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별이가 뇌수막염 진단을 받고 우리는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보자고 굳게 마음먹었지만 막상 우리가 옆에서 케어해 줄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전적으로 한국에 있는 동생에게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고맙게도 동생은 자신이 일을 쉬고 있으니 흔쾌히 한별이를 돌봐주겠다고 했고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었다. 진단받은 날 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했고 스테로이드를 처방받아 아침저녁으로 약을 먹여야 했다.
병원에서는 스테로이드를 먹기 시작하면 간수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오를 것이고 근육과 털이 빠지고 물을 많이 먹고 소변을 많이 보고 잠을 많이 잘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발랄하고 장난기 많았던 한별이는 약을 먹기 시작하자 눈에 띄게 힘이 없어졌다. 매일 동생과 영상통화를 하며 지켜보는 한별이의 모습은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아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 한별이 때문에 동생이 곤란해하고 있었다. 평소 한별이가 좋아하는 고구마를 삶아 약을 숨겨 겨우 겨우 먹인 지 3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누나 한별이가 갑자기 발작을 연달아서 계속해서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어. 내가 병원 가서 진료 보고 연락할게"
혹여나 미국으로는 새벽시간에 한국으로 오후 시간에 한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새벽에도 수시로 깨서 핸드폰을 확인하던 게 습관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 3시에 확인한 문자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바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 시간 전에 갑자기 세 번 정도 발작을 해서 병원이랑 통화했는데 바로 오라고 해서 지금 가고 있어. 지금은 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10분 후면 병원 도착하니까 진료 보고 바로 전화할게"
"알겠어.. 고마워"
강아지를 한 번도 키워본 적 없는 동생이 강아지가 발작하는걸 처음 봤을 텐데도 내가 놀랄까 봐 덤덤히 말하며 병원으로 가고 있었다. 통화하고 삼십여분이 지나서 다시 전화가 왔다.
"일단 오늘은 응급상황이라 수액을 맞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수액 맞고 하루 입원하고 내일 데리러 오기로 했어. 미국은 새벽일 텐데 얼른 좀 자 누나."
"너야말로 놀랐을 텐데... 고생했어"
항암치료를 받는 게 크게 효과가 있지 않을 수 있다고 했지만 약도 먹고 항암치료도 했는데 3일 만에 발작을 연달아하다니. 마음이 너무 지옥 같았다. 이러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도 전에 안 좋은 일이 생겨 한별이를 영영 보지 못하는 건 아닌지 불안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만약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마지막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걸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할 동생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한별이가 건강했을 때는 적어도 10년 감히 그 이상을 함께 할 수 있을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병을 진단받은 후에는 5년만 아니 1년만이라도 함께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항암치료 후 3일 만에 연달아 발작을 한 지금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만이라도 살아있어서 한별이를 만질 수만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결국 그날 나는 밤새 울다 겨우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소식을 들은 남편은 나를 달래주다 말을 꺼냈다.
"여보 먼저 한국 들어갈래?"
"............ 당신 혼자 한 달 넘게 어떻게 있어."
"난 괜찮아. 난 건강하잖아. 하지만 한별이는 아프잖아."
남편의 미국 장기출장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혼자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서 생활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차마 남편에게 먼저 한국으로 보내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일같이 울기만 하는 나에게 남편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픈 한별이를 무시하고 미국에 있는 것도 남편을 혼자 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나에게는 선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처럼 한별이는 아팠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