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별빛의 부력

별빛의 부력-5부

by 시쓰는 충하

카페의 셔터가 올라가며 철이 서로 스치는 소리가 낮게 흘렀다. 영희 이모가 앞치마 끈을 허리에 단단히 묶으며 말했다.

“일찍 왔네. 오늘 끝나고 울지 말고.”

“울지 않으려고요… 최대한.”

내 목에 걸린 스트랩이 가볍게 흔들렸다. 어젯밤에 정리해 둔 체크리스트를 펼쳤다.


— 포스터 부착(입구/거리 쪽)
— 타이틀 보드 체크
— 사람—장소—물건 순서 재확인
— 영상 프레임 루프/음량 -20dB
— 캡션카드 부착 위치 2cm 아래
— 손글씨 편지 액자 마지막 벽면


수정이가 포스터를 들고 다가왔다. 크림빛 바탕에 얇은 세리프, 한 장의 사진이 적막하게 중심을 지키고 있었다. ‘빛은 내 편’—Jared의 말에서 건져 올린 문장 하나가 아주 작은 크기로 하단에 적혀 있었다.

“여기, 테이프 잡아줘.”

“응.”

포스터의 모서리를 벽에 맞추어 붙이자 종이 속 공기가 한 번 빠져나가듯 ‘슥’ 했다. 멀리서 보아도 제목은 지나치지 않았다. 아빠가 사다리를 들어 문턱을 넘었다. 손엔 드라이버와 못이 든 작은 통.

“무거운 건 내가 할게.”

아빠는 타공 위치를 벽에 연필로 점을 찍고, 액자 뒤의 와이어를 한 번 더 당겨 보았다. 나는 등 뒤에서 수평계를 맞췄다. 초록 방울이 가운데에 자리하면, 아빠가 못을 가볍게 두드렸다. ‘딱—딱—딱.’ 금속과 목재가 서로의 자리를 찾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첫 번째 섹션, ‘사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Jared, Harris 부부, Ava. 그리고 작게 ‘돌려준 손’—톰과 내 손이 같은 카메라를 붙잡고 있는 사진. 사람들의 얼굴은 크지 않았다. 표정보다 눈빛이 먼저 보였다. 캡션카드는 한 줄뿐이었다.


— 창가의 숨 / 국제학생처 / “빛은 내 편”
— 저녁의 온도 / 롱비치 거실 / “집의 온도”
— patience / 창가 / “기다림”
— 돌려주는 손 / 현관 / “be kind”


두 번째 섹션, ‘장소’. 유리문, 도서관 계단, 파란 현관문, 레몬 나무 그림자. 장소들은 비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비어 있지 않았다. ‘사람 없는 사진에도 사람이 있다’—엄마 노트 첫 장의 문장이 벽에서 빛났다.

세 번째 섹션, ‘물건’. 명함, 엽서 묶음, 찻잔의 금 테, 버튼 배지 “Be kind.” 마지막에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공항 유리 너머에 찍은 비행기 동체의 곡선이 있었다. 얇은 파랑과 흰 곡선. 떠오름과 부력의 모양.

영상은 카운터 맞은편 벽에 작은 프레임으로 걸었다. ‘국제학생처 앞—창가의 빛—Jared의 목소리—현관 셔터—레몬 잎 흔들림.’ 소리는 낮았다. 귀를 가져와 들어야만 했다. 누군가 멈춰 설 때마다 발소리가 스며들었다. 여백을 믿는 연출. 지나가는 바람의 속도를 흉내 냈다.

“편지는… 여기로 가자.”

영희 이모가 마지막 벽을 손바닥으로 쓸며 말했다.

“끝에 멈추게 하려면, 끝이 너무 꽉 차 있으면 안 돼. 두 걸음 물러서 자리 잡아.”

나는 액자를 들고 벽과 거리를 맞췄다. 유리 속 흰 종이, 검은 잉크. 제목은 ‘잃은 이들들에게 전하는 편지’. 손으로 쓴 획이 종이의 섬유를 따라 아주 조금 흔들렸지만, 흔들림이 오히려 문장을 살아 있게 만들었다.

