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의 부력-5부
맞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방 안의 공기가 아주 얇게 바뀌었다. Ava가 “Oh…” 하며 손으로 입을 가볍게 가리고, 톰은 카메라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가 숨을 한 번 정리했다.
“그날 공항 화장실, 제가 나오는데 어떤 여자 사람이 ‘누가 놓고 간 것 같아요’ 하고 저한테 건넸어요. 저는 바로 Lost & Found 가려 했는데 바로 다음 비행 대기 시간이 촉박해서… 집에 들렀다가 다시 공항 가려 했어요. 그래서 집에 가져왔어요. 오늘. 다행이에요.”
그의 한국어는 조심스럽고 또렷했다. 끝음을 헐렁하게 내려놓지 않았다. 나는 바디를 내 품으로 조심히 옮겼다. 스트랩의 천이 손가락 뒷마디에 얇게 걸렸다. 아랫면의 숫자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확실했다. 안쪽으로 미미하게 숨이 들이쉬어졌다가 길게 풀렸다. 침착하게 열쇠를 돌리듯—똑, 마음의 금속이 제자리에 맞물리는 느낌이 지나갔다.
“정말… 고맙습니다.”
영어가 먼저 나왔다가 한국어가 뒤따랐다.
“진짜 고마워요.”
수정이도 옆에서 연달아 인사를 얹었다. Ava는 손수건을 톰에게 건네며 작은 미소를 지었다. 엄마의 친구가 키운 아들의 손에서, 엄마의 흔적을 찾아온 내 손으로. 선이 하나 더 그어졌다.
“혹시…”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안에 저장된 파일은, 건드리지 않으셨죠?”
톰은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No. I didn’t open it. Not even once. 저는… 카메라, 소중한 거 알아요.”
그는 손목의 네임 태그를 한 번 툭 치며 웃었다.
“민수—그 친구—항상 말해요. ‘남 얘기, 남 물건, 조심’.”
그의 발음에 작은 ‘ㅅ’이 굴러가다 둥글게 멈췄다. 쑥스러운 웃음 뒤로 Ava의 말이 얹혔다.
“He’s careful.”
그 말의 끝은 짧았지만, 자식을 향한 애정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카메라 슬롯을 열어 메모리 카드를 살짝 눌렀다. 반 칸 빠져나온 카드의 끝을 만지는 순간, 대구에서 인천으로 가던 날, 유리창 너머에 찍힌 첫 사진의 별빛이 되살아났다. 잊지 않으려 했던 것들이 ‘여기 있어’라고 조용히 대답해 주는 감각. 나는 카드를 다시 안쪽으로 넣었다.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다. 오늘은 ‘있음’을 믿어도 되는 날이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
나는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이 장면. 남겨두고 싶어서요.”
Ava가 문 쪽으로 반 발 물러서며 고개를 끄덕였다. 톰은 어깨를 가볍게 펴고,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를 천천히 내게 내밀었다. 우리가 동시에 같은 사물을 붙잡고 있는 순간. 두 손의 온도가 금속 표면에서 섞였다가 풀렸다. 나는 숨을 반만 들이쉬고 셔터를 눌렀다.
‘찰칵.’
얇고 또렷한 소리가 현관의 파란 페인트 위로, Ava의 눈가 주름 위로, 톰의 어눌한 미소 위로 가볍게 올라갔다가 사라졌다. 순간의 무게는 가벼웠지만, 기록의 무게는 충분했다.
“차로… 숙소 가죠?”
톰이 말했다.
“밤이 되면 길… 조금 복잡해요.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Ava가 고개를 끄덕였다.
“Drive safely.”
그녀가 내 손을 잠깐 잡았다.
“I’m glad to meet you Eunha.”
한 단어씩 둔탁하게 떨어지는 대신, 매끈하게 내 손등 위에 얹히는 말. 우리는 신발끈을 다시 묶고, 문 앞에서 한 번 더 인사를 나눴다. ‘See you.’ Ava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 뒤로 집 안의 공기가 천천히 닫혔다.
톰의 차 내부는 비누 냄새와 햇빛에 데워진 직물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는 거울을 한 번 기울여 우리를 보고, 깜박이를 켰다. ‘딸칵’—규칙적인 박자. 주행을 시작하자 도로의 흰 점선이 긴 줄로 이어졌다. 바람이 사이드미러에서 잘게 부서졌다. 수정이가 뒷좌석에서 물었다.
