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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무형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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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민 Feb 26. 2017

#3. 남쪽을 향해 달리는 차 (9)

2014.09.09.~09.10. 나미비아

 오샤카티에서 오푸우까지는 225 킬로미터가 떨어져 있으며 차로 약 세 시간이 걸린다. 여기에서 에토샤까지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으나 오푸우에 다시 돌아갔다가 에토샤로 가려면 이동시간만 일곱 시간 반, 오늘 하루가 꼬박 소비될 참이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안을 제시했다.

 “우체국에 가보세요. 거기에서 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의 말을 듣고 우체국으로 갔는데 먼저 온 손님들로 인해 상당히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우리의 서류도 일반적인 것들에 비해서는 조금 더 복잡한 것 같았는데, 은행 창구 안쪽에서 그 서류 문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직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걸 적어주셔야 하는데요.”

 이윽고 직원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국적, 이름, 현 거주지 주소 등을 적는 서류 유키 형은 필요한 내용들을 다 채우고 자신의 긴 일본 집 주소를 성실히 적었다. 돈을 받는 쪽인 경찰에 대한 사항은 우리가 알지 못해서 은행 직원이 친절하게 채워주었다.

 결국 우리의 1,000 나미비아 달러, 약 십만 원에 해당하는 벌금이 나미비아로 넘어갔다. 아저씨, 아주머니, 타카코 누나와 나는 각각 200 나미비아 달러씩을 유키 형에게 건네면서 모두 함께 이만 원씩의 벌금을 부담하기로 하였다. 아저씨와 유키 형은 아직도 기분이 상당히 언짢아 보였다.

 도시를 나서는 길에 픽앤페이에 들러서 물과 빵, 과자, 사과를 보충했다. 도중에 주유소에서 기름까지 넣은 뒤 에토샤 국립공원을 향해 내달렸다.


 에토샤 국립공원의 면적은 22,270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며 이는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합친 면적보다 크다. ‘에토샤’라는 말은 나미비아와 앙골라 일부에서 사용하던 반투어의 방언인 오신동가 언어로 ‘거대한 하얀 지역’을 의미하며, 이 국립공원의 23 퍼센트를 차지하는 거대 염분 호수 혹은 염분 사막을 이르는 말이었다. 에토샤 염호는 일반적으로 건조하지만 여름에는 물로 잠겨 있으며, 에토샤 국립공원의 이름은 바로 이 에토샤 염호로부터 왔다. 공원에는 약 114 종의 포유류, 340 종의 조류, 110 종의 파충류, 16 종의 양서류, 우기 동안에는 최대 49 종의 어류가 분포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간 시각, 차 한 대가 에토샤 국립공원 북쪽의 톨게이트, ‘킹 네할레 랴 핑가나 게이트’로 들어섰다. 동서남북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드넓은 벌판 위에 ‘에토샤’라고 적혀 있는 높고 흰 건물 한 채가 솟아 있었고, 그 위에 나미비아 국기가 펄럭였다. 건물 옆으로는 컨테이너 박스처럼 생긴 사무실이 있었는데, 차는 그 사무실 옆에 멈춰 섰다.

 “드디어 도착했네요.”

 “그런데 동물이 하나도 안 보인다? 원래 그런 건가?”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곳에 동물은커녕 나무 한 그루조차 없었다.

 우리가 차를 멈춘 곳에 곧 직원 한 명이 다가왔다. 직원은 출입 용지에 현재 날짜와 시간을 적은 뒤, 24시간에 사람 한 명당 80 나미비아 달러, 차 한 대당 10 나미비아 달러가 부과되며 최종 비용은 나갈 때 정산한다는 설명을 마치고 우리를 다시 차에 태운 뒤 공원 내부로 들여보냈다.

 차는 톨게이트를 통과한 뒤로도 계속 허허벌판을 달렸다. 15분 이상 달리자 차는 숲 속으로 진입했으며, 그로부터 약 10분 뒤에 숲 속에서 첫 번째 동물이 등장했다.

 “저기 기린 있다!”

 “어디? 어디?”

 그 사이 꽤 멀리서 고개를 빠끔 들고 있던 기린은 쏙 사라져 버렸다.

 “없어졌어요.”

 “아이고.”

 조금 더 달리니 바로 옆의 나무 정글 속에서 코끼리 몇 마리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일행 모두가 보았다.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다.

 “와, 이거 좀 위험한 거 아니야? 우리 밟히면 어떻게 해?”

 “음, 유키 형을 믿어야죠.”

