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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Jul 22. 2022

삶의 의미와 변동성의 가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이런 말을 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다."


결국 인생에서 출생과 죽음 사이에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흔히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걸 한번 금융공학적으로 해석해 볼까?


선택, 일단 영어로 옵션이다. 그렇다. 파생상품의 그 옵션인 것이다. 파생상품의 그 옵션 또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살 것이냐 말 것이냐. 팔 것이냐 말 것이냐. 그래서 이름도 옵션이다.


인생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옵션이라는 상품의 다발이 끊임없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옵션의 사슬은 우리가 수명을 다하는 그 순간까지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인생의 기본 스탠스는 옵션 매수 포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인생의 선택권이 있기 때문이다. 선택권이 있다는 말은 옵션을 들고 있다는, 다시 말해 매수 포지션이라는 의미다. 결국 우리는 이 기다란 옵션 사슬에 대한 매수 포지션을 들고 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인생이라는 기다란 옵션 사슬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옵션이라는 상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동인이 무엇인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옵션이라는 상품의 본질은 결국 변동성이다. 변동성의 움직임에 따라 옵션의 가치는 변한다. 옵션이라는 상품은 본래 변동성을 거래하기 위해 고안된 상품이다. 옵션을 매수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변동성이 상승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는 뜻이며, 반대로 옵션을 매도했다는 것은 변동성이 하락할 것을 예상한다는 의미다. 옵션에서 변동성에 대한 대가는 바로 시간이다. 옵션을 매수했다는 말은 시간 가치를 포기하는 대신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크기의 변동성을 기대하는 것이고, 반대로 옵션을 매도했다는 말은 변동성이 그렇게 크지 않음을 예상하기에 시간 가치를 얻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옵션의 가치는 변동성과 시간의 함수이며, 변동성과 시간은 정반대의 트레이드오프 관계를 지닌다.


따라서 만약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면 인생에서 변동성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매일매일 손실을 보게 된다. 하루라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 없이 소멸되는 것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하루의 가치만큼을 사용하지도 않은 채 한강물에 던져버리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변동성이 필요하다. 소멸하는 시간 가치를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의 변동성 가치가 필요한 것이다. 삶에서 변동성은 도전을 의미한다. 매일매일 도전하는 삶 , 그 도전 자체가 삶을 가치 있게 만든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오히려 도전하지 않음을 두려워해야 한다. 위험한 것은 변동성이 아니라 오히려 역설적으로 비변동성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손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선택하지 않음,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경계해야 한다.


한 곳에 안주하는 정착민의 삶이 아닌 자유로이 떠돌아다닐 수 있는 유목민의 삶을 살아야 한다.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칭기즈칸처럼 말이다. 삶의 변동성을 받아들이고 변동성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변화는 상수다. 변화하지 않음은 인생이라는 옵션의 가치를 길바닥에 내다 버리는 꼴이다. 하루 또 하루 우리는 죽음과 매일 가까워지고 있다. 좋든 싫든 죽음이라는 자기장은 서서히 우리의 목을 죄어온다. 그렇기에 삶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끝없이 내달려야 한다. 종횡무진 변동성의 가치를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움직이지 않는다면 어느 곳에도 도달할 수 없다. 어디론가 가고 싶다면 움직이려고 시도라도 해야 한다.


삶의 궤적을 얼마만큼 동적으로 만들 수 있는가에 집중하자.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이전보다 더 빨라지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던 신분제 사회는 이제 온데간데없으며, 변화만이 생존의 열쇠가 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불현듯 우리 앞에 찾아왔다. 이는 안주하는 삶이 서있을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다. 변화와 적응, 그리고 혁신을 거부한 19세기 초반 러다이트 운동의 결과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변동성! 그 끊임없는 움직임!

이 치열한 변동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호연지기가 우리에게는 필요하다.

하와이 4500 미터 상공에서 바라본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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