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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Sep 26. 2021

불확실성 속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힘

끔 시간이 날 때 즐기는 게임이 있다. 바로 온라인으로 하는 텍사스 홀덤이다. 업으로 하는 트레이딩도 모자라 게임도 텍사스 홀덤이라니? 이쯤 되면 불확실성에 제대로 미친놈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나는 불가지론에 대한 예찬론적 견해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확실성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불확실성이라는 것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부여하기에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또한 불확실성을 통해 인간 본성의 표출을 오롯이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또 불확실성을 좋아한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게임 앞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해지고 또 철저히 발가벗겨진다. 게임판에 발을 담그는 순간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던 계층, 사회적 지위, 명성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갓띵언 "보는 것이, 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을 수가, 읎지"

포커는 나 자신의 심리 상태가 어떤지, 또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따라 심리가 어떻게 요동치는지를 매우 빠른 템포로 느끼고 또 관찰할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이다. 특히나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판돈을 걸 수 있는 노리밋 게임이라면? 혹은 주기적으로 블라인드(판에 참가하기 위해 최소로 걸어야 하는 판돈)가 올라가는 토너먼트라면? 내가 느낄 수 있는 내 감정의 스펙트럼은 더욱더 넓어지고, 이러한 감정들로 인해 생의 감각은 더욱 뚜렷해진다. 포커는 불확실성을 통해 감정을 생성해낼 수 있는 시뮬레이터와도 같다.


우리는 '이성적으로' 모두 알고 있다. 이전 판의 게임 결과가 이번 판의 게임 결과와 무관하다는 그 통계적 속성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성적인 존재이기 전에 매우 '감정적인' 존재이다. 우리의 뇌는 결코 이성적으로 설계되어 있지 않기에 각종 인지적 편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는 이전 판에서 크게 이기거나 혹은 크게 지는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즉시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게 된다. 크게 이기면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느낌이 들고, 머지않아 세상의 최고가 될 수 있다는 확신에 차게 된다. 크게 지면 세상이 갑자기 흑빛으로 변하며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과연 다시 재기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들면서 말이다. 게임판에 발을 담그기 전 우리는 모두 이성적인 호모 이코노미쿠스일지 모르나, 판에 발을 담그는 순간 우리는 모두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된다. 우끼우끼~


그런 의미에서 최근 나온 신간 「블러프」는 단 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확실성과 포커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찌 재미있지 않을 수 없으랴! 약 5백 페이지 정도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단 이틀 만에 책을 매우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은 포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여기서 포커는 하나의 메타포적 수단에 불과하다. 책을 읽는 내내 책에서 나오는 포커라는 단어를 투자, 트레이딩, 인생으로 치환해 보았다. 그래도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데에 거리낌이 없었다. 결국 이 책은 포커에 대해 일면식도 모르던 저자가 어떤 사고 과정과 훈련을 통해 2018년 포커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는지, 포커를 통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또 포커와 같이 온갖 불확실성으로 점철된 인생이라는 게임판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책에서 도박이라는 것을 게임과 미신, 두 가지로 철저히 구분하고 있다. 게임과 미신의 차이는 바로 외부 요인에 대한 희망, 즉 헛된 기대의 유무에서 나온다. 기도 매매나 아멘 운용과 같은 것들은 바로 이러한 헛된 기대의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투자, 트레이딩, 도박을 비롯한 불확실성과 결부되어 있는 의사결정을 할 때 외부 요인에 대한 희망은 절대로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절대 외부 요인의 변화를 컨트롤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직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종류의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원칙이 있다. 바로 불확실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대담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운칠기삼에서의 기는 지식이나 기교, 즉 테크니컬한 것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기란 내가 절대로 외부 요인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스로 자신의 심리 상태를 다스릴 줄 아는, 즉 어떻게 보면 멘탈 관리 능력까지를 포함한다. 다시 말해, 기는 나 자신을 통제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의사결정 시스템을 총칭하는 것이다.


인생 또한 포커와 같이 운과 기술의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한 조합으로 되어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줄 아는 능력이다. 또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덤덤히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패가 좋지 않을 때에는 기꺼이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음 판을 준비할 줄 아는 의연함이 필요하다. 반대로 패가 좋을 때에는 너무 기고만장하여 날뛰지 않도록 심리적 고삐를 단단히 쥘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다. 인생이든 포커든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자제력, 즉 메타인지에 기반한 자아성찰이다.


우리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이 분산, 즉 불확실성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어찌 보면 우리의 인생 자체는 마치 거대한 포커 판과도 같다. 인생 자체를 판돈으로 걸고 있는 노 리밋 텍사스 홀덤인 것이다. 그렇다면 불확실성 속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는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가? 답은 간단하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우리는 결과를 통제할 수는 없다. 오직 의사결정, 즉 과정만을 선택할 수 있다. 매 순간마다 옳은 마음가짐과 옳은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다. 미래에 대한 정보는 신이 아닌 이상 절대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필터레이션(Filtration, 과거부터 현재까지 쌓여있는 정보의 집합)을 기반으로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결과는 오직 하늘만이 알고 있다. 따라서 포커든 인생이든 이를 상대하는 방법에 대해 우리는 아래와 같이 이를 단 두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블러프」의 저자, 마리아 코니코바는 이를 '한 마리씩'이라는 말로 갈음하고 있다.

앤 라모트의 <쓰기의 감각(Bird by Bird)>은 글쓰기와 관련해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그녀의 동생에 관한 이야기에서 따온 것이다. 앤의 동생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새와 관련된 숙제를 받았다. 몇 주의 시간이 있었으나 마지막 날까지 미루며 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까지 숙제를 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동생은 식탁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어떻게 숙제를 끝내지?" "한 마리씩 해." 아빠가 말했다. "그냥, 한 마리씩 해."

'한 마리씩'이라는 말은 벅찬 상황이 될 때마다 내가 외우는 일종의 주문이 되었다. 어떤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나는 눈을 감고 '한 마리씩'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리고 목록에 있는 다음 새에게로 나아간다. 한 마리씩. 한 판씩. 벅차 보이지만 해낼 수 있어. 재러드와 이야기했던 것처럼 심호흡하고, 눈을 감고, 리셋 버튼을 누른다.

한 번에 한 판씩. 리셋. 전략적인 리셋뿐 아니라 감정적 리셋도 필요하다. 나는 천천히 호흡하려 최선을 다하면서 실수를 떨치고 앞으로 내다보려고 했다.

- 블러프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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