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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학의 역사 그리고 시장미시구조 #3.

by 퀀트대디

# 모델 독단주의에 대한 반성

서브 프라임 위기 이후, 퀀트들은 많은 비난에 시달려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든 모델이라는 것이 결국 실존하고 있는 전체 위험의 단지 일부분만을 포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만든 모델 자체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의 과오는 모델의 적용 가능성이 현실에서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무시했다는 것, 그리고 충분한 위기의식 없이 그저 유명한 학자가 썼거나 유명 학술지에 게재되었다고 한다면 비판적 의식 없이 그것을 남용했다는 것에 있다. 금융권의 탐욕과 경쟁의식에 기반한 FOMO 또한 이러한 무지몽매함을 눈감아주는데 일조하긴 했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그때 당시의 상황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자성적 분위기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퀀트 생태계는 그러한 일련의 사태 이후 극심한 격변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으며, 이제는 이전 방식대로 모델을 만들거나 혹은 기존 모델을 조금씩 변형하는 등의 연구 행태는 지속되지 못했다. 퀀트들에게 새로운 종류의 연구 분야가 절실하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 이상에서 현실로, 패러다임의 전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퀀트들의 관심사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빠르게 전환되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담보 이슈와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을 모델링하는 일이었다. 서브 프라임 사태는 아무리 큰 대형 금융기관이어도 시장에 강한 충격이 강해지면 한순간에 소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과거 신용 파생상품 영역에서 프라이싱 모델을 만들던 수많은 퀀트들은 이쪽으로 커리어의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는 금융공학과 금융경제학 분야의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네트워크 위험과 전염성 모델링, 그리고 중앙청산소(CCP, Central Counterparty)의 역할 등을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모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금융공학이 보다 밀접하게 현실 세계를 관찰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2000년대 들어 금융공학의 영역에서 새롭게 부상하기 시작한 또 다른 연구 분야는 바로 시장 미시구조(Market Microstructure)이다. 이전에도 잠깐 다루었다시피 시장 미시구조는 사실 경제학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전자 거래가 도입되고 알고리즘에 의한 고빈도매매(HFT, High-Frequency Trading)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는 자연스럽게 금융공학적 성질을 지니게 되었으며, 알고리즘 마켓 메이킹(Algorithmic Market Making) 비즈니스를 영위하기 위해 시장 미시구조를 모델링할 수 있는 퀀트들의 수요가 증가하게 되었다.


현재 금융공학에서 이쪽 동네는 무시할 수 없는 굉장히 큰 규모가 되었고, 경제물리학(Econophysics)로부터 영감을 받은 많은 경제학자, 통계학자, 공학자들이 확률적 최적 제어 이론(Stochastic Optimal Control Theory)을 기반으로 시장 미시구조 영역을 개척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나 2000년대 중반부터 글로벌 금융 시장에 적용되기 시작한 새로운 규제들인 Reg NMS, MiFID, 바젤 III 등은 시장의 다이나믹스를 변화시켰고, 이에 따라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퀀트들은 그들의 모델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나갔다.


이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금융공학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금융공학이 주로 다루던 다소 고전적인 주제들인 이른바 파생상품의 이론적 가격 측정, 포트폴리오 관리, 리스크 관리 등 이외에도 새로운 하위 분야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고, 새로운 세대의 금융공학 연구자들은 현실의 모습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와 시장 충격 모델링, 거래상대방 위험, 고빈도 매매, 최적 매매 체결 등과 같은 이슈들로 그들의 서식지를 옮겨가기 시작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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