“한국어, 어디서 그렇게 배웠어요?”
톰이 힐끗 웃었다.
“동료… 민수. 점심 같이 먹어요. ‘김치찌개, 된장찌개’… 말하면서 배우고. 드라마—어머니가 좋아해요. 그래서 집에서 같이 봐요. 발음은… 민수가 맨날 ‘혀’ 하면서… 이렇게.”
그는 혀끝을 살짝 내밀었다가 넣으며 장난스럽게 발음을 굴렸다.
“불-고-기. 보-딩-패-스. 가-방-잃-어-버-리-셨-나-요?”
마지막 문장에서 네 글자마다 작은 멈춤이 들어갔다. 우리는 동시에 웃었다. 웃음 뒤의 공기가 부드러웠다.
“아까… 진짜 다행이었어요.”
톰이 덧붙였다.
“괜찮아요? 너무 놀랐죠?”
“처음엔요. 근데…”
나는 창밖을 바라봤다. 도심의 불빛이 차창을 스치고 갔다.
“지금은, 놀란 다음에 오는… 고마움이 더 커요.”
“Good.”
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메라… your friend, right?”
나는 한 박자 뒤에 답했다.
“맞아요. 빛처럼.”
그는 ‘빛’이라는 단어를 한 번 흉내 내더니, 조심스럽게 따라 말했다. “빛.” 발음이 예뻤다. 수정이가 작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차 안의 온도가 반 뼘 올라갔다.
“혹시… 페이스북 하세요?”
내가 먼저 꺼냈다.
“연락처… 남기고 싶어요. 나중에, 전시 소식 보내려고요. 그리고… 언젠가 감사 인사도 제대로.”
톰이 교차로 앞에서 차를 잠시 세우고, 우리를 향해 휴대폰을 들어 보였다.
“Yes. Search… ‘Tom H.’ 사진—이거.”
화면 속에서 항공사 승무원 복장으로 서 있는 그의 사진이 손쉽게 찾아졌다. 우리는 서로 계정을 추가하고, ‘Hi :)’라는 메시지를 서로에게 보냈다. 알림음이 같은 박자로 울렸다. 아주 사소하지만 명확한 연결의 신호였다. 신호가 바뀌고 차가 다시 움직였다.
“한국… 언젠가 가고 싶어요.”
톰이 말했다.
“민수가… 봄 벚꽃, 가을 단풍, 겨울 호빵—이야기 많이 했어요.”
“오면, 전시 보러 오세요.”
수정이가 말했다.
“카메라 돌려준 사람이니 VIP로 모실게요.”
“VIP.”
톰이 또박또박 따라 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확정하지는 않았다. 약속의 온도만 확인했다. 창밖으로 붉은 하늘과 초록 사인이 섞여 흘렀다. 멀리 바다가 어둠 속에서 낮은 선으로 누워 있었다.
민박집 앞에서 차가 멈추었다. 사장님이 현관에서 손을 흔들었다.
“어이쿠, 손님 모시고 오셨어요?”
톰이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사장님이 반갑게 맞았다.
“고생 많았어요. 젊은 친구, 참 의젓하네.”
현관 불빛 아래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고마워요.”
나는 한국어로, 영어로, 손짓으로,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전했다. 톰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별말씀을요. 아… 이 말, 맞아요?”
그는 자신 있게 말했다가 스스로 웃었다.
“별말씀을요.”
“완벽해요.”
수정이가 박수까지 쳤다. 떠나기 직전, 나는 카메라를 들어 톰과 사장님, 그리고 사모님의 단체 사진을 한 장 더 남겼다. 현관 위 티라이트가 이마 위에 작은 반짝임을 얹었다. ‘찰칵.’ 오늘의 끝과 내일의 시작 사이.
“조심히 들어가요.”
톰이 손을 흔들었다. 차가 멀어지며 테일램프가 두 개의 작은 점으로 변했다. 점들이 골목 모퉁이를 돌아 사라졌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구먼.”
사장님이 거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약속대로, 저녁 같이 해요. 마지막 밤이니까.”
식탁에는 된장국, 잡채, 구운 가지무침, 간장에 살짝 졸인 두부, 겉절이가 올랐다. 미국에서 먹는 한국 집밥의 온도. 사모님이 그릇을 가운데로 모으며 말했다.
