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

호준

by 콰드로페니아

아빠는 당뇨가 있다. 나는 감기만 걸려도 아프다고 온몸으로 말한다. 그런데 아빠는 쥐도 새도 모르게 병원을 가는 편이라 아픈지 잘 알 수가 없다. 당뇨도 마찬가지였다. 저녁 식사 중에 엄마가 건네는 잔소리와, 가끔 아빠가 약 먹는 모습을 보면서 당뇨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뇨는 가족력이었다. 고모는 몇 년 전부터 당뇨를 심하게 앓았다. 처음에는 당뇨에 걸렸다는 사실 외에 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해가 다르게 고모의 건강은 나빠졌다. 몇 달 전에 만난 고모는 시력이 많이 나빠졌고, 거동도 힘들어서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차에서 내리는 데 불편해 하였다. 늘 호쾌한 모습만을 기억하던 내게 적잖이 충격이었다. 당뇨는 비단 고모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당뇨로 치아에 문제가 있는 분도, 심하게 앓다가 오랜 기간 운동을 통해서 건강을 되찾은 분도 계셨다.


당연히 아빠를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당뇨로 고생하는 고모를 옆에 두고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술을 마시러 나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했다. 그래서 집에 둘만 남아 있는 날에 아빠를 붙잡고 말을, 아니 잔소리를 했다. 아프면 제일 고생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야. 고모 아픈 모습 보면 느끼는 점이 없어?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소리를 늘어 놓았다. 하지만 별 다른 반응 없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달라진 점 없이은 별로 없었다. 아빠는 그대로였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아빠의 건강을 우려하던 가족들이 먼저 변했다. 나는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였다. 밥을 물 마시듯이 빠르게 먹는 아빠의 식습관이 마음에 걸렸고, 휴일이면 안방에서 꼼짝도 않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자연스레 식탁 위의 잔소리와, 아빠를 닦달해서 산책하러 나가는 날이 늘었다. 하지만 누군가 억지로 변화를 만드는 일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내가 암만 기를 쓴다고 바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모른 체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엄마는 식단을 신경 썼다. 당뇨를 관리하는 데 있어 식단은 운동과 더불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아빠가 먹는 밥부터 바꾸려고 했다. 그 이유는 당뇨가 어떤 병인지를 살펴보면 쉬이 알 수 있다. 당뇨는 췌장이 인슐린을 충분히 만들지 못하거나 체내 세포가 인슐린에 적절하게 반응하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인슐린은 혈당량을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역할을 한다. 인슐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탄수화물을 비롯한 영양소 전반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데 큰 문제가 발생한다. 그래서 당뇨에 걸렸다면 탄수화물을 섭취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하면서 필요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는 식단이 중요하다.


탄수화물 섭취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밥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아빠의 당뇨 증세를 개선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현미나 잡곡이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하얀 흰 쌀밥은 정제 탄수화물이다. 정제 탄수화물은 가공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혈당 수치 상승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당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뇨 환자에게 흰 쌀보다 현미, 잡곡을 권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다. 엄마는 그 점을 고려해서 집의 쌀을 바꿨다.


흰 쌀밥을 다른 재료로 바꾸는 일은 얼핏 쉬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 삶 깊숙히 스며 들어서 흰 쌀밥이 어떤 문제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제대로 인지하기 어렵다. 햄버거나 피자처럼 눈에 확 띈다면 해결하기 쉬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흰 쌀밥은 그렇지 않다. 매일 먹는 밥이 건강에 큰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을 깊이 인지한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집 식탁에서 흰 쌀밥을 빼기 어려웠다. 대한민국 식탁의 절반 이상은 흰 쌀밥이 올려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흔하디 흔하고, 한국에서 산다면 매일 같이 먹는 음식이 바로 흰 쌀밥이다. 더군다나 현미나 잡곡은 별도로 구입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들고 일일이 신경 써야 하는 번거로움까지 있다. 엄마가 아무리 노력한다한들 해결할 수 있는 영역에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당뇨와의 밀당은 끝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아빠는 약에만 의존한 채 별 다른 변화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엄마는 아빠가 당뇨를 이겨내기 위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살기를 바라지만 그건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병을 맞이한 순간부터, 당연시하던 삶의 작은 부분들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조금씩 상황을 나쁘게 만든다는 점이다. 원래 등잔 밑처럼, 으레 가장 밝다고 생각한 곳이 도리어 어두운 법이다.


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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