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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Sep 06. 2021

멱법칙:노력과 성과의 관계

경제학에 관심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이탈리아의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Vilfredo Pareto)가 주장한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80 대 20 법칙, 혹은 2 대 8 법칙이라고 불리는 이 파레토 법칙은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파레토 법칙은 여러 자연현상 혹은 사회현상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즐겨 입는 옷의 80%는 옷장에 걸린 옷의 20%에 불과하다든지, 전체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차지하고 있다든지, 성과의 80%가 근무시간 중 집중력을 발휘한 20%의 시간에 이뤄진다든지 하는 현상들이 바로 이러한 파레토 법칙의 대표적인 예시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파레토 법칙은 노력과 성과의 관계에서도 존재한다. 내가 원하는 성과가 쉽사리 나오지 않는 이유, 말콤 글래드웰이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한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멱법칙(Power law)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선형적 법칙과 다르게 멱법칙은 우리에게 매우 가혹하다. 멱법칙은 항상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한다. 1을 투입하면 1이라는 성과가 나오는 것은 선형 법칙이나 멱법칙이나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나 경로의존적(Path-dependent)이다. 과거가 오늘로 이어지고, 또 오늘이 미래로 이어지는 경로의존적 세계에서 멱법칙의 경로는 그야말로 사람을 환장하게 한다.

이 세상이 선형적으로 설계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노력한 만큼 바로바로 성과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누가 이렇게 설계했는지는 몰라도 세상은 멱법칙이 난무하는 매우 혹독한 곳이다. 멱법칙은 아무에게나 성과의 달콤함을 쥐여주지 않는다. 오직 끝장을 본 사람만이 성공의 과실을 맛볼 수 있는 영예를 거머쥔다. 성과는 절대 선형적으로 증가하지 않는다. 내공이 켜켜이 쌓이고 쌓여 더 이상 그것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할 때 성과는 비로소 폭발해 승천한다.


우리는 잘 나가는 사람들의 겉모습만을 보고 천운이 닿아 좋은 결과를 얻은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들의 속 사정을 들어보면 그 천운에 닿기 위해 매우 긴 세월 동안의 무명시절을 참고 견뎌냈던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투자로 큰돈을 벌기 위해서는 복리의 힘으로 레버리지를 일으켜야 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아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이가 소수인 이유는 복리 투자는 단기적으로 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은 사실 그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부를 50대 이후에 벌어들였다. 전형적인 복리투자의 방식이다. 티가 나려면 절대적인 양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엔 티가 나지 않지만 복리는 한번 티가 나기 시작하면 기하급수적으로 돈을 벌어들인다. 우리가 워런 버핏처럼 투자하면 모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는 하면서도 '실천'을 쉽사리 하지 못하는 이유는 멱법칙이 선사하는 인고의 시간을 버틸 정신적 토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도전을 시작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중에 자신들의 도전을 포기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이 멱법칙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의지가 있는 이상 처음부터 쉽게 포기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이 많이 포기하는 마의 구간은 0.5~0.8 정도의 인풋이 투입된 구간이다. 이때부터 우리는 엄청난 고뇌와 고민에 휩싸이게 된다. 자신이 투입한 시간과 노력은 꽤 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남들보다 훨씬 더 열심히는 하는 거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이렇다 할 성과가 표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멱법칙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과가 발현되는 트리거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자. 만약에 우리가 평균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우리는 정규 분포의 가운데쯤에 위치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평균 정도의 노력을 한다면? 당연히 노력의 수준은 물어보나 마나 0.5가 될 텐데, 중요한 것은 멱법칙의 세상에서 0.5의 노력은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독한 사람은 소수다. 이 사람들은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타성이 아닌 근성으로 말이다. 성과를 내기 위해 필요한 수준의 인풋은 3 표준편차를 크게 벗어날 정도의 아웃라이어여야만 한다.


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앤드류 응(Andrew Ng) 교수는 스탠퍼드 대학의 한 강의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최소 50편에서 100편 정도의 논문을 보면 어떤 한 주제에 대해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좋다. 보수적으로 100편이라고 치자. 1년이 대충 50주라고 한다면 한 주에 2편의 논문은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 주에 2편의 논문을 소화하는 것, 과연 쉬울까 어려울까? 당연히 쉽지 않다. 목표를 거창하게 잡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일관성 있게 꾸준히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 인간의 뇌는 여러 가지 인지적 편향을 가지도록 설계가 되어있는데, 그중에서도 실천력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편향이 바로 현상 유지 편향(Status quo bias)이다. 현상 유지 편향에 의해 우리의 뇌 구조는 선천적으로 나태하며 게으르게 설계가 되어있다. 더군다나 TV, 게임, 유튜브 등 우리를 유혹하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매체들은 이러한 현상 유지 편향에 기름을 붓는다.


앤드류 응 교수는 매주 토요일 아침에 TV를 볼 수도 있지만, 논문을 볼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학생들에게 일갈한다. 그러다가 학생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자 겸연쩍었는지 나중에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쉴 때는 쉬어야죠. 허허.'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이 이렇게 들렸다.

'어차피 될놈될이니까, 너네 알아서 해라. 난 매주 토요일 아침에 논문을 봤기 때문에 이 자리에 서있는 거야. 허허.'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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