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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Jul 26. 2022

'이 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의 오류

거안사위(居安思危),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자성어 중 하나다. 이는 안락함 속에 있으면서도 항상 위기를 생각하라는 의미다. 나는 좁게는 퀀트, 나아가 무릇 모든 투자자라면 이 네 글자를 언제나 가슴속 깊이 새기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삼성 같은 초일류 기업의 내부에서 항상 위기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실적이 사상 최대라고 하더라도 그다음 해에는 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해서 기업에 어떤 충격을 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과 당나라같이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던 수많은 왕조와 제국들도 영원할 것만 같았지만 결국엔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졌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투자와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다. 워런 버핏과 같은 전설적인 투자자들이 존경받는 이유는 수익률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그들이 일궈놓은 부를 수십 년 동안 유지시키고 성장시켜왔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돈을 버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단기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수익률을 자랑하던 펀드들이 어느 순간 돌아보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노벨상을 받은 천재들을 영입한 LTCM 마저 한순간에 사라졌던 광경을 우리는 똑똑히 보지 않았는가. 잘 나가는 투자회사들 중에는 10년, 20년이 아닌 1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 투자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는 회사들이 많다. 우리가 잘 아는 레이 달리오의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또한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그들은 부가 자신에서 그치지 않고 대대손손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투자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혈안이다.


일각에서는 퀀트라고 하면 무적 불패의 투자 시스템을 하나 기똥차게 만들어서 여기에 돈을 투입하면 세상 편하게 돈을 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되어도 너무나 잘못된 생각이다. 사기를 꺾는 말일 수도 있으나 무적 불패의 단일 전략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팩터든지 그것이 잘 통하지 않는 시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팩터의 겨울이 찾아오면 제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해당 전략으로 인해 성과를 내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때의 시장 국면과 궁합이 잘 맞지 않는 팩터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난관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시장 국면에서 좋은 퍼포먼스를 내는 팩터를 찾아 함께 운용하는 것이다. 이는 개별 팩터 단위의 사고가 아닌 팩터 포트폴리오 레벨에서의 사고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에서 새로운 팩터를 찾아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퀀트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따라서 응당 퀀트라면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언제나 혁신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한다. 혁신이 사라진 기업의 말로가 불 보듯 뻔하듯이 발전이 없는 퀀트의 생존 확률은 한 해 두 해가 갈수록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요행만을 바라고 편하게 돈을 벌기를 원하다면 퀀트 투자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매주 로또를 사는 편이 낫다. 확률은 낮더라도 요행을 바랄 순 있기 때문이다.


퀀트에게 학습을 멈춘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퀀트에게는 무한한 발전의 욕구가 있어야 한다. RPG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듯이 내 포트폴리오의 레벨을 업그레이드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레벨업에는 끝이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은 저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새로운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크나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시장은 언제나 퀀트가 만들어낸 포트폴리오의 아킬레스건을 용케도 찾아 쇠꼬챙이로 적나라하게 후벼파댈 것이다. 약점을 보완하면 새로운 약점이 생기고, 이를 보완하면 또다시 새로운 약점이 보인다. 시장과의 처절한 공방이 무한히 이어지는 우로보로스의 세상이다. 무릇 투자와 사업은 이 끝없는 싸움을 계속해나가는 것이다. 위대한 투자자와 위대한 사업가가 존경을 받는 이유는 이것이 쉽지 않음에도 묵묵히 이를 지속해나가기 때문이다. 범인(凡人)과는 다른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초격차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범(凡)과 비범(非凡)의 차이다.


그렇기에 '이 정도면 됐어'라는 생각은 접고, 자기 자신을 향한 끝없는 담금질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항상 개선책은 있다. 다만 나태함과 현실에의 안주라는 우리의 본성이 때때로 우리의 발전을 시험에 들게 할 뿐이다. 가장 무서운 적은 항상 자신의 내면 속에 자리하고 있는 법이다. 따라서 '이 정도면 됐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지기보다는 '나는 오늘도 성장했는가?'라고 스스로에게 되뇔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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