“많이 먹어요. 여행 끝날수록, 힘이 필요해요.”
우리는 젓가락을 맞댔다. ‘딸칵’—가볍게 부딪히는 금속성. 국물의 증기가 안경에 얇게 서렸다가 사라졌다. 나는 오늘의 처음과 마지막을 한 줄로 떠올렸다. Ava의 수프에 떴던 허브 냄새, 롱비치의 바람 냄새, 톰의 차 안 직물 냄새, 민박집 된장의 깊은 냄새. 냄새들이 겹치지 않고 층을 이뤘다.
“카메라 찾았다면서요?”
사장님이 반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네. 기적처럼요.”
내가 말했다.
“어떤 분이 주워서 톰에게 건네줬고, 톰이 집에 잠깐 들렀다가 다시 공항 가려다… 마침 우리가 있었던 거예요.”
사모님이 가슴을 쓸었다.
“참 다행이네. 우리도 내심 마음 쓰였는데.”
“덕분에… 모든게 처음 계획했던 자리로 돌아왔어요.”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두 손을 포갰다.
“사장님과 사모님 덕이 커요. ‘사람’—‘장소’—‘물건’으로 걸 전시의 순서까지, 여기서 다 자리 잡았거든요.”
사장님이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다.
“우리는 그냥 방을 고르고, 커튼을 열고, 보리차를 끓였을 뿐이지. 자네들이 그걸 이야기로 바꿨고.”
사모님이 보리차를 따랐다. 표면에 얇은 원이 번져 나갔다. 네 잔이 식탁 위에서 조용히 부딪혔다.
“전시… 열게 되면 꼭 연락 줘요.”
사장님이 말했다.
“시간 맞춰서 한 번 가보지.”
“정말요?”
수정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요. 한국 들를 일이 있어요. 마침 그 즈음이면 좋고.”
사장님이 윙크하듯 눈을 한번 감았다 뜨며 웃었다.
“난 오래된 사진을 좋아해요. 사진이 사람을 다정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거든요.”
우리는 그 말을 마음에 접었다. 사진이 사람을 다정하게 만든다. 오늘 하루가 이미 증명하고 있었다. 식사 뒤, 설거지를 돕고 거실로 돌아오니, 사장님이 작은 상자를 꺼내 왔다.
“이건 우리 집 손님들 방명록. 한 장 써 줘요. 날짜도.”
방명록의 종이는 약간 두꺼웠고, 펜이 닿는 감촉이 부드러웠다.
— 빛은 여전히 우리 편이었습니다. 이 집의 온도도 기억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은하·수정.
나는 글자 사이 간격을 넉넉히 두었다. 글자들 사이의 여백에 오늘의 호흡을 눕히고 싶었다. 사장님이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글씨가 참 반듯하네.”
방으로 올라오기 전, 내일의 시간을 간단히 맞췄다.
“아침 일곱 시 반, 공항으로.”
사장님이 차 키를 들어 보였다. 우리는 인사를 드리고 방으로 올라왔다.
문을 닫고 나자, 방의 공기가 한 번에 고요해졌다. 침대 위에 카메라와 렌즈를 풀어 놓고, 메모리 카드를 노트북에 꽂았다. 폴더가 떠오르고, 숫자들이 줄을 섰다. 나는 별빛으로 시작한 폴더를 ‘FirstLight’로 바꾸어 새로 만들었다. Ava의 손, 버튼 배지의 “Be kind”, Harris 댁 현관의 파란 문, 톰의 현관에서 마주 잡은 두 손—오늘의 선이 사각형들 안으로 차례차례 들어왔다.
“찾았구나.”
수정이가 내 어깨에 턱을 얹었다. 화면을 보다가 내 표정을 보더니 웃었다.
“은하야, 네 얼굴이 오늘 하루 중 가장 편안해 보여.”
“응.”
나는 스페이스바로 사진들을 넘기며 말했다.
“오늘, ‘돌아오라고 남겨둔 자리’에 진짜로 돌아온 느낌이라서.”
“그리고 ‘팔을 저어 가야 할 자리’로 나가는 느낌도 같이.”
수정이가 덧붙였다. 우리는 잠깐 말이 없었다. 대신 파일을 백업의 폴더로 끌어다 놓았다. 복사율이 12%, 46%, 100%로 차오르는 동안, 방 안의 공기는 조금씩 더 단단해졌다. 나는 작은 메시지를 열어 톰에게 짧게 보냈다.