점심 무렵, 카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의도하지 않은 침묵들이 서로의 어깨를 비껴 앉았다. 수정이는 입구 옆 작은 테이블에서 리플렛을 건네고, 방문객이 원하면 벽의 순서를 설명했다. ‘사람—장소—물건’이라는 말을 할 때마다 손가락이 공중에서 작은 라인을 그렸다. 나는 자주 뒤로 물러섰다. 뒤로 물러서야 전체가 보였다. 전체를 보고 나면,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아빠가 중간 벽 앞에 섰다. 롱비치의 현관 사진 앞이었다. 파란 문과 문턱의 빛. 아빠는 고개를 아주 조금 기울여 사진을 읽었다.

“커피 더 드릴까요?”

영희 이모가 아빠에게 물었다.

“전 보리차로 주세요.”

“역시 언제나 차를 드시는군요”

이모는 웃으며 유리컵에 따뜻한 보리차를 따랐다. 오후 한 시. 문이 열리며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검은 모자 챙을 눌러쓴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맨, 사장님이 소개해 준 ‘겨울 바다’를 오래 찍었다던 분이었다. 카페 중간에서 천천히 회전을 하듯 걸었다. ‘사람—장소—물건’을 차례로 보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그는 내게 다가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흔들린 컷을 남겼네요.”

“네. 지우지 않았어요.”

“잘했어요. 흔들림도 기록이니까.”

그는 딱 한 마디 더 보탰다.

“물 위에서 흔들리지 않는 건, 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 말은 오늘의 제목과 어울렸다. <별빛의 부력>. 힘을 빼야 떠오른다. 오늘은 사람들이 그 말을 스스로 찾아가는 날이었다.

‘영상의 소리가 너무 작은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한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들어왔다.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영상 앞에서 귀를 바짝 가져다 대고 가만히 섰다. 걷는 소리와 잔을 내려놓는 소리,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아이의 귀를 지나 아이의 표정으로 옮겨갔다. 아이는 돌아서며 내게 물었다.

“왜 소리를 작게 해요?”

나는 미소로 답했다.

“귀를 가까이 대 보게 하기 위해서요. 때로는 직접 귀를 가져와야 들리는 게 있어요.”

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리플렛을 하나 가져가며 말했다.

“별빛… 예쁘다.”

고맙다는 말을 아이의 뒷모습에게 보냈다.

오후 두 시 반, 작은 꽃다발을 든 손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아빠의 지인들, 엄마의 고등학교 동창이라는 분, 동네 주민 사진관 사장님 부부. 사진관 사장님은 벽 앞에서 유난히 오래 머물렀다. ‘사람 없는 사진에도 사람이 있다’는 문장을 읽고는 내게 와서 물었다.

“이 문장… 어떻게 생각한거죠?”

“엄마 노트에 있었던 글이었어요.”

“좋은 말이어서 물어봤어요.”

그는 단정히 말했다. 그 한 문장이 사진관 사장님의 눈에 오래 머물렀다.

“이모.”

“응?”

“이 테이블에 손편지 카드 몇 장 놓아도 돼요? 전시 보다가 떠오른 말을 남기게요.”

“그래. 팬도 꽂아둬.”

나는 적당한 두께의 카드와 검은 펜을 꺼내 ‘여백 카드’라 적고 작은 상자에 꽂았다. 사람들이 몇 마디를 남기기 시작했다.

시간은 고르게 흘렀다. 내 호흡과 카페의 호흡이 같은 쪽으로 맞춰졌다. 들숨과 날숨은 굳이 세지 않았다. 이제는 세지 않아도 박자가 어긋나지 않았다. 세 시가 조금 넘어서, 나는 마지막 벽의 액자 앞에 섰다. ‘잃은 이들에게 전하는 편지.’ 사람들의 움직임이 조금 줄어들었을 때, 조용히 낭독했다.

“…이 전시는 엄마의 개인적 꿈에서 출발했지만, 엄마가 내게 남겨 준 편지들이 결국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엄마로 인해 슬픔과 원망과 아픔을 겪었고, 그 사이사이에서 ‘사라졌다는 사실만 기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나는 알게 되었습니다. 사라진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름다운 것은 결국 자기의 모양으로 떠오른다는 것을. 밤하늘의 별빛처럼, 엄마의 삶과 꿈도 떠올랐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가 돌아오라고 남겨 둔 자리. 그 자리는 비어있지만 당신으로 인해 비어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읽는 동안, 유리 너머의 복도에서 누가 지나갔는지 빛이 한 번 흔들렸다가 돌아왔다. 흔들렸다가 돌아오는 빛을 보는 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박수는 없었다. 대신 작은 숨들이 정리되는 소리가 방 전체에 얕게 퍼졌다. 아빠는 편지를 읽는 내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 읽고 난 뒤에만, 아주 짧게 말했다.

