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퀀트대디 Jan 26. 2023

P-퀀트와 Q-퀀트, 그리고 브리꼴레르

# P-퀀트와 Q-퀀트

일반적으로 퀀트 비즈니스는 그 비즈니스의 속성에 따라 크게 두 가지로 나뉘며, 이는 각각 P-퀀트와 Q-퀀트로 불린다. 사실 이 알파벳 P와 Q는 금융공학에서 서로 다른 확률 측도를 구분하는 방식이다. P-측도는 현실 측도(Physical Measure), Q-측도는 위험 중립 측도(Risk-Neutral Measure)라고도 불리는데, 현실 측도는 실제 현실 세계에서의 확률 측도를, 이와 다르게 위험 중립 측도는 위험 중립적인 세상에서의 확률 측도를 의미한다. 


퀀트의 범주가 P-퀀트와 Q-퀀트로 나뉘는 이유는 결국 퀀트가 만드는 모델이 가정하고 있는 그 기저가 현실 측도인가 혹은 위험 중립 측도인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실 측도에 관심이 있는 P-퀀트는 금융시장에서 리스크를 테이크하여 이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팩터 포트폴리오 혹은 퀀트 트레이딩 전략을 만드는데 관심이 있으며, 이와 다르게 Q-퀀트는 헤징과 복제를 통해 리스크 없는 플로우 비즈니스를 통해 돈을 벌고자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Q-퀀트 비즈니스가 리스크가 없는 것이 아님은 안비밀!)


# 사일로는 독

하지만 한국 퀀트 비즈니스의 문제는 이 두 부류의 퀀트들이 서로가 어떻게 사고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모델을 만들어나가고 또 비즈니스를 키워나가고 있는지 서로가 그닥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미국, 유럽의 여러 자산운용사들과 투자은행에 종사하고 있는 퀀트들과의 컨퍼런스 콜을 몇 번 하다 보면 이러한 차이는 훨씬 더 강하게 체감할 수 있다.


자기 자신만의 틀에 갇혀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시도를 하려 하지 않는 것은 전형적인 사일로 효과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일로 효과가 만연해있는 부동적 사고가 환경이 급변하는 시대의 변곡점에서는 스스로 멸종을 초래하기에 딱 좋다는 것이다.


P-퀀트는 파생상품과 변동성, 확률적 과정을, Q-퀀트는 포트폴리오와 트레이딩, 그리고 자금 관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로 인해 결국 P-퀀트는 롱온리 주식 팩터에만 사고가 갇혀 있고, Q-퀀트는 ELS의 늪에만 빠져 있다. 서로 사일로가 되어있으니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전략, 새로운 상품이 나올 리 만무하다. 지금까지야 어찌어찌 기존의 비즈니스가 유지되어 왔다지만 2020년대를 넘어 미래에도 그것이 과거와 같이 번창하리라는 외삽적 기대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이미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그리고 작년 시장의 모습을 통해 슬쩍 엿보았다.


# 브리꼴레르형 퀀트

결국 이처럼 파편화된 퀀트 비즈니스 상황 하에서 세상에 없던 새로운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는 해결책은 사일로라는 장벽을 파괴하는 것밖에는 없다. 즉, P-퀀트와 Q-퀀트라는 기존의 고리타분한 재단 방식에서 벗어나 이 둘을 통합하는 융합적 혹은 통섭적 퀀트인, 이른바 브리꼴레르형 퀀트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브리꼴레르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 것들을 자르고 이어붙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폴리매스형 손재주꾼 혹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창조해 내는 창의적인 인간을 의미하며, 이는 결국 찰리 멍거가 이야기하는 정신적 격자모델과도 맞닿아있다.



퀀트 비즈니스는 사실 야생과 상아탑,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다. 그렇기에 이는 야생과 상아탑, 그 둘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이 둘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다. 모델이라는 이데아를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두 발은 현실 세계라는 땅에 딛고 있어야 하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기존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이 결국 비극적인 재단을 낳게 될 뿐이다.


우리는 흑백이라는 이분법적인 서양식 논리에 익숙해서 모든 것을 딱 잘라 판단하고는 한다. 이는 원래 불확실한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어느 정도 기인한 것이리라. 하지만 현실 세계는 그렇게 사지선다마냥 정답이 딱 떨어지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은 경계의 모호성이 증폭되는 장(場)이다. 그렇기에 흑백보다는 음양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우리는 현실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새로운 접근법을 위한 힌트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브리꼴레르는 다분히 동양철학적이다.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등장은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현대가 보스턴 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참신함을 느꼈다. 로봇이 판소리에 맞춰 한바탕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은 인간 대 기계의 대결이라는 서양식 사고에 익숙했던 우리에게 일대 정신적 파란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융합이자 브리꼴레르가 아닐까. 퀀트는 마땅히 이래야만 한다.



작가의 이전글 역설계, 퀀트의 레벨을 높여주는 모방과 복제의 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