—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덕분에 빛이 제 자리로 돌아왔어요.
곧 ‘Seen’ 표시가 떴고, 바로 답장이 왔다.
— 저도 고마워요. 안전하게 돌아가요. 한국에서 봐요. VIP 약속 : )
표정에 ‘: )’가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소하지만 정확한 온도.
Ava에게도 한 줄 보냈다.
— 오늘의 ‘Patience’, 전시의 첫머리에 둘게요. 고맙습니다.
수정이는 내 옆에서 ‘전시 구성표’의 색 포스트잇을 두 장 옮겼다. ‘사람’ 아래 ‘Ava(창가)’, ‘톰&현관(돌려주는 손)’. ‘물건’ 아래 ‘버튼 배지(Be kind)’. 종이 위에서 사각형들이 아주 느리게, 그러나 확실히 자리를 찾아갔다.
샤워를 마친 뒤 불을 낮추자, 창문 유리 너머로 네온의 얼룩이 벽을 스쳤다 사라졌다. 나는 커튼을 한 뼘 열어 밤 공기를 들였고, 카메라를 한 번 더 들어 방 안의 가장 어두운 곳을 찍었다. ‘찰칵.’ 소리는 작았고, 그림자는 매끈했다. 오늘은 충분했다. 더 찍지 않아도 됐다.
잠들기 전에 엄마에게 편지의 첫 문장을 다시 속으로 불렀다. 엄마, 오늘 나는 누군가의 환대와 누군가의 정직함으로 당신의 빛을 되찾았어. 그 문장을 마음 안쪽으로 접어 넣고 눈을 감았다. 숨이 길게, 짧게, 다시 고르게. ‘들숨 하나—날숨 둘—아주 짧은 멈춤.’ 그 박자 속에서, 금속이 제자리를 찾는 아주 미세한 소리가 또렷하게 들린 것 같았다. 내일의 자리를 여는 소리이기도, 닫는 소리이기도 했다.
아침은 생각보다 일찍 왔다. 수건의 물기 냄새, 토스터의 얇은 연기, 사장님이 켠 라디오의 낮은 뉴스. 우리는 가볍게 식사하고 가방의 지퍼를 하나씩 확인했다. 카메라—넥 스트랩—메모리 카드—여권. 체크박스에 ‘V’를 넣을 때마다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현관 앞에서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우리가 도착하던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프레임. 하지만 다르게 보이는 얼굴. 사장님은 트렁크를 닫으며 말했다.
“자, 갑시다.”
도로는 주말 아침처럼 한가했다. 공항의 유리벽이 아침빛을 받아 아주 얇게 반짝였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바퀴가 타일 위를 굴러가는 소리가 짧게 이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사장님이 말했다.
“도착하면 연락해요. 사진 한 장이면 더 좋고.”
“네. 보내드릴게요.”
내가 답했다. 보안검색장으로 들어가기 전, 나는 휴대폰을 들어 톰의 메시지에 짧게 사진 하나를 보냈다. 현관 앞에 서서 손을 흔드는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문턱 위로 얇게 얹힌 햇빛. ‘Thanks to your kind hands.’ 문장 하나를 붙였다. 곧 ‘Hearts’가 두 개 올라왔다.
게이트 앞. 유리 너머로 활주로의 굵은 선이 길게 누워 있었다. 우리는 보딩패스를 내밀고, 문턱을 넘었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채우는 ‘찰칵’ 소리가 다시 한 번 제일 또렷하게 들렸다. 창 밖에 날개가 들어와 앉았다. 빛이 날개 끝에 얇게 붙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천천히 나아갔다. 방향을 틀 때마다 빛이 창틀을 따라 아주 조금씩 이동했다. 들숨과 날숨이 고르게 맞아 들어갔다. 오늘은 떠나는 날이면서, 도착하는 날이기도 했다. 떠나오며 얻은 것들을 가슴 깊은 곳에 눕혀 둔 채, 나는 눈을 잠깐 감았다. 떠오르는 감각이 등 뒤를 다시 받쳤다. 부력. 힘을 빼면 떠오르는 법. 나는 그 법을 다시 한 번 믿어 보기로 했다. 바퀴가 가벼운 소리와 함께 땅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