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긴 발작으로 인해 다음날 눈 뜨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 담당 선생님과의 면담 후 치료를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었으므로 전반적인 검사를 다시 하고 치료방향을 결정하기로 했다. 간단한 피검사와 여러 가지 기초검사 결과 간수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랐고 신장이나 갑상선등 다른 장기들의 모든 수치들이 정상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고용량의 스테로이드로 인해 한별이의 몸은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다.
"수치들이 좋지 않아요. 이 상태로 약을 다시 늘리기에는 좀 위험해요. 상비약을 따로 처방해드릴 테니까. 혹시 발작을 하면 상비약을 먹이는 방향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어쩌면 나는 계속 약을 먹이면서 오래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별이의 몸이 이제는 힘들다고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매일 아침 하는 빗질에서 수북이 빠지는 털들과 자꾸만 미끄러지는 다리, 조금만 걸으면 힘들다고 주저앉아 버리는 행동들. 발작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약을 먹이고 있지만 그 약으로 인해 한별이의 다른 장기들이 안 좋아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나는 한별이에게 약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독약을 먹이고 있는 게 아닐까. 약을 안 먹여서 발작을 하게 두는 것도 약을 먹여서 다른 장기에 손상을 주는 것도 옳은 선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욕심 때문에 한별이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 약을 먹다 보면 과연 끝은 있는 것일까.
한별이가 아픈 후로 길거리에 지나가는 다른 강아지들을 볼 때마다 수없이 많은 강아지 중에 왜 하필 내 강아지가 이런 병에 걸렸냐고 하늘을 원망했다. 그렇게 바라는 아이 한 명도 점지해주지 않았으면서 사랑하는 강아지마저 빨리 데려가려고 하는 건 아닐지 원망을 넘어 화가 났다.
내 강아지가 아프기 전에는 몰랐던 동물의 다양한 질병들과 간호하면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의 소용돌이들은 자신의 강아지가 아프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이 작은 생명체가 도대체 뭐길래 힘들고 기쁘고 슬프고 속상하고 화나고 행복하고 오만가지 감정을 다 느끼게 되는 것인지.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정말 오묘하고 특별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이다.
미국에서 처음 한별이의 병을 정확히 알았을 때 몇 날 며칠을 멍하니 앉아 울기만 했었다.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만 보던 남편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여보 많이 힘들겠지만 우리....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하자."
그때 남편의 말에 나는 너무 섭섭했고 오히려 더 울며 마음의 준비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었다. 과연 사랑하는 것들과의 이별을 준비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매일매일 조금씩 더 힘들어하는 한별이를 지켜보면서 생각해봤지만 나는 마음의 준비라는 건 도저히 못하겠다. 그냥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보고 싶어 하고 충분히 그리워하며 이별을 맞이하고 싶다. 다시는 못 만날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 강아지를 조금만 슬퍼하면서 떠나보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도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었다. 나를 달래며 마음의 준비를 하자던 남편에게서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주말에 기억나지도 않는 사소한 일로 우리는 다퉜고 대화를 시도하려고 해 봤지만 남편은 평소와 달리 아무 말 없이 아침 일찍 집을 나갔다. 사소한 일로 싸우는 게 종종 있었던 우리였고 갑자기 아무 말 없이 집을 나간 남편에게 더욱 섭섭했다. 조금만 서로의 섭섭한 마음을 이야기하면 풀릴 일인데 풀고 싶지 않은 걸까.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남편은 드디어 나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마주 앉았다. 그리고 들은 남편의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며칠 전부터 혼자 있을 때 자꾸 눈물이 나고 잠을 잘 못 자고 감정 절제가 잘 안 된다고. 모든 일에 무기력하고 심리가 너무 불안하다. 심리상담소를 가거나 정신과 약이라도 먹고 싶다고 말이다.
평소 나는 남편을 긍정적이고 항상 진취적이며 밝은 성격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그날의 남편은 많이 변해있었고 그 모습이 낯설었다. 왜 그동안 그런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는지 미안한 마음과 속상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매일 얼굴을 보고 같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사이에 남편의 힘듦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한심했다. 나는 그동안 한국에 돌아와서 한별이 간호에만 매달렸을 뿐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의 마음 하나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
혼자 미국에서 지냈던 시간들.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일했던 시간들. 10년 넘게 다닌 직장. 갑자기 아프기 시작한 한별이. 남편의 마음고생이 없다는 게 이상할 조건이었다. 한별이가 머리가 아픈 동안 남편은 마음이 아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