을 냈다. 누군가 깊은 쪽에서 몸을 세게 내던졌다. 커다란 파동이 벽을 치고 돌아왔다. 내 곁을 지나며, 그 파동이 내 배 위에 도달했다. 나는 놀랐다. 놀라자, 배가 단단해졌다. 단단해지자, 가라앉았다. 이번에는 빠르게.

물은 한 번 더 내 머리 위까지 올라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는 동안, 장례식장에서 보았던 유리문이 눈꺼풀 안쪽에 나타났다. 유리문 뒤의 국화. 유리문 뒤의 이름. 유리문에 붙인 손바닥. 그 손바닥의 열. 그 열이 물 속에서 배 위로 옮겨졌다. 그 열은 엄마의 손이었다. 엄마의 손은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에 있었다. 사이라는 말이, 오늘따라 많이 떠올랐다. 물과 공기 사이, 떠오름과 가라앉음 사이, 말과 침묵 사이. 엄마의 손은 늘 그 사이에 있었다.

“힘 빼.”

엄마가 다시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이번에는 문장이 아니라 소리로 들었다. ‘힘’과 ‘빼’ 사이의 짧은 공백. 그 공백을 길게 늘였다. 늘어나는 동안, 배는 단단해지려다가 풀렸다. 풀리는 동안, 몸은 위도 아래도 아닌 방향으로 움직였다. 방향이 없는 움직임. 그 움직임이, 가만히 있는 것과 닮았다. 사람은 가만히 있을 때에도 움직인다. 가만히 있으려면, 움직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눈을 떴다. 검은 라인이 다시 멀어졌다. 라인이 멀어지는 동안, 위가 가까워졌다. 가까워지는 위는 언제나 멀어지는 아래보다 느리다. 느리다는 사실이 안심이 되기도 했다. 빨리 올라가야 할 이유도, 빨리 내려가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있는 속도로.

물 위로 얼굴이 나왔을 때, 공기가 내 볼을 때렸다. 이번에는 기침이 나오지 않았다. 숨이 먼저 나왔다. 들숨. 들숨이 길었다. 길수록, 내 어깨가 덜 올라갔다. 엄마가 웃었다. 웃음이 물 위에 작은 원들을 만들었다. 그 원이 내 쪽으로 왔고, 내 가슴팍에서 부서졌다.

“이제 알았지?”

엄마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고 말하면 거짓말 같았고, 모른다고 말하면 배운 시간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고개만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내 귀에 아직 물이 남아 있었다. 그 물이 안쪽에서 작은 호수를 만들었다. 호수 위의 바람은 약해서, 그 표면에는 작은 반짝임만 있었다.

우리는 수영장 가장자리로 걸어갔다. 금속 사다리를 붙잡고 올라가는 동안, 발목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물방울이 타일 위에서 빠르게 찢어졌다. 나는 타올로 머리를 감싸고, 어깨에 걸쳤다. 엄마는 타올을 한 번 더 여며 주었다.

“추워?”

“조금.”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은 여전히, 괜찮지 않을 때에만 제대로 들렸다. 엄마는 내 어깨를 문지르다가, 손을 떼었다. 손을 떼는 그 시간이 길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길었다면 나는 붙잡고 말았을 것이다.

샤워실 쪽에서 물줄기가 켜졌다 꺼졌다. 우리는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벤치는 오래되어 나무결이 등에 묻었다. 벽에 붙은 시계가 ‘8:03’을 가리켰다. 수영장은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는데, 시계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계속 움직였다. 닫힌다는 말과 움직인다는 말이 동시에 있는 곳. 엄마는 손목시계를 차고 있지 않았다. 대신, 내 손목을 한 번 만졌다.

“내일 또 오자.”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내일이라는 말에 머리가 반짝했지만, 가슴은 잠깐 움츠러들었다. 내일은 오는가. 꿈에서의 내일은 늘 오늘이었다. 아니, 그보다 내일 꿈 속에도 엄마는 있을까?


그리고 깼다.

방은 여전히 어두웠다. 커튼 틈으로 도로의 불빛이 한 줄씩 들어왔다가 사라졌다. 베개가 젖어 있었다. 젖은 자리에 내 뺨을 옮기지 않으려고, 몸을 살짝 돌렸다. 머리맡에 붙여 둔 형광별이 한 개 떨어져 있었다. 떨어진 별이 어디 있는지 찾아보려다가, 눈을 감았다. 귀 속에서 물이 출렁이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실제로 물이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귀 안쪽에 남은 꿈 속 수영장의 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것 같았다.

나는 손바닥을 배 위에 올렸다. 따뜻했다. 손바닥 아래에서 배가 부풀었다 내려갔다. 들숨 하나, 날숨 셋.

그때, 아주 멀리서, 아주 가늘게,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힘 빼.”

‘힘’과 ‘빼’ 사이의 공백이 길었다. 그 공백을 한 번, 두 번, 세 번, 더 길게 늘렸다. 늘릴수록 어깨가 내려갔다. 내려갈수록, 배가 평평해졌다. 평평해질수록, 눈꺼풀이 가벼워졌다.

나는 눈을 감고, 배 위의 손을 조금 더 넓게 폈다. 손가락 사이에 얇은 공기층이 생겼다. 그 얇음이 물 같았다. 물이 아닌데 물 같았다. 나는 그 얇음에 몸을 맡겼다. 맡기는 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냥, 있었다.

창밖을 한 번 더 스치는 자동차 불빛이 벽을 흘러가며 작은 물결을 그렸다. 내 방의 벽이 수영장 벽처럼 보였다. 나는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를 아주 작게 냈다. 그 소리는 방 안에서 금방 사라졌지만, 내 귀 속 수영장에서는 한 번 더 울렸다. 멀리서 휘슬이 아주 낮게 한 번 울렸다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아주 길게 내쉬었다. 내쉬는 끝에서—정말 아주 끝에서—가슴 어딘가가 미세하게 떠올랐다. 그 미세함을 ‘괜찮아’라고 불러도 될 것 같았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의, 아주 작은 물결. 그 물결 위에 몸을 뉘었다. 밤은 깊었고, 물의 온도는 더 이상 차갑지 않았다. 꿈은 끝났지만, 배 위의 손바닥은 그대로 있었다. 손바닥의 온기가 희미해질 때까지, 나는 ‘힘’과 ‘빼’ 사이의 공백을 세었다. 세다가 잠들었다.


다시, 아주 얕은 잠으로.

매거진의 이전글3. 낮은 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