 조금 뒤에는 쿠두가 등장하고, 이윽고 숲을 빠져나가 탁 트인 곳에 다다르니 얼룩말, 스프링복, 겜스복, 임팔라, 키가 굉장히 큰 기린, 거대한 코끼리 그리고 종종 보이는 검은꼬리누까지 엄청난 수의 동물들이 그 드넓은 초원을 장식하고 있었다.

 동물들이 정말, 개미떼처럼 초원을 뒤덮고 있었다. 키가 4 미터에 육박할 것 같은 거대한 코끼리와 풀을 뜯다가 고개를 들면 머리가 한없이 올라가는 엄청난 높이의 기린이 임팔라와 얼룩말로 이뤄진 초식 동물들의 대열에서 귀족들처럼 어슬렁대었다.

 “에토샤에 오면 빅 파이브를 봐야 한다던데.”

 “그게 뭔데요?”

 아주머니는 빅 파이브를 읊어주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다섯 종류의 동물이라는데, 사자, 코끼리, 코뿔소, 표범, 물소래. 그런데 물소는 에토샤에는 없다고 하고 코끼리는 봤으니까 사자, 표범, 코뿔소를 찾아야겠네.”

 “코뿔소는 보고 싶네요. 사자랑 표범은 동물원에서라도 봤던 것 같은데 코뿔소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얼룩말 떼를 빠져나온 차는 곧 오늘의 숙박 장소인 ‘하라리’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야영장 이용하는데 얼마죠?”

 차를 주차장에 대고, 사무실의 계산대에 가서 가격을 물었다.

 “한 사람당 140 나미비아 달러예요.”

 다섯 명 분의 비용을 계산하니 직원은 나에게 번호 하나를 주었다. 해당 번호의 구역이 우리 일행이 오늘 밤에 사용할 자리였다.

 “우선 어두워지기 전에 텐트부터 칠까요?”

 야영장의 한편에 작은 텐트 세 대와 조금 큰 텐트 한 대가 들어섰다. 텐트를 친 뒤에는 하라리 야영장 사무실 옆의 가게에 들어가서 돼지고기와 감자, 장작, 맥주를 사서 차로 돌아왔다.

 “아까 밖에 물웅덩이 있었잖아. 해 질 녘에 거기로 물 마시러 오는 동물들 많을 테니 가서 보고 오자.”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하여 우리는 차를 가지고 물웅덩이로 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곧 다시 돌아와야만 했는데, 하라리 야영장은 저녁 7시에 문을 폐쇄하기 때문이었다.


 하늘의 빛깔이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장작에 불을 붙인 뒤 야영장에 미리 준비되어있는 불판 위에 포일을 올리고, 그 위에 라면을 끓일 물이 담긴 냄비와 잘라서 버터를 바른 감자, 양파, 고기를 올렸다.

 칙.

 맥주 캔이 시원한 소리를 내었다. 나흘 전 스바코프문트에서의 식사 이후로 다시 찾아온 호화로운 저녁이었다. 음식도 술도 풍족했다. 주변 빛이 밝아서 하늘이 어둡지만은 않았지만 별도 꽤나 보였다. 석양이 진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나누는 이야기 치고는 대화 주제가 꽤나 참신하다고 느꼈는데, 일본의 야쿠자와 한국의 조폭에 대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영화와 드라마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아무튼 식사는 곧 마무리되고, 주변 정리를 마치고 씻은 뒤 휴대전화로 소설을 조금 읽으며 에토샤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텐트에서 뒤척이다가 손목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 조금 지나있었다. 정리하고 여느 때처럼 빵 한 조각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한 뒤 길을 나섰다.

 아직 밤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초원에서는 늑대 가족이 임팔라를 뜯어먹으며 피 튀기는 식사 중이었다. 차는 점차 밝아지는 수풀 사이의 흙길을 누볐다. ‘에토샤 판’이라고도 부르는 에토샤 염분 호수가 옆으로 등장했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평지에는 와일드 비스트, 얼룩말, 임팔라가 셀 수 없을 만큼 돌아다니고 있었다.

 잠시 뒤 차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앞에 놓인 길을 백여 마리는 되어 보이는 얼룩말 떼가 뒤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문을 내린 뒤 손을 뻗어 얼룩말에 손을 대 보았지만 잠깐 움찔거릴 뿐 도망가지도 않고 태연히 서 있었다.

 “와, 대단하다. 차가 지나가도 도망가지를 않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케냐에서 이미 한 번 사파리를 해 보았는데, 그때는 가이드가 운전하는 사파리 차량을 타고 공원 내부를 움직이면서 멀찌감치 떨어져 동물들을 봐야 했었다고 말했다. 차가 다가가면 동물들이 도망가기 때문에 쌍안경이나 망원경을 들고 돌아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 에토샤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말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장관이었다.

