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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Jul 20. 2022

나는 퀀트 트레이더가 되기로 했다

지금이야 퀀트 트레이딩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사실 커리어 초창기부터 퀀트를 했던 건 아니었다. 내 커리어의 시작은 FICC 트레이딩이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나는 퀀트나 금융공학이 뭔지도 몰랐고 단지 금융권을 꿈꾸는 전형적인 문과생 상경계열 학생이었다. 학생 시절 목표는 채권이나 외환을 다루는 FICC 트레이더 혹은 채권 매니저가 되는 거였다. 거시경제학을 활용한 매크로 분석을 좋아했기에 주식보다는 FICC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사실 초창기 블로그 글들도 보면 매크로와 중국 경제나 시황에 대한 내용이 많다.


그랬기에 당연히 금융공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했다. 더군다나 그때 당시 한국에서는 계량적으로 트레이딩을 한다는 개념이 거의 없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실무에서 그것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지금이야 파이썬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익숙하고 퀀트 채용공고를 보면 파이썬이 기본이지만, 내가 취준을 할 당시만 해도 파이썬은커녕 엑셀 VBA만 잘 써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모두가 전통적인 방식의 트레이딩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나는 꿈에 그리던 대로 FICC 트레이더가 되어 커리어를 시작했기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여러 FICC 상품들을 다루고 나름대로의 매크로 분석을 하는 일 자체가 매우 즐거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몇 년이 지나자 어느 순간 나는 매너리즘에 빠져 버렸다. 그 이유는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트레이딩의 모습과 실제 실무에서 이루어지던 트레이딩의 모습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트레이딩은 매우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시장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의 트레이딩이었지만, 전통적인 트레이딩은 소위 말하는 메사끼에 의한 트레이딩이었다. 어떤 포지션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그에 대한 논리가 있지만 그 논리가 정말로 맞는지에 대한 검증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단지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뭔지 RG?' 식의 트레이딩이었다. 이렇게 감대로 투자나 트레이딩을 했을 때 벌면 영웅이 될 수 있다. '내가' 예측을 잘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내 예상이 빗나갔을 때 발생한다. 느낌대로 했고 내 예상이 맞을 거라는 편향이 있기 때문에 포지션이 손실을 보게 되는 순간 이성적 판단을 잃게 되고 향후 대책을 마련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계속해서 헛발질을 하게 된다. 결국 이상한 포지션이 되어 복구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환경 하에 있으면서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라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더불어 트레이딩에서 확률적으로나마 어느 정도의 객관적 증거에 기반해 트레이딩을 하는 것을 원했던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뛰어난 통찰력과 직감을 통해 시장을 예측할 수 있다면 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손실이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는 것인가? 왜 손실이 나면 내 탓을 하지 않고 시장 탓을 하는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덜 터졌다고 자기 위안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시장이 어떻게 되든 벌어내는 게 진정한 트레이딩 아닌가?


이러한 생각을 하던 와중 나는 퀀트 트레이딩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계량적 방식에 의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트레이딩의 근거를 발견하고 철저히 규칙에 기반해 매매를 하는 트레이딩 말이다. 나는 이 퀀트 트레이딩에 빠르게 매료되었다. 퀀트 트레이딩에 대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도 물어볼 사람도 없었기에 여러 원서들과 논문들을 혼자서 탐독해 나가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면서 인간의 주관적 판단이 트레이딩의 영역에서는 왜 독이 될 수밖에 없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전략을 설계해나가고 어떻게 매매 시스템을 구현해야 될지에 대해 배웠다. 파이썬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퀀트 트레이딩과 관련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는 전부 수집해보자는 식으로 공부를 해나갔다.


그렇게 나는 퀀트 트레이더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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