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는 미국에 도착했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정신이 없었다. 틈나는 대로 cctv를 켜봤고 우리는 시부모님에게 한별이 안부를 자주 물었다.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강아지를 보거나 미국에서 흔히 보이는 야생 토끼나 라쿤을 봐도 한별이를 떠올렸고 하루에도 몇 번씩 핸드폰 사진첩을 들락날락거렸다. 그리고 술만 먹으면 한국 가서 한별이와 하고 싶은 일들을 이야기했고 너무 보고 싶다고 스무 번은 이야기해야 술자리가 끝이 났다.
그렇게 미국에 온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그날도 남편이 출근을 하고 청소를 한바탕 시작하기 전 한별이를 보고 싶어 cctv를 켰다. 미국으로 아침 10시. 한국으로는 새벽 12시였다. 카메라를 켜자마자 한별이가 집에 있는 것이 보였고 순간 화면이 정지된 것인지 빨리 감기 된 것인지 화면이 요동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화면이 요동치는 것이 아니라 한별이가 누워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힘들게 몸을 일으켜 세웠고 입에는 거품이 묻어있고 몸이 한쪽으로 기울며 경직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장면에 너무 놀란 나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왜 그래 왜 그래를 연달아 외치며 발을 동동거리다 뒤늦게 녹화버튼을 눌렀고 녹화버튼을 누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별이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입에는 오백 원짜리 동전 사이즈의 거품이 달려있었고 한참을 불안한 듯 돌아다니다 바닥에 얼굴을 비비며 거품을 닦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다. 너무 늦은 새벽이라 시부모님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었고 처음 보는 행동에 이게 무슨 행동인지 어안이 벙벙했다. 모든 집안일을 제쳐두고 몇 번의 검색 끝에 그것이 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에 있는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별이를 안아줄 수도 병원에 데려갈 수도 없었다. 한국시간으로 아침이 될 때까지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시부모님에게 동영상을 보냈고 애써 담담한 척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오전 10시가 되자마자 평소 한별이를 봐주시던 동물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수의사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보내주신 영상은 발작이 맞아요. 일단 한별이는 간수치도 안 좋고 발작을 발견했으니 MRI를 한번 찍어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저희 병원에는 그런 시설이 없으니까 조금 큰 병원을 추천해드릴게요."
처음 한별이가 우리 집에 오고 건강검진을 했을 때 간수치가 높게 나온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날벼락이었다. 지금 우리는 한별이와 10,000km도 넘게 떨어져 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강아지 발작에 대해 수없이 검색해 보며 안 좋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뿐이었다. 대체로 강아지가 발작하는 이유는 크게 3가지 정도가 있었다.
첫 번째. 뇌질환. 뇌에 물이차는 뇌 수두증이나 기원 불명의 뇌수막염 혹은 세포 문제로 인한 뇌종양.
두 번째는 장기 문제. 뇌에 문제가 없다면 간이 좋지 않거나 혈당이 떨어지거나 미네랄과 칼슘이 결핍일 때.
세 번째는 특발성 간질. 아무 이상이 없고 원인을 알 수 없다면 특발성 간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모두 처음 들어보는 생소하고 무서운 병이었다. 이중에 그 어떤 것과도 우리 한별이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일단 MRI 촬영을 하기 위해 시부모님 댁과는 거리가 있는 큰 병원에 한별이를 데리고 가야 했다. 하지만 나이가 있으신 시부모님에게 한별이를 병원에 데리고 가 달라고 말씀드리기 죄송스러워 성남에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부탁을 했다. 때마침 휴직 후 잠시 일을 쉬고 있던 동생은 평소 한별이를 예뻐해 주었기에 며칠 뒤 한걸음에 예약한 병원으로 가주었다. 미국 시간으로 새벽 12시에 한국에서 병원 진료를 보았고 우리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발만 동동거리며 동생의 전화를 기다렸다. 다행히 병원의 배려로 통화를 하며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신경 검사나 육안으로 보이는 한별이는 건강하고 아직 어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MRI 결과가 나오는 대로 연락드릴게요"
울먹거리며 통화를 이어가던 우리가 안돼 보였는지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수의사 선생님은 우리를 달래주었다. 동생은 한별이를 맡기고 두 시간 정도 후에 병원으로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주변에서 점심을 먹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 행동도 할 수 없이 멍하니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렸다. 결과를 예측할 수도 짐작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제발 큰 병이 아니기를 빈다는 긍정적인 말도 차마 뱉어내지 못했다. 하필 우리가 멀리 있을 때 이런 일이 생긴 것이 꼭 우리의 잘못인 것만 같았다. 나는 끊임없이 울고 있었고 남편은 계속 한숨만 내쉬었다. 강아지를 키우면서 몇 번의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지옥을 수백 번 오가도 좋으니 제발 검사 결과만 좋게 해달라고 빌었다. 아직 두 살밖에 안된 우리 강아지가 어쩌면 끔찍한 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