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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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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Nov 06. 2016

#2. 뜻밖의 재회 (4)

2014.08.29. 남아프리카 공화국

 “맛있게 드세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며 음식이 올라가 있는 쟁반을 들었다. 태국식 볶음 쌀국수인 팟타이가 손바닥 정도 크기의 네모난 종이 그릇에 담겨 있었다. 마침 형이 주문한 볶음밥도 곧 나왔다.

 우리는 10번 정류장에서 다시 버스를 탄 뒤 내가 케이프타운에 처음 방문한 날 저녁에 들렀던 부둣가에 내려 패스트푸드점처럼 생긴 태국 음식점에 들어와 있었다. 그저께 왔을 때는 몰랐던 것 하나를 방금 오는 길에 처음 알았는데, 이곳에는 배가 들어오면 90도 회전하는 다리가 있었다. 다리의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았고 배가 지나가고 있지도 않아서 다리가 움직이는 모습은 못 보았지만, 아무튼 그 다리를 건너와서 팟타이를 먹고 있었다. 맛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나 아쉬운 점은 이곳에는 젓가락이 없다는 것이다. 일회용 흰색 포크로 볶음 쌀국수를 먹고 있자니 뭐랄까. 좋게 표현하자면 마치 한강 둔치에서 소풍을 즐기는 기분이었고, 느낀 감정대로 이야기하자면 그냥 굉장히 초라해 보였다. 어찌 되었든 가격은 비싸지 않았으므로 만족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다양한 식당과 가게, 쇼핑몰이 어우러진 부둣가를 걷다가 2층 규모의 여행 용품점에 들어갔다.

 “어! 이거 찾고 있던 건데.”

 마침 필요했던 캠핑용 부탄가스가 눈에 들어왔다. 흔히 사용하는 길쭉한 원통형 부탄가스가 아닌 동그랗고 납작한 캠핑용 부탄가스를 찾고 있었다.

 “버너 가지고 다녀요?”

 평범하게 사용하는 종류는 아닌 부탄가스를 진열대에서 집는 나를 보며 형이 물었다.

 “네, 올해 초에 한국에서 나오면서 작은 버너를 사 왔거든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부탄가스는 비행기에 가지고 탈 수가 없다. 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캠핑할 가능성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미니 버너를 사 오기는 했으나 맞는 부탄가스를 못 찾는 게 아닐지 내심 걱정했었다.

 “앞으로 유용하게 쓸 일이 있을 것 같은데 일찍 찾아서 다행이에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우연히 찾은 전리품을 계산대에 올렸다.


 “성인 편도 110랜드, 왕복 215랜드라.”

 다시 빨강 버스를 타서 테이블 마운틴 케이블카 매표소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생각보다 비쌌다. 남산 케이블카 왕복 가격도 10,000원이 안 넘는데 편도로 11,000원 정도라니. 거기에다 왕복으로 사도 500원 차이라니.

 “비싸긴 비싸네요.”

 형도 허리에 손을 올리고는 맞장구쳐 주었다. 케이블카에 타지 않고 오르막길로 올라가려는 사람이 옆으로 지나갔다.

 “걸어가면 오래 걸리겠죠?”

 별 의미는 없이 꺼낸 질문이었다. 애초에 걸어갈 생각은 한 적조차 없었다. 대충 3시간은 걸린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 타고 내려올 때는 어떻게 할지 위에서 생각하는 게 어때요? 어차피 500원 차이인데.”

 “네, 좋아요. 아, 맞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라 지갑을 뒤졌다. 그리고 반년 동안 존재를 잊고 있던 국제 학생증을 꺼내 들었다.

 학생은 케이블카 편도 68랜드였다. 케케묵은 학생증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순간이다.


 테이블 마운틴 위에서 바라보는 케이프타운은 초승달 모양이었다. 새파란 대서양을 끼고 도시가 둥그렇게 형성되어 있었으며 그 뒤로는 낮은 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18년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곳으로 유명한 로벤 섬도 보였다. 오전의 바람대로 다행히도 하늘은 푸르렀다. 게임 대항해시대가 떠올라서 배경 음악을 흥얼거린 건 나만 아는 비밀로 하겠다.

