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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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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Jan 08.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2)

2014.09.05. 나미비아

 “좋은 아침입니다.”

 식당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타카코 누나와 유키 형이 나타났다.

 “좋은 아침이에요.”

 탁자에 놓여 있던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는 인사했다. 그들은 카멜레온 백패커스 숙소의 한쪽 구석에 짐을 내려놓고는 곧 렌터카를 찾으러 다시 밖으로 나섰다.

 식기를 설거지하고 숙소 사무실로 들어섰다. 렌터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머물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9월 11일에 도미토리 예약 가능할까요?”

 앉아있던 직원은 모니터를 살폈다. 곧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9월 11일은 꽉 찼네요.”

 아쉽지만 만약 돌아왔을 때도 방이 없다면 외부에 텐트를 치고 잘 수는 있을 것이다. 때문에 그다음 날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12일은 가능해요. 예약하시겠어요?”

 “네, 부탁할게요. 그리고 제 짐도 맡겨 놓을 수 있을까요?”

 렌터카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며, 트렁크도 마찬가지로 넉넉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섯 명의 거대한 배낭들을 모두 싣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 뻔했으므로 꼭 필요한 짐이 아니면 숙소에 맡겨놓고 움직이는 것이 수월했다.

 직원은 열쇠 하나를 들고일어나서 외부 주방 옆의 창고로 향했다. 자물쇠를 열자 다른 여행자들이 맡겨 놓은 짐들이 보였다.

 “적당한 곳에 놓아두세요.”

 창고에 짐을 넣어두고 짐을 찾는 날은 이곳,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숙박하기로 한 9월 12일로 정했다.


 휴대전화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나미비아 전화번호로 받는 첫 번째 전화는 타카코 누나의 전화였다.

 “네, 누나.”

 “있잖아, 지금 렌터카를 가지러 사무실에 왔는데.”

 “네, 그런데요?”

 “어, 렌터카가 취소됐대.”

 “뭐라고요?”

 듣자 하니 무언가 전산상의 오류가 있었던 모양이다. 통화 품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데다가 일본어가 부족하여 정확한 이유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결제가 제대로 마무리가 안 되었거나 남은 차량이 없는데 인터넷에는 남은 차량이 있는 것으로 표시가 되어 있었던 상황이라거나 그런 이유인 것 같았다.

 “일단 알겠어요.”

 “응, 유키랑 같이 주변 회사들 돌아다니면서 찾아보고 알려줄게.”

 전화를 끊고 난 뒤, 타카코 누나와 유키 형이 숙소에 도착한 시각은 그로부터 꽤 많은 시간이 지나간 뒤였다. 그들은 인근에 있던 버젯, 유로카 등 여러 사무실을 전전하며 겨우 남아있는 차 한 대를 찾아냈다. 비용은 조금 더 비싸지고 원래 계획했던 차량보다 크기가 작아졌지만 감지덕지한 상황이었다. 나미비아의 여행 대부분은 렌터카로 이루어지고 기간도 길게 가는 편이 많으며 예약도 끊이지 않아서 어쩌면 당일에 발품으로 몇 시간 안에 찾아낸 것은 꽤나 훌륭한 성과였다. 게다가 두 사람은 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물과 음료수까지 사 오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9월 5일 오전 11시 30분, 빈트후크를 벗어난 차는 B1 도로를 타고 북쪽을 향해 달렸다.


 차는 빈트후크에서 북쪽으로 70km 떨어진 도시 오카한자를 통과하여, 오카한자에서부터 대서양 바닷가의 도시 스바코프문트와 왈비스만까지 동서로 이어진 B2 도로로 접어들었다.

 나미비아의 도로에도 쉼터가 있다. 문제는 쉼터만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 키 작은 풀들과 나무들만 무성하며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지평선 혹은 낮은 산맥만이 보이는 도로 옆에 작은 공터가 하나 있었고, 그곳에 흰 플라스틱 지붕을 하늘색으로 칠한 네 개의 철 기둥이 지지하고 있는 그늘막이 있었다. 그늘 아래에는 역시 흰색과 하늘색으로 구성된 벤치와 둥근 탁자가 있었는데, 흡사 편의점 앞의 파라솔 같은 형상이었다.

 차를 옆에 대고 점심식사를 위한 재료들을 내렸다. 이미 그곳에 앉아있던 백인 부부와 인사하고 둥근 탁자에 우리의 식량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들을 올려놓았다.

