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마음 아픈 사람.

by 박성희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 남편은 상담과 심리검사 끝에 잦은 출장과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우울감과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상담사는 남편에게 심리치료와 더불어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조금 쉬어갈 시기가 되었다고 조언했다. 우리는 많은 대화 끝에 남편의 10년 직장생활을 잠시 쉬어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상담을 받았고 회사에는 사직서를 제출했다. 마음이 아프다는 건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기에 딱쟁이가 생겼는지 상처가 옅어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남편은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고 했다.


아직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지만 한별이를 챙기느라 정신없던 나에게 마음이 힘들다고 표현해준 남편이 고마웠다. 만약에 표현하지 않고 쌓여갔다면 더 큰 마음의 병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상처에 우열을 가릴 수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또한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 병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어디서 쌓이고 쌓여 어떻게 표출될지도 알 수 없으니 상처를 받을 때마다 자기 스스로를 돌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요즘은 우울증이나 정신병을 흔히 감기라고 표현한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계절이 바뀌고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할 때마다 누구나 쉽게 걸릴 수 있는 그런 감기.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마음이 지치고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누구나 마음의 감기에 걸릴 수 있다. 정도에 따라 겉으로 드러나느냐 혼자 삼키고 넘어가느냐에 달렸을 뿐.


남편이 상담하는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쩌면 나에게도 심리상담이 필요하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게 꼭 큰 문제가 아니더라도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은 없고 바쁘게 살다 보면 그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도 없이 지내는 일이 허다하다. 그럴 땐 제3자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같이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을 가지면서 내 마음을 돌아보고 가뿐해질 수 있다면 심리상담은 주기적으로 받아 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요즘 진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모두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닐까. 처음부터 남에게 해코지하고 싶고 막대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친 일상 속에 자신도 모르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막말을 하게 되므로 누구에게나 심리상담은 주기적으로 맞아야 하는 예방접종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심리상담을 받는다 하면 큰 문제가 있거나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 누구나 하하호호 잘 사는 것처럼 보여도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런 상처를 애써 모른척하기보다는 받았던 상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툭 털어낼 상담 처방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우려의 시선보다는 따뜻한 한마디를 건네주는 게 어떨까.


당분간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 아픈 한별이와 마음 아픈 남편을 잘 보살피는 것이다. 세상에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물이 아픈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또 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간단한 애로사항을 도와주는 것뿐이지만 도움을 받는 입장에서는 함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꽤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남편의 기분을 살피고 한별이의 약을 챙겨 먹인다. 혹여나 내가 까먹을까 봐 인생은 끊임없이 시련을 주고 지치지 말라며 그에 상응하는 행복도 주고 있다. 내가 얼마나 알아차리고 받아들이냐에 달렸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셋이 함께하고 있기에 꽤 자주 소리 내 웃고 서로를 사랑해주고 있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차리고 치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꽤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한별이의 병은 진행 중이고 남편의 마음도 아프지만 언젠가는 한별이가 약을 안 먹어도 발작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남편의 마음이 단단해지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오늘도 나는 머리 아픈 한별이와 마음 아픈 남편과 함께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을 챙겨 먹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