 반대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니 멀리에 희망봉으로 추정되는 곶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희망봉은 왜 ‘희망곶’이 아니고 희망봉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희망봉이 더 이름이 예쁘니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희망봉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지역까지 이어지는 시야에는 녹색 산이 쭉 뻗어있었다. 실제로 케이블 마운틴 국립공원과 희망봉 사이에는 ‘후트 베이’라는 지역에 해당하는 산부터 ‘케이프 반도’에 이르기까지 녹지가 산맥처럼 펼쳐져 있다. 다만 녹색으로 물든 산의 군데군데 회색 암석들이 눈에 띄어 이곳이 거대한 사암 덩어리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 주었다.

 “저 쪽으로 가보죠.”

 우리는 관람대를 벗어나 테이블 마운틴 위를 누볐다. 평평한 산꼭대기에 서서 주변을 내려다보는 것은 하늘 위에 떠 있는 천공의 성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을 선사했다. 발을 딛고 서 있는 평지의 끝에 다다르면 지상으로 이어지는 절벽이 등장했다. 형은 나에게 사진기를 맡기고는 멀리 있는 절벽에 가서 자세를 잡았다. 나는 번지 점프 같은 것을 할 때가 아니고는 난간 없는 절벽을 내려다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그의 사진사가 되어주었다.

 “형은 이름이 뭐예요?”

 만난 지 이틀이나 되어 이제야 이름을 물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서로 이름도 모른 채 함께하고 있었고 별로 이름을 부를 필요도 못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타지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함께 돌아다니고 있으니 지나가는 인연이 되더라도 기억 속에 넣어두고 싶었다.

 형과 이야기를 나누며 테이블 마운틴 위를 거닐다가 내려갈 길을 찾았는데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다시 케이블카에 올랐다. 동그랗게 생긴 케이블카는 뱅글뱅글 돌며 우리를 산 아래로 내려 보내 주었다.

 우리는 다시 한번 빨강 버스에 올라 시원하게 해변도로를 달렸다. 모래사장에는 공놀이를 하고 있는 소년들이 보였고, 식당들의 야외 식탁에는 손님들이 앉아 바다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테이블 마운틴의 회색 절벽이 포근한 색으로 덧칠됐다.


 도마를 씻고 껍질을 벗긴 감자와 당근을 썰었다. 형 방에서 SD카드의 사진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리며 남미 여행 때의 사진도 몇 장 구경하다가 저녁으로 짜장 밥을 먹기로 하고 재료를 손질 중이었다. 형 가방에서 오뚜기 짜장 분말이 나왔을 때는 나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여기 밥통이 없는데 밥은 어떻게 짓게요?”

 “쌀을 냄비에 불린 다음에 센 불로 물이 끓을 때까지 끓이고, 섞어준 뒤에 약 불에 10분에서 15분 정도 더 끓이면 돼요.”

 아주 유용한 정보군. 일기에 적어놔야겠다. 앞으로 냄비로 밥 할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도마에서 감자와 당근을 썰고 버섯과 쇠고기까지 준비한 뒤 설거지를 했다. 이 숙소에는 여행자가 아니라 그냥 머물고 있는 현지인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이 저녁식사를 하고 식기를 싱크대에 방치한 채 사라진 것이다. 속으로 별의별 욕을 하며 그릇들을 닦아놓은 뒤 우리가 식사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식사 준비를 마친 뒤 밥을 먹으려고 하는데 머리가 긴 동양인 아저씨 한 명이 숙소로 들어왔다.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아이고, 짜장을 만들었네?”라고 한국어로 입을 열었다.

 “네, 사장님 식사 안 하셨으면 같이 하세요.”

 응?

 “그럼 고맙지. 이리 와서 같이 먹지.”