 오후 한 시의 태양은 꽤나 따가웠다. 그늘에 들어서니 그 파라솔이 나름대로 훌륭한 쉼터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빵과 식초, 케첩, 마요네즈, 음료수, 양배추, 참치 통조림, 토마토, 얇게 썰어진 햄, 사과, 버터 등을 꺼내고 아주머니는 미리 삶아 놓은 달걀을 꺼내 놓았다. 타카코 누나는 동그란 빵 가운데를 반쯤 썰고는 케첩과 양배추, 참치, 토마토, 햄 등을 끼워 넣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아주머니는 식초와 양배추, 토마토를 이용하여 샐러드를 만들었다. 일행은 각자 식성에 맞게 샌드위치를 만들고는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주변의 식물들이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구름 하나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 노랗고 푸른 대지가 춤을 췄다.


 “이 길인 것 같아요.”

 GPS를 켜놓고 휴대전화 지도를 보고 있다가 손짓했다. 어느새 B2 도로는 남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남쪽으로 향하는 이 길로 꺾으면 될 것 같아요. D1991 도로.”

 우리는 차를 돌려 왼쪽의 작은 길로 들어섰다. 지금까지와 같은 풍경이 계속되는 것 같았는데, 언젠가부터 주변은 계속하여 황량해져 갔다. 식물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어느새 도로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검은 사막으로 변했다.

 “이럴 수가.”

 도로 주변을 둘러싼 낮은 돌산들이 달 표면을 연상시키며 메마른 지표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굽이친 돌무더기 뒤에서 광선총을 든 외계인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지형이었다.

 그 지형을 통과하자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노랗게 끝없이 뻗은 평평한 모래 바닥이었다. 모래 바람 때문인지 지평선은 뿌예서 잘 보이지 않았다. 지평선 위로 땅과 하늘이 겹치는 옥빛 대기를 벗어나면 새파란 푸른빛이 스펙트럼처럼 이어졌다.

 곧이어 다시 한번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왼쪽으로 거대한 규모의 협곡 지형이 지평선까지 뻗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차를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그림자가 길게 이어졌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있을 만큼 날은 더웠으나 나미비아 겨울 오후의 태양은 이미 상당히 내려와 있었다. 앞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갔다. 정면으로는 끊임없이 펼쳐진 구불구불한 지형이 마주하고 있었고, 뒤를 돌아보면 완전한 모래사막에 우리의 렌터카 한 대가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었다. 좀 전에 지나온 곳이 달의 표면이었다면, 이번에는 사방으로 노란 모래와 협곡이 둘러싸고 있어 화성의 표면 같은 느낌이었다.

 “와, 미쳤다. 어떻게 이런 게 생길 수 있지?”

 누군가의 입에서 다소 과격한 어휘가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굉장한 장관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황폐하고 아름다운 모순된 지구의 일면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어느새 노란 풀이 다시 무릎 높이만큼 자라 있었다. 사람들마다 3.5미터에서 4미터 정도 길이의 그림자를 단 채 행성 위를 거닐고 있었다. 땅 위에 선 다섯 사람은 각자 모래를 밟으며 주변을 훑었다.

 “찾았다!”

 다가가 보니 해괴하게 생긴 커다란 식물이 말 그대로 널브러져 있었다. 아프리카에만 있다는 식물 웰위치아였다. 그것은 마치 바닷가에 잘못 올라온 거대한 해파리 같은 모습으로 땅 위를 장식하고 있었는데, 그다지 닮지는 않았지만 보자마자 한 애니메이션의 ‘이상해꽃’이라는 몬스터가 떠올랐다. 생각보다 감명 깊지는 않았다. 그저 말라비틀어진 거대한 난초를 보는 기분이랄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훨씬 풍부한 자연이 시야에 들어왔다. 너른 평지를 장식하는 노란 풀들과, 저 멀리 보이는 황량하고 낮은 산맥들. 일행들은 각자 단순한 감상을 남기며 떨어져 가는 해를 보고는 길을 재촉했다.