 길을 통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은 소리로 경적을 울렸다. 그러자 앞을 가로막고 있던 얼룩말들이 귀찮다는 듯이 꼬리를 한번 툭 흔들며 길 양옆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얼룩말 떼를 통과하여 점심때가 가까워졌을 때 오늘의 야영지인 ‘오카우쿠에조’에 도착했다. 이곳은 하루 머무는데 일인당 150 나미비아 달러로 어제보다 10 달러 더 비쌌다. 바로 옆에 위치한 가게를 둘러보다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사주신 아이스크림을 먹고 오늘의 잘 자리를 확인하러 갔다.

 46번. 우리가 받은 번호였다. 문제는 46번 구역에 그늘이 없었으며, 다시 말해 낮에는 매우 더웠고, 오늘의 느긋한 일정에 예정되어 있던 낮잠을 청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타카코 누나가 다짜고짜 오카우쿠에조 야영장 사무실의 계산대로 향해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번호 바꿔줘요.”

 “말을 꺼낼 때는 인사부터 하는 게 예의 아닌가요?”

 “으응?”

 “그리고 자리 바꾸는 건 제가 아니라 옆의 직원한테 이야기해야 돼요.”

 직원의 말을 못 알아들은 타카코 누나가 당황하다가 다시 “체인지, 체인지.”만 반복했다. 직원도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 갑자기 문을 열고 나타나서 “번호를 바꾸고 싶은데요.” 혹은 “번호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도 아닌, 명령조로 “바꿔라, 번호.”만 반복하니 좋게 들릴 턱이 없었다.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직원에게 인사하고 타카코 누나를 진정시켰다. 그리고 옆의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우리 12시 정도에 체크인했는데 확인 가능한가요?”

 직원은 명부를 뒤져서 우리 일행을 찾아냈다.

 “네, 여기 있네요.”

 “그때 자리 번호를 46번으로 받았는데, 혹시 다른 장소로 바꿀 수 있을까요?”

 직원은 지도와 명부를 번갈아보며 자리를 확인했다.

 “죄송하지만 지금 자리가 다 차서 변경이 안 되시네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일행들은 꽤나 진이 빠진 것 같았다.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그늘에 주차한 차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고, 타카코 누나와 유키 형, 나는 수영장이 딸린, 아마도 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숙소 건물의 그늘 아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한국 남자들은 군대에 가야 하잖아? 그러면 사귀는 여자 친구는 어떻게 해?”

 타카코 누나의 질문이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헤어지고 가는 경우가 많고, 아니더라도 남자가 군대에 있을 때 헤어지는 일이 많아요. 오랫동안 못 만나고, 만나더라도 같이 활동하기도 힘들고, 여러 가지 장애 요인이 많으니까요. 군대 마칠 때까지 잘 사귀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결국 헤어지기도 하고, 글쎄요. 제가 몇 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네요.”

 “군대에 가 있을 때 헤어지자는 말은 여자가 많이 해?”

 “그런 편이 더 많을걸요. 저도 그랬었고.”

 “에이, 나쁘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사람이 사귄다는 건 감정도 공유하고, 함께 있어주고, 기쁠 때나 슬플 때 함께 웃어주거나 달래주고. 그렇게 함께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군대에 있는 동안은 서로 그게 어려우니까 여자로서도 힘들고, 남자도 불안감이나 자책감을 느끼게 되고, 그런 감정이 쌓이면 돌이킬 수 없게 되기도 하고요.”

 “그것 참. 어렵겠네. 아, 군대 때문에 생기는 남녀 문제도 있다고 일본 뉴스에서 봤는데.”

 “군 가산점 제도 말이군요. 그것도 꽤나 문제가 되긴 해요. 군대에서 보낸 약 2년의 기간에 대한 보상으로 취직 등을 할 때 좀 더 높은 점수를 주자는 이야기인데, 이게 불평등이며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한국이기 때문에 벌어질 수 있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러한 문제가 전혀 없는 국가에서 온 두 일본인은 처음에는 명쾌하게 툭툭 의견을 내다가 대화가 길어지자 이 내용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라는 것을 인정했다.

 이후 이야기는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저는 나미비아 다음에 잠비아, 탄자니아, 케냐, 에티오피아, 수단, 이집트, 요르단으로 해서 아프리카를 빠져나갈 생각이에요.”

 “에티오피아? 거기 가면 다나킬이라는 곳은 꼭 가봐. 실제로 살아있는 화산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분화구로 마그마가 끓는 모습이 보이거든. 엄청 멋있어.”

 타카코 누나의 눈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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