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아빠가 온다.

by 박성희

갑자기 방문한 동물병원은 담당 선생님의 휴가로 인해 처음 보는 당직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당직 선생님은 계속 울고 있는 나에게 휴지를 뽑아 내밀며 망설이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번처럼 수액을 맞는 방법이 있고 그냥 추가 약을 받아가는 방법이 있어요. 수액을 맞으면 일시적으로는 컨디션이 많이 좋아지지만 약을 많이 맞아야 하는 부담이 있고 입원도 해야 해서 비용도 많이 나와요. 하지만 추가 약을 받아서 먹이면 약기운이 돌 때까지 발작을 몇 번 더 할 수 있어요. 보호자님이 선택하시는 방향으로 해드릴게요"

"제가 멀리 있다 와서 한별이가 발작하는걸 직접 본건 이번이 처음인데. 발작할 때 많이 아플 것 같은데 많이 아픈가요? 한별이를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해 줄 수 있을까요?"

"강아지들이 발작할 때 아파하기보다는 발작하기 전 후에 공포를 많이 느껴요. 보호자분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계세요. 이렇게 발작할 때마다 병원으로 오시면 돼요."



그날은 결국 추가 약을 받아서 병원을 나왔다. 집에 오자마자 한별이에게 약을 먹였다. 그리고 밤새 몇 번의 발작이 더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한별이를 뒤에서 껴안고 눈을 지그시 눌러주며 한별이 귓가에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렇게 발작할 때마다 온몸이 뒤틀리며 괴로워하는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약을 먹이는 것뿐이라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다음날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기에 동생에게 우리 집으로 와서 한별이와 함께 있어달라고 또 한 번 부탁을 했다.


내가 출근 후 동생이 집에 오고 짧게 한 번의 발작을 한 후로는 약기운이 돈 것인지 더 이상 발작을 하지 않았다. 동생도 그동안 한별이가 눈에 밟혔다면서 하루만 더 있어보고 괜찮으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아무리 일을 쉬고 있다고 해도 부를 때마다 한걸음에 성남에서 수원까지 달려와 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잘 안다. 늘 한별이에게 마음 써주는 동생에게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동생은 며칠을 우리 집에서 한별이를 보살펴 주고 떠났다.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아주 짧은 발작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이 되었다. 한별이를 데리고 남편이 도착할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다. 오랜만에 만난 한별이와 남편은 서로 한참을 핥아주고 쓰다듬었고 처음 내가 한별이를 만나고 변한 녀석의 모습에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것처럼 남편도 같은 과정을 겪었다.


다행히 우리는 걱정했던 최악의 상황은 만나지 않았고 우리 둘 다 한별이를 만났고 만졌고 안아줄 수 있었다. 남편이 돌아온 후 짧은 발작마저 사라진 지 2주 정도 지났을 때였다. 담당 선생님은 이제 스테로이드를 줄여보자고 했다. 스테로이드는 독한 약이기에 오래 먹으면 건강했던 다른 장기들 마저 손상이 생기고 강아지의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질 수 있어 할 수만 있다면 약을 계속 줄이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약을 줄인다는 것은 좋은 징조였지만 혹여나 또 발작을 할게 될까 봐 불안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약을 줄인 지 5일째 되던 날 새벽에 딱딱거리는 이상한 소리에 나는 눈이 번쩍 떠졌다. 자기 집안에서 자던 한별이는 허공에 발을 굴리며 입을 움직이며 발작하고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한별이를 끌어안고 화장실로 뛰었고 뒤에서 안으며 한 손으로 눈을 지그시 눌러주었다. 그런데 그 상태로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났다. 평소대로라면 이 정도에 발작이 멈춰야 하는데 발작이 길어지고 있었다.



"여보. 여기 좀 와줘! 여보!"



그 순간 나도 모르게 한별이를 끌어안으며 매달렸다.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발작이 멈추지 않자 무서운 마음에 자고 있는 남편을 소리쳐 불렀다. 남편은 다급한 내 목소리에 자다가 정신없이 뛰어나왔다. 그리고 1분 정도 지나자 발작이 멈췄고 내가 지켜본 것 중에 최장시간으로 발작을 했다. 이러다 정말 한별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현실이 눈앞에 보였다. 결국 한별이는 이렇게 아주 조금씩 우리 곁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날 밤 나는 결국 밤새 잠들지 못했고 지쳐 잠든 한별이를 계속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가 곁에 있으니 마음 편히 자라고 혹여나 발작할까 봐 무서워하지 말고 꿈속에서만이라도 마음 편하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