 차는 다시 큰길로 빠져나와 스바코프문트 시내로 들어섰다. 주변에는 유럽식 건물들이 즐비했으며 해안가로 가니 온통 숙박시설들로 가득 차 있었다. 건물들은 대부분 1층 혹은 2층 건물들이었고, 일반적으로 숙박 시설의 사무실과 여행자 숙소는 서로 다른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차는 해변에서 머지않은 고즈넉한 사거리에 위치한 ‘사막 하늘 백패커스’로 들어섰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며칠 전에 묵으셨던 숙소라고 한다. 인근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와 마트, 은행, 여행사 사무실이 위치해 있어 머물기에 매우 괜찮은 곳으로 보였다. 도미토리 하룻밤에 150 나미비아 달러, 빈트후크에서와 같은 가격이다. 특이한 점은 와이파이를 사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모르는 채 각자 따로 사면 각각 30 나미비아 달러였지만, 한 명이 사서 비밀번호를 공유해도 접속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한 명이 구입해서 모두 나눠 쓰기로 했다.

 “저녁거리 장 보고 오자.”

 하나의 별채로 구성되어 있는 8인실 도미토리에는 4개의 2층 침대가 들어차 있었다. 할당받은 다섯 개의 침대 중에서 각자 편한 자리를 선택하고 짐을 푼 뒤, 아주머니는 장을 보러 갈 준비를 했다. 인원은 아주머니, 아저씨, 그리고 운전을 할 타카코 누나까지 셋이었다.

 “다녀오세요.”

 일행들이 장을 보러 떠나고 나는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유키 형은 마당의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화면을 보며 키득대었다. 무언가 재미있는 게 있는 모양이다.

 끼익.

 공용 샤워실의 문이 열리며 마찰음이 났다.


 저녁 조리에는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아저씨는 생굴을 깠고, 다른 사람들은 밥을 짓거나 소고기를 굽거나 혹은 샐러드를 만들었다. 아주머니의 말에 따르면 이 동네는 굴이 유명한 모양이었다. 식탁 위에는 애플 사이다와 처음 보는 술도 한 병 올라갔다. 어두운 색의 병에 들어 있던 그 술에서는 깔루아에 캐러멜과 우유를 섞은 맛이 났다.

 “그렇게 유럽에서 계속 히치하이킹으로 움직였어. 어디에서 내릴지 모르고 겨우 몇 분 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도 나름대로의 재미였으니까.”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가며 유키 형의 유럽 여행 이야기가 이어졌다.

 “저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해봤어요. 한국 속초에서 부산까지 동해안을 타고 남쪽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좋은 분도 많이 만나고,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받기도 해서 감사하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죠.”

 무전여행과 히치하이킹 이야기가 나와서 3년 전인 2011년 여름에 했던 동해안 무전여행을 언급했다. 7번 국도를 따라서 하는 여행이었는데 약 일주일 동안 참 많은 좋은 분들을 만났던 시간이었다.

 “나도 한국에서 그렇게 여행해보고 싶은데. 좋은 사람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으니 말이야. 하지만 왠지 한국에서 히치하이킹했는데 일본 사람이라고 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도 들어.”

 “맞아, 좀 무섭기도 해.”

 유키 형의 말에 타카코 누나가 거들었다. 그들은 반일감정을 언급하고 있었다. 나는 아직 일본에 가본 적도 없었으며 다른 곳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무언가 차별 같은 것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 농담처럼 나온 이야기였지만 국적에 의한 차별 혹은 불이익이라는 문제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글쎄요. 생각해보니 일본인의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는 양국의 역사적인 문제나 정치적인 내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본의 과거 행위에 대해 일본인 역시 잘못했다고 느끼는 점에 대하여 일본 정부가 해야 할 일, 편견과 선입견으로 얼룩진 양 국민 간의 의미 없는 비하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양 국민들이 노력하기를 바라는 희망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이야기가 길어지며 북한에 대한 화제와 지역감정 및 한국의 통일에 대한 견해들을 나누는 순간까지 이르렀다.

 이때 나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일 문제와 일본의 역사의식에 대해 영어로 대화를 하였다면 깊게 이어지지 않고, 그들이 피하거나 서로 상처만 된 채 이야기가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피할 수 없는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생각을 듣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다는 것은, 또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을 상기할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가치 있는 일로 느껴졌다.

 밤이 늦어지자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숙소로 들어가고 주방 겸 식당에 남은 우리 셋은, 육로 국경이 없는 일본에서는 피부로 와 닿지 않아 굉장히 생소하게 느끼는 북한과의 대적 관계와 한국 군대의 모습 및 필요성, 약 60 퍼센트 정도라는 일본의 대학 진학률과 교육 및 학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깊은 밤, 풀어야 할 숙제와 고민해야 할 문제들,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청춘들의 말소리가 두런두런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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