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이가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 뒤 나는 6년 동안 다녔던 직장을 여러 가지 이유로 퇴사했다. 그 덕분에 한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매일매일이 평화로웠다. 하지만 한별이의 간수치가 여전히 신경 쓰였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봐도 수치가 안정화되지 않아 매일 먹는 사료를 간에 좋은 처방 사료로 바꿔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동안 배워보고 싶었던 제과제빵 수업을 등록해 수업을 들었다. 주 오일 제과제빵학원을 다니고 한별이와 한 시간 이상 산책을 하고 주 삼일 요가를 다녀오면 일주일이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갈 무렵 남편의 미국 장기 출장이 결정되었다. 나는 퇴사를 했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회사에서 렌털 해준 숙소가 우리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강아지를 데려가기 어려웠고 간수치가 여전히 높은 한별이가 13시간의 장거리 비행을 잘 견뎌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평소 한별이를 봐주시던 동물병원 원장님에게 검진 차 내원하여 물었다.
"평소 분리불안이 심한 한별이에게 주 보호자가 바뀌는 스트레스와 장거리 비행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 중에 어떤 게 더 힘이 들까요?"
"냉정하게 말씀드리면 몇 개월의 출장이시면 한별이를 데려가는 건 보호자분이 보고 싶어서 데려가는 것 밖에 없어요. 한국에 돌봐줄 분이 계시면 한국에 두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한별이 간수치도 계속 체크해야 하니까요"
이제 함께한 지 고작 10개월인데 다시 3개월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분리불안이 이제야 좀 진정되어 가는 것 같았는데 다시 분리불안이 심해지면 어떡하지. 무조건 데려가고 싶었는데 원장님의 말씀에 우리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세상에서 한별이를 제일 잘 케어할 수 있는 건 우리뿐이고 한별이가 가장 믿고 의지하는 것도 우리뿐일 텐데 그런 한별이를 두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남편이 미국 출장을 가야 하는 것은 바뀔 수 없는 현실이었고 타지에서 힘들게 일할 남편을 혼자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오랜 고민 끝에 평소 한별이와 자주 봐왔던 시부모님께 한별이를 맡기고 미국을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한별이와 헤어지기 일주일 전부터 나는 한별이를 보기만 해도 주책맞게 눈물이 차올라 그렁그렁 이었다. 누군가 본다면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영문도 모르는 강아지에게 갑자기 이별을 고하기가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죽거나 강아지를 잃어버리거나 강아지가 죽은 것도 아닌데 해야 하는 생이별은 생각만 해도 벌써 가슴이 미어지는 그리운 마음이었다.
시부모님과 한별이는 종종 얼굴을 봐 왔지만 분리불안이 심한 녀석이기에 출국하기 이주일 전부터 적응할 수 있도록 몇 시간씩 한별이를 시댁에 맡기고 볼일을 보러 다니며 연습을 했다. 그리고 한별이의 집과 쿠션이 있을 곳에 cctv를 설치해 미국에서도 언제든지 한별이를 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한별이를 맡아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배려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우리는 한별이의 처방 사료도 미리 많이 사 두었고 한 달에 한번 먹는 심장사상충이랑 외부기생충 약도 미리 사서 어머님에게 챙겨드렸다. 그리고 한별이를 미용실에 데려가기 힘드실 것 같아 미리 미용실도 다녀왔다.
그리고 드디어 출국 하루 전날. 새벽같이 공항으로 출발해야 했기에 미리 한별이를 맡기기 위해 시댁으로 향했다. 한별이의 모든 짐을 챙겨 시댁으로 향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자신을 맡기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랐는지 한별이는 잘 놀다가 시어머님 품에 안겨서 이상한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처음 듣는 소리에 나는 꾹꾹 참아왔던 눈물이 차올랐다. 도저히 한별이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시어머니에게 나오시지 말라며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왔다. 주차했던 차에 올라타자마자 나는 조수석에 앉아 펑펑 울어버렸다. 남편은 한별이 잘 지내고 있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나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 순간 나는 한별이에게 우리가 언제까지 꼭 돌아 올 테니까 기다려달라고 말할 수 있고 한별이가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를 토닥이며 짐을 챙겼고 다음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별이의 행복한 표정을 오래오래 만들어주고 싶다고 다짐해 놓고 한별이를 울렸고 우리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