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미안해 한별아

by 박성희

뜬눈으로 13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한국은 몇 년 만의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동생은 한별이를 데리고 공항버스 내리는 곳으로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쏟아지는 비에 정신없이 동생 차에 짐을 싣고 카시트에 앉아있는 한별이를 만났다. 나를 알아보는 건지 못 알아보는 건지 힘없이 누워있는 한별이에게 손등을 내밀어 냄새를 맡게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대했던 반응이 아니라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만져본 근육 없는 팔다리와 생기 없는 표정에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그렇게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동생과 함께 우리 집으로 들어갔다. 익숙한 장소에 도착하자 한별이는 집안을 한 바퀴 쓱 돌아보더니 이내 동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발작할 때마다 곁에 있어준 동생에게 의지를 많이 한 것인지 아니면 나에게 화가 많이 난 것인지 나보다 동생의 품이 편안해 보였다. 당황한 동생은 곧 누나를 알아볼 거라며 나를 위로했지만 섭섭함보다는 미안함이 더 컸기에 그렇게라도 동생을 의지하며 살아준 것이 고마웠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과 치킨을 시켜먹으며 그동안의 자세한 한별이 이야기를 들었다. 발작할 때 해야 하는 행동, 한별이의 현상태, 약 먹이는 방법, 등등 동생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한별이 간호하는데 애써주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 후 긴장이 풀렸는지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밤새 발작할지도 모르니 한별이와 함께 자기 위해 거실에 이불을 깔고 다 같이 누었지만 한별이는 더욱더 동생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동생과 함께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들어서자 한별이는 동생에게 매달리며 나에게는 전혀 오려고 하지 않았다. 통화만 했던 담당 선생님을 만났고 한별이의 현상태에 대해 다시 한번 설명을 들었다. 매일 울면서 들었던 통화와는 다르게 덤덤했다.


전화로 듣던 것보다 한별이의 상태는 좋지 않았고 발작을 안 해야만 약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발작을 조금씩 하기만 했을 뿐 줄여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지금으로서는 발작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발작할 때마다 병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최선이었다.


병원 진료 후 동생을 돌려보내고 오랜만에 한별이와 산책을 했다. 이제 오롯이 나와 한별이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말 나에게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근육이 다 빠져 힘들어서 그런 것인지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도 하려 하지 않고 집 앞에서 대변만 보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자며 고집을 피웠다. 건강했을 때는 두 시간도 거뜬히 산책하던 한별이었는데. 조금만 더 산책을 하자고 달래 보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며칠 동안 동생이 사라진 현관 앞에 누워 현관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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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영부영 나 혼자 한국에 온 지 일주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동생을 찾는 듯한 행동도 많이 없어졌고 나와의 산책도 짧게나마 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한별이 진료비용으로 인해 동생에게 갚아야 할 돈이 꽤 되었고 한별이를 보살피며 집에만 있을 수 없어 집 근처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가 없는 새에 혼자서 발작을 할까 걱정이 되어 집에 cctv를 설치 후 아르바이트하며 짬나는 대로 한별이를 계속 관찰했다. 일을 시작하고 4일이 지났을 때였다. 평소처럼 퇴근하기 1시간 전 우연히 틀어본 cctv에는 거실 한가운데 한별이의 대변으로 추정되는 갈색 물체가 보였다. 우리 집으로 다시 온 후 소변은 자주 실수하는데 대변은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한별이가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이내 곧 발작을 시작했다. 놀란 나는 일을 하다 말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리고 발작이 멈추고 몇 분 뒤 또 연달아 발작하고 있었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손발이 덜덜 떨리고 굳은 목소리로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요. 저희 집 강아지가 지금 발작을 하고 있어서 오늘은 한 시간만 일찍 퇴근하면 안 될까요?"

"어머 어떻게. 사장님한테 제가 말씀드릴게요. 손님도 없으니까 얼른 가보세요"



다행히 일하는 곳의 직원분도 강아지를 키우는 분이라 너그럽게 사장님에게 잘 말해주셨다. 직원분은 정신없이 나가려는 덜덜 떨리는 내손을 맞잡고 정신 잘 차리고 가라며 나를 다독였다. 집으로 달려가는 내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이야기로만 듣던 한별이의 발작을 카메라로 마주하니 미안함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그렇게 뛰어서 도착해 만난 한별이는 나를 반겨주며 덜덜 떨고 있었다. 나는 한별이를 끌어안고 바로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 병원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 그동안 이렇게 힘들고 아팠구나 우리 한별이. 혼자 얼마나 무서웠을까. 혼자 있게 해서 정말 미안해.


그동안은 내가 미국에 있었기 때문에 한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함께 있는 지금도 내가 한별이에게 진짜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아픔을 나눠가질 수도 줄여줄 수도 없다. 나는 이 순간 그냥 무능한 보호자였다. 아직 너무 어린 한별이에게 세상을 더 보여주고 싶어서 할 수 있는 치료를 다 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과연 이게 한별이도 원하는 바일지 의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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