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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Jun 05. 2023

일상의 빈칸, 일생의 여유

# 여의도 디톡스

사람이 한 가지 분야에 매몰되게 되면 불균형 상태에 빠지게 되고 관점의 고착화가 이루어진다. 무협지에서 말하는 이른바 주화입마처럼 오직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관점에만 매몰되어 대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또 다채롭게 사유하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매일 금융시장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항상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숨이 턱턱 막히는 순간이 오는데 그때가 바로 잠시 금융으로부터의 도피, 즉 금융 디톡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나에게 있어 요새 이러한 금융 해독주스의 역할을 하는 녀석은 바로 브랜딩이나 마케팅에 대한 책들인 것 같다. 최근 들어 무언가 여유를 찾고 싶을 때면 서점의 마케팅 분야에서 발걸음을 서성이곤 하는데, 그 이유는 비단 내가 개인적으로 퍼스널 브랜딩에 관심이 많은 것도 있지만 이것보다는 오히려 브랜딩과 마케팅 분야가 금융과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위치해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금융, 특히 내가 하는 퀀트와 다르게 브랜딩의 영역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며 또한 판단보다는 해석과 감상이 더 크게 작용하는 어떻게 보면 예술적인 색채가 짙은 동네다. 그렇기에 금융과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특히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오브제에 대한 참신한 시각은 세상을 다소 유물론적으로만 바라보는 퀀트의 생각 속에 일대 파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 일상의 빈칸

이 책 『일상의 빈칸』 또한 일상 속에서의 여러 빈칸들을 대하며 기획과 마케팅, 브랜딩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와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특히나 이 책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여기서는 우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일상의 거리와 장소, 그리고 우리가 늘 사용하는 사물과 언어에 숨은 의미를 찾아 우리에게 내비친다. 


거리의 간판들, 맨홀 뚜껑, 캐릭터와 지하철, 각종 브랜드 및 미드저니를 활용한 AI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것들의 빈칸 속에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현듯 깨닫게 되는 숨겨진 기획 의도들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러한 빈칸들을 기꺼이 향유함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삶의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특히나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로 신선하다고 느꼈으며 심지어는 소유욕을 불러온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마이클 조던과 반가사유상을 결합한 힙스터 반가사유상이었다. 이렇게 기획력은 무소유의 테마마저 소유하고자 하게끔 만드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


만약 삶에서의 한 템포 쉼이 필요하다면 이러한 책들로 시선을 잠시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 단순히 머리를 식히기 위해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끼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텍스트보다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기에 설렁설렁 패션 잡지를 넘기는 것처럼 느슨한 마음으로 기획자의 아이디어를 곱씹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퍼스널 브랜딩이나 스몰 비즈니스를 꿈꾸고 있다면 더욱이 공감되는 생각들이 이 책에는 가득 담겨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교 시절 경영학 마케팅원론 수업도 좀 열심히 들어놓을 걸 하는 생각도 든다.)


# 여유가 크리에이티브함을 창조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크리에이티브함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닌 원래 있던 것을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거나 혹은 새롭게 재배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이를 아장스망(Agencement)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 아장스망은 바로 배치를 뜻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결국 모든 창의적인 것들은 과거에 이미 존재하던 것을 새로운 시선에서 바라보고 또 그것을 기존의 영역에서 이질적인 영역으로 접목하려는 시도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창의적이란 말은 다소 어렵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일상적인 루틴에 치여 살아가면서는 이러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고, 이미 존재하는 것을 새롭게 재배치하려는 창의성을 발화시키기 위해서는 삶의 빈칸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데, 이 여유는 바쁜 현대인들의 삶과 사실은 거리가 좀 있기 때문이다.


산수화의 여유는 여백에서 나오며, 바둑판에서 훈수를 두는 사람이 더 묘수를 잘 찾아내는 이유는 승부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여유가 있어서이다. 현재 삶에서 이렇다 할 묘수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면 내가 하고 있는 것에서 잠깐 멀어지는 것도 방법이지 않을까. 보다 느린 템포로 주어진 일상을 너윗너윗 관조하다 보면 불현듯 이전까지 생각지 못했던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빈칸이 있다는 말은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뜻이다. 이제 곧 있으면 완연한 여름이 다가온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무더운 여름을 피하기 위해 피서를 떠날 텐데, 이 책 『일상의 빈칸』은 바로 이 무더운 여름날 한적한 바닷가 근처 해먹에 누워 파도 소리를 들으며 읽을 수 있는, 이로 말미암아 본인만의 사유 공간을 만들어보도록 제안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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