“잘썼다. 감동적이야.”

그 말은 문장이면서 쉼표였다. 내 어깨가 자연히 내려앉았다. 어느 순간부터 카운터 위에 종이컵이 늘어갔다. 이모가 무료 커피를 몇 잔 더 내주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내가 한 잔씩 쏜다. 축하하는 날이니까.”

이모는 늘 그렇게 말했다. 말끝이 환했다. 해질 무렵, 카페 안의 빛이 한 톤 낮아졌다. 천장 조명의 온도가 벽의 색을 아주 조금 따뜻하게 바꿨다. 사진 속 그림자도 몇 밀리미터씩 옮겨 앉았다. 우리는 조명 각도를 살짝 조정했다. 너무 밝혀진 곳은 슬며시 덮고, 덜 보이는 곳은 아주 살짝 눌러 주었다. 빛은 사람과 닮아서, 각자 좋아하는 자리가 있다. 억지로 끌어오면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때 휴대폰이 작게 떨렸다. ‘Jared: Wishing you a bright opening. 빛은 네 편.’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 있었다. 수정이가 나를 옆으로 끌었다.

“우리도 사진 찍자. 전시한 날, 전시장 한가운데서.”

“지금?”

“지금.”

우리는 영상 프레임 앞, 벽과 벽이 만나는 코너에 섰다. 수정이가 폰을 가로로 들어 셀프 타이머를 맞췄다. 나는 빌려 쓴 그 카메라—이제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온’—를 가볍게 껴안았다. ‘찰칵.’ 화면 속 우리는 조금 흐릿했다. 조금 흔들려도 괜찮았다. 흔들림이 여기까지 나를 이끌었으니까.

이모가 두 잔의 유자차를 들고 와 카운터 위에 올려놓았다. 얇은 꿀빛이 유리컵 안에서 빛났다. 나는 한 모금 마시고 컵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온도가 잠깐 내 손 안에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저녁 여섯 시가 넘어 사람들이 차츰 빠져나갔다. ‘여백 카드’ 상자에는 빼곡한 손글씨들이 담겼다. 어떤 글씨는 동그랬고, 어떤 글씨는 각졌다. 어떤 글씨는 빠르게, 어떤 글씨는 천천히. 나는 상자를 들어 보리차 잔 옆에 놓았다. 남은 카드는 몇 장이었지만, 충분했다. 마감 시간 즈음, 학교 후배 둘이 꽃과 작은 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선배, 축하해요.”

“고마워.”

촛불을 켜고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불꽃이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렸다가 다시 섰다. 불꽃의 자세가 부력의 자세와 닮아 있었다.

전시 첫날을 닫기 전에, 나는 혼자 마지막 벽 앞에 섰다. 아무도 없는 카페로 빛이 낮게 내려앉았다. 유리 벽 너머 거리의 네온과 헤드라이트가 섞여서, 카페 안의 표면들을 차례로 스치고 지나갔다. 그 스침의 순서를 듣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아주 작게 말했다.

“엄마, 나… 잘 했지?”

이모가 불을 한두 개씩 줄였다. 천장의 둥근 빛이 하나, 둘 사라졌다. 소파 천의 결이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눕고, 벽지의 표면이 고요해졌다.

문을 닫고 셔터를 내리기 전에, 나는 마지막으로 한 장을 더 찍었다. 밖에서 안으로, 유리문에 카페의 안과 내 얼굴이 겹쳐지는 프레임. ‘찰칵.’ 금속의 작은 반향이 밤공기 속으로 퍼졌다. 가까운 골목에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담장을 스치며 지나갔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싼 채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의 파일을 외장 드라이브에 한 번 더 복사했다. 이름은 ‘Buoyancy_OpeningDay’. 복사가 끝나면 같은 이름 뒤에 ‘_backup’을 붙였다. ‘우우—’하는 작은 회전음이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힘을 빼면 떠오른다. 떠오른 것들은 서로를 비춘다. 밤의 창틀 바깥, 별빛의 부력이 카페의 유리 위로 아주 가늘게 번졌다가, 내 마음의 표면으로 조용히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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