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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Jan 11. 2023

역설계, 퀀트의 레벨을 높여주는 모방과 복제의 힘

# 매킨토시와 윈도우, 그 뛰어난 모방작

미국 IT 업계의 신화이자 두 거성인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그들은 각각 GUI 기반의 시스템인 매킨토시와 원도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GUI는 기존의 PC에는 없던 굉장히 참신하면서도 편리한 방식이었다. PC를 작동시키기 위한 모든 키워드와 명령어를 외우고 있지 않아도 사용자가 PC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역사적 사실은 바로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가 이러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처음 만들어낸 장본인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미 1970년대에 제록스는 알토라는 개인용 컴퓨터를 선보인 적이 있었고, 이 알토에는 심지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와 마우스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제록스라는 회사는 이 알토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데 있다. 결국 이 알토의 진가를 진작에 알아봤었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만이 이를 벤치마크 삼아 그들만의 색깔로 매킨토시와 윈도우를 탄생시켰다.


결국 이러한 실리콘밸리의 일화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것들을 부단히 들춰보고 수집하고 연구하여 내공을 쌓는 길밖에는 없다.'이다.



# 역설계의 힘


    

역설계의 사전적 의미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즉 대상을 체계적으로 분해하여 내부의 작동 원리를 알아내고 그 속에서 중요한 통찰력을 뽑아내는 접근법이다. 쉽게 말해, 결국 역설계는 아이작 뉴턴이 말한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서서'이다. 앞서 말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이나 작품을 남기고 간 거인들의 발자취를 차근차근 따라갈 필요가 있다. 그들의 결과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뜯어본 뒤 내 것으로 만들어야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퀀트가 꿈꾸는 이상향은 아마도 시장 상황에 상관없이 꾸준히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투자 시스템을 만드는 것일 것이다. 퀀트는 이러한 투자 시스템을 로버스트(Robust)한 팩터 포트폴리오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견고한 팩터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위해서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우리에게 아직 그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힘이 없으니 과거와 현재의 사례들을 부단히 들춰보는 수밖에. 즉, 그러한 사례들을 꾸준히 수집하고 모방해 보는 것이다.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사례들이 실제로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 따지는 것은 사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단 이러한 맥락에 익숙해져 스스로가 그것을 편하게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자기의 실력을 연마하는 것이다. 직접 해보지도 않고 어떤 책이나 논문이 좋니 안 좋니 평가만 해대는 것은 하등 의미가 없는 처사다. 쓸데없는 평가 대신 우리가 진짜 해야 할 일은 역설계라는 도구로 과거의 것들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것뿐이다.



# 모방이 답이라면 훈련만이 살 길

"퀀트가 되고 싶은데 파이썬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 알아야 하나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자면, 파이썬의 경지에는 크게 세 가지의 레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Lv1. 파이썬 코드를 읽어 무슨 일을 하는 코드인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Lv2. 남의 코드를 가져와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Lv3. 장차 본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코드를 처음부터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퀀트가 실무적으로 파이썬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다름 아닌 레벨 2와 레벨 3 사이의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최종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결과물을 제시간에 만들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파이썬 레벨 3로 가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은 절대로 그렇게 설계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나 같으면 금융 파이썬에 대한 공부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고 징징댈 시간에 바로 서점에 달려가서 금융 파이썬에 관한 아래 5권의 책을 풀매수 때린 다음, 안 보고도 내용을 줄줄 읊을 정도로 공부하고 또 파이썬 코드를 한 줄 한 줄씩 쳐볼 것 같다. (가끔 파이썬을 공부한답시고 원래 있던 소스코드를 그냥 복붙하면서 공부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흠...... Good Luck!) 그러면서 이미 만들어진 함수와 패키지, 코드 구조의 근본적인 작동원리를 파악하고 이러한 도구들을 내가 나중에 만들어볼 모델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을지 생각해 볼 것 같다.




금융 파이썬의 경우 책에 나온 그대로 코드를 쳐봐도 실행이 안 되고 오류를 뱉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인데, 이때 포기하면 영원히 퀀트랑은 사요나라다. 코딩의 진짜 실력은 디버깅에서 나온다. '네가 죽냐, 내가 죽냐'란 생각으로 무한 구글링의 궤도를 돌며 시시각각 튀어나오는 버그들을 때려잡아야 한다. RPG 게임에서 레벨업도 몹을 잡아야 오르지 않던가. 인생도 게임이랑 크게 차이가 없다. 공부에서 가성비 따지고 요행을 바라는 순간 레벨업은 물 건너갔다고 보면 된다. 뭐, 계속 태초마을에 머물러 있는 것도 나쁜 인생은 아닐 수 있겠다. 물론 선택은 각자의 몫.


결국 내가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낼 실력이 없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다. 끊임없이 모방하고 끊임없이 복제해 보는 것. 신입 퀀트가 회사에 새로 오게 되면 수십수백 권의 퀀트 전략 논문들을 똑같이 복제해 보라고 시키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계속 거치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이 내용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이를 사용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워지게 되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가 바로 그 지식이 바로 내 것이 된 순간이다. 사실 금융공학이나 퀀트 지식도 별거 없다. 처음 봤을 때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내게 익숙지 않기 때문이다. 수십 번 보다 보면 그것이 당연해지는 순간이 온다. 결국 그 지루한 행위를 기어코 해낸 자만이 그 유레카의 짜릿한 순간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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