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람 되기

영재

by 콰드로페니아

몇 번의 유럽여행 동안 유럽에는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고 느꼈다. 거지가 없는 도시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들은 대체로 회색빛이었다. 항상 무언가 가득 담긴 배낭을 멘 채 빠른 손놀림으로 자판기의 동전 반환구를 확인하거나 쓰레기통을 뒤졌다. 그러나 유럽의 거지들은 도시마다 전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파리의 지하철 열차 안에서는 오래된 악기를 든 사람이 잊을만 하면 등장하여 신나게 연주를 했고, 스페인의 패스트 푸드 점 앞에는 문 밖을 나서는 손님이 남긴 음료나 음식을 나누어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지속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나요?

프라하의 거지는 다른 도시에서 보지 못한 유독 독특한 특징이 있었다. 그들은 그 어떤 도시의 거지보다 더 간절하고 치열하게 돈을 구걸한다. 마치 구걸할 때 지켜야 할 규칙을 따로 정해놓았나 싶을 정도로 자세가 비슷했다. 그들은 길가에 무릎을 꿇고 이마가 땅에 닿을 만큼 상체를 숙인 뒤 두 손을 공손히 내민다. 누군가 그 공손한 손에 돈을 쥐어 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감사하다는 의미인 듯한 말을 연신 되뇌인다. 그때도 그들은 절대로 고개를 들지 않는다. 큰 죄를 지은 사람 같은 행동이 낯설고 불편했다. 그 중 몇은 자신이 기르는 개와 함께 딱 붙어 앉아 온기를 나누며 버티기도 했다. 더욱 큰 안쓰러움을 자아내는 개의 눈빛 덕분인지, 개와 함께하는 사람 앞에서는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더 잦았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거지도 유난히 많았다. 프라하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까를교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척이나 아름다운 까를교를 무심코 지나치기란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까를교를 건널 때마다 땅에 얼굴을 박고 있는 거지들이 계속 눈에 채였다. 시선을 멈추면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에 애써 걸음을 재촉했다.


프라하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다. 터덜터덜 프라하 성에서 내려와 도로 까를교를 건너려 할 때쯤 입이 조금 심심했다. 마침 까를교를 건너기 직전에 위치한 어느 가게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소위 굴뚝빵이라고도 불리는 체코의 명물 ‘뜨르들로’를 파는 가게였다. 뜨르들로는 가운데가 비어있는 긴 원통 모양의 빵인데, 바깥쪽에 설탕과 시나몬을 뿌린 뒤 비어있는 안쪽에 누텔라나 과일 등을 넣어 먹는다. 그 가게에서 누텔라가 발라진 뜨르들로를 하나 샀다. 빵은 생각보다 컸다. 허기가 져서 산 것이 아니다보니 다 먹기에는 양이 많았다. 따끈따끈한 빵을 받고 그 자리에서 조금씩 뜯어 먹었다. 생각보다 훨씬 달아서 다 먹을 자신이 없었다. 절반쯤 먹었을 때 남은 빵을 버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 까를교 앞에 수그리고 있던 거지와 마주쳤다. 다 먹지 않는다면 차라리 저 사람에게 주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빵도 깔끔하게 뜯어 먹은 상태라 나눠주기에 적당했다. 남은 빵의 크기를 가늠하기 위해 손을 폈다. 그 순간 퀴퀴한 냄새가 은근하게 느껴졌다. 나에게서 나는 냄새인가 싶어 연신 소매에 코를 킁킁댔다. 그 순간 문득 지하철 역에서 마주치던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 할머니를 만난 날에도 비슷한 냄새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 지하철 역의 할머니는 작은 보자기를 펼쳐두고 몇 안 되는 종류의 껌을 늘어놓은 채, 무기력한 표정으로 역 안의 계단 끝에 걸터앉아 계신다. 역 근처에 약속이 있을 때마다 그 할머니 앞을 지나쳐야만 했다. 사람들은 잔뜩 말라 왜소한 할머니를 피해 계단을 오르내린다. 할머니에게 껌을 사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할머니가 파는 껌이 터무니 없이 비싸기 때문이다. 바로 옆의 편의점만 가도 정가에, 아니 어쩔 땐 정가보다 더 싸게 똑같은 껌을 살 수 있었다.


그날도 할머니 앞을 지나치는 수많은 날 중 하나였다. 나는 통로 저 멀리서부터 할머니를 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마침 내 지갑에 오천 원이 있었고, 항상 그 작은 할머니가 안쓰럽던 나는 할머니께 껌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돈을 거슬러 주시려고 하신다면 사양하겠다는 마음으로, “껌 두 개만 주세요”하며 오천 원을 건네 드렸다. 바로 그때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할머니는 오천 원어치보다 적은 개수의 껌을 주려고 하셨다. 나는 좋은 마음으로 오천 원을 쓰려고 했었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계산하시지 않는 모습에 조금 불쾌해졌다.


약속 장소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 껌을 몇 개 덜 주려던 할머니 때문이 아니라 그런 할머니를 보고 기분이 상한 나 때문이었다. 나는 대체 왜 기분이 상했을까. 그저 기부라는 행위로 스스로가 착한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나니 누군가를 돕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진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서 만약 진심으로 할머니를 돕고 싶었다 해도 나에게 감히 그분을 불쌍히 여길 자격이나 있었을까? 나의 행동이 오히려 할머니를 무시하는 처사는 아니었을까? 이전까지 자랑스레 여기던 모든 선행에 의심이 들었다. 솔직히 나는 할머니를 거지라고 생각했다. 이중적인 내 모습이 창피해 괴로웠다. 스스로에게 느낀 부끄러움에는 축축하게 곰팡이가 슬어있었다. 나에게서 퀴퀴하고 눅눅한 냄새가 나는 듯했다. 거지에게 날 것만 같다고 생각했던 냄새였다.



뜨르들로

여러 고민에 휩싸인 채 나는 까를교의 쓰레기통 앞에서 서성였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휘휘 저어 머릿속에 떠오른 할머니를 지워 냈다. 거짓된 선행을 베푸는 것은 그때만으로 족했다. 나 자신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진심으로 도와야겠다는 마음만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안하느니만 못했다. 곧이어 ‘에라 모르겠다’ 하고 남은 뜨르들로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빵은 쓰레기통 안으로 빨려가듯 사라졌다. 배에는 적당한 포만감이 돌았지만 마음은 전보다 더 불편해졌다. 혀 끝에 남아있던 달콤함은 이내 텁텁함으로 바뀌었다. 쓰레기통 앞에서 손에 묻은 설탕을 탈탈 털었다. 두 손이 마주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나는 곧바로 까를교를 건넜다. 요란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납작 엎드려 있던 거지는 막 단속을 나온 경찰차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에게 뜨르들로를 나누어주었을 나를 상상했다. 그는 내가 건넨 빵에 크게 감사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하다보니 혼란스러웠다. 머릿속은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으로 가득해졌다.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면 결과가 어떻든 그 행동은 안하느니만 못한 일일까. 끊임없이 의도의 순수함을 저울질하는 내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분명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끼며 숙소로 돌아왔다. 아까 버린 뜨르들로가 돌아오는 내내 손에 쥐어져 있는 듯했다.



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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