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2시간. 미국으로는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초조하게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핸드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남편에게 내가 결과 들을 테니 걱정 말고 먼저 자라고 타이르고 나 혼자 작은방 구석에 앉아서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도착한 동생의 문자.
"누나 너무 놀라지 말고 들어.. 아직 결과는 다 안 나왔는데 한별이... 뇌수막염일 가능성이 큰 거 같다고 방금 병원에서 전화 왔어.."
내가 평소에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어쩌면 일시적으로 발작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고 계속 부정하고 있었고 일말의 희망을 걸고 있었다. 건강하고 밝은 내 강아지가 아플 리가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도착한 문자 하나에 일말의 희망이 사라지고 눈앞이 깜깜했다. 그리고 삼십여분이 지났을까. 동생이 병원으로 왔다며 같이 통화하며 결과를 듣자고 전화가 왔다. 혹여나 옆방에서 자고 있는 남편이 들을까 봐. 나는 숨죽이며 전화통화를 이어갔다.
"한별이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상태는 너무 좋아서 결과가 좋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MRI상에 다발성 뇌수막염과 뇌 수두증이에요. 이 정도면 여태 건강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예요..."
0.1%의 가능성도 사라져 버렸다. 나의 강아지의 병명은 다발성 뇌수막염과 뇌 수두증이었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들어보지 못했던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결과를 듣기 전까지 계속 울기만 했던 나는 막상 결과를 들으니 그 어떤 말도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뇌와 뇌 뼈 사이에 염증이 생긴 것을 뇌수막염이라고 하고 말티즈나 머리가 작은 강아지에게서 특발성으로 나타나는 유전적 질병이라고. 무엇이 딱 원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머리뼈가 너무 작은데 뇌가 커지려고 해서 생기는 병. 한별이는 머리에 물도 차있는 심각한 상태. 지금 해볼 수 있는 치료는 항암치료와 스테로이드를 먹여야 하는데 이 병은 보통 6개월 치료를 목표로 하지만 6개월 약을 다 먹어도 죽을 수 있고 약을 잘 먹다가 죽을 수도 있고 또는 약을 몇 년 동안 먹으며 오래 사는 강아지도 있다. 세 가지의 경우 모두 1:1:1의 가능성이며 항암치료는 한번 받을 때마다 4번씩 3주마다 받아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 항암치료를 한다고 확실히 좋아지지는 않아서 강하게 추천하지는 않고 발작이 시작된 이상 계속 발작을 할 것이기에 먹는 약은 필수며 약을 먹는다고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발작 증상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뿐이다.
처음에는 일단 일주일 동안 약을 먹여보고 발작하지 않으면 점점 내원 주기를 늘려갈 것이며 약을 먹어도 발작을 줄여주는 것뿐이지 조금씩 발작을 할 수도 있다. 발작을 심하게 하거나 연달아서 계속할 때는 응급상황이므로 바로 병원으로 내원해야 한다.
하나도 빠트리지 않으려 조용히 선생님의 말씀을 녹음하며 듣던 나는 설명이 끝나고 하고 싶은 질문이 있냐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에 정신이 멍했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지만 통화로 다 물어보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궁극적으로 내가 묻고 싶은 말은 딱 하나였다.
"그러면요... 우리 한별이가.... 얼마나... 살 수 있어요?"
아무 말하지 않던 내가 정말 가슴 깊이 궁금했던 질문을 뱉자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한별이가 없는 미래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을 뿐이라고 너무 보고 싶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어쩌면 나의 1년 뒤, 2년 뒤에 한별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끝없이 무서웠다.
나는 삼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혹은 지인들의 죽음을 마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지금 이런 기분 일까. 하필 비행기로 13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곳에 있을 때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을 때 아프기 시작한 것인지 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날 나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일어날 시간에 맞춰 방문을 열었다. 그리고 퉁퉁 붓고 초췌한 얼굴로 남편에게 담담히 설명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남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한별이는 우리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였다.
"지금 내가 일도 쉬고 있어서 생활이 넉넉지 않은 건 아는데 미안한데... 우리 항암 치료 한번 해보면 안 될까? 아직 너무 어린데 한별이에게 조금만 더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그래 그러자."
항암치료비용은 냉정하게 봤을 때 우리에게 무리였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 한별이에게 조금이라도 세상을 더 보여줄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못할 게 없었다. 외벌이인 남편에게 어쩌면 잔혹한 요구일수 있는데 남편은 선뜻해보자고 말해주었다.
이제 한별이와 나 남편은 뇌수막염이라는 길고 긴 트랙 앞에 섰다. 치료 끝에 셋에서 둘이 될지 아니면 셋으로 도착선에 들어올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누군가 보면 미쳤다고 혀를 내 두룰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관은 돈은 언제든 또 벌 수 있고 사랑하는 것들과 오래오래 행복한 것이 가장 최우선의 가치였다. 당장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한별이가 떠나고 한 번이라도 후회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