 무슨 일이지, 이게.

 형은 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보고는 말했다.

 “아, 처음 보세요? 여기 사장님이에요.”

 내 표정은 더 아리송해졌다. 그리고 나도 입을 열었다.

 “네?”


 알고 보니 이 백패커스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일반적인 사무는 직원인 어니 씨가 보는 것 같았으나 총책임자는 이 아저씨였다. 일반적으로 백패커스에서는 투어 회사들이랑 연계가 되어 있어서 백패커스에서도 투어 신청이 가능했다. 마침 내일 희망봉에 가고 싶었는데 시내를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 투어 회사를 방문하지 못했던 나는 아저씨를 통해 희망봉이 포함된 케이프반도 투어를 예약했다.

 “학생은 어디까지 여행할 거야?”

 “저는 남아공에서부터 이집트까지 올라간 다음에 중동이랑 동남아 거쳐서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에요.”

 아저씨는 자못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몸조심 잘 해야 할 거야. 젊은이들이 목숨을 자기 한 명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비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는데, 자기 목숨은 자기 한 명 것이 아니란 말이야. 부모님이랑 가족들도 있고.”

 “네, 주의해서 다니려고 해요. 예방접종도 맞고 왔고 말라리아 약도 충분히 챙겼고 밤에는 당연히 가능한 안 돌아다니려고 하고요.”

 “그럼, 그래야지. 주사는 어떤 거 맞은 거야?”

 “황열이랑 장티푸스랑 A형 간염 맞고 왔어요. 파상풍 주사는 군대에서 맞아서.”

 황열은 필수로 맞아야 하는 주사였다. 황열 예방접종을 하면 국제공인 예방접종 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증명서가 없으면 내가 가려는 곳들 중 입국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수막염이나 광견병, 콜레라 등의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있었으나 맞고 오지는 않았다.

 “잘 했네. 말라리아 약은 먹고 있어?”

 “아직은 안 먹고 있어요. 말라리아 약은 위험 지역 들어가기 전부터 먹으려고요. 간에도 엄청 안 좋다고 해서.”

 “응, 잘 챙겨 먹어야 해. 몇 년 전에 말라리아 걸려서 이 숙소에서 죽은 사람도 있거든.”

 “죽은 사람이 있다고요?”

 말라리아가 매우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기에서 죽은 사람이 있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이집트에서부터 아프리카 종단하던 대학생이었어. 무슨 배짱인지 말라리아 약도 제대로 안 먹고 감기약만 먹던 것 같은데 말라리아 잠복기가 2주 이상이거든. 아무튼 여기 도착해서 몸도 엄청 떨고 땀이 엄청 나서 구급차를 불렀는데 결국 그렇게 됐지.”

 찾아보니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한국인 20대 대학생 여행자가 말라리아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집트를 출발해서 약 한 달이 걸려 케이프타운에 도착한 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했고, 유가족들이 현지에 도착해 시신을 국내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아저씨는 그 밖에도 직접 겪었거나 한인회를 통해 들은 다양한 사건사고들에 대해 말했다. 어떤 백패커스를 3일이나 무료로 이용하고 케이프 반도 투어까지 공짜로 받으려 한 파워 블로거부터 케냐 사파리를 저렴하게 하려다가 차가 굴러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다는 여자와 나미비아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트럭을 타고 여행하는 트럭킹을 하다가 두 나라의 국경에 위치한 ‘오렌지 강’에 빠져 죽은 사람까지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저씨의 말대로 나의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벌써 몇 개월째 얼굴도 못 본 채 위험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에 아들을 보내신 부모님, 올해 대학교에 들어간 남동생, 호주에 있을 때도 항상 전화하면 두세 시간씩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들, 할머니와 친척들, 선후배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나를 격려하고, 응원하고, 보듬고, 기다려 주고 있었다.

 아프지 않게, 아무 탈 없이 이 소중한 일탈을 누린 뒤에 반드시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에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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