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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Sep 01. 2023

다시 퀀트를 시작한다면, 퀀트의 제로 투 원

# 퀀트의 코어 근육

나는 정식으로 퀀트나 금융공학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처음부터 착실하게 받아온, 마치 정실 부인의 첫째 아들 같은 소위 근본 있는 정파 퀀트는 아니다. 그냥 내 페이스대로 내 실력대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나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섬주섬 배워가며 커리어를 쌓아온 생존 우선의 사파 퀀트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부터 금융공학 공부를 했을 때도 철저한 커리큘럼 위주의 순차적 학습을 하기보다는 일단은 실무를 커버하기 위해 필요한 부분들을 우선적으로 공부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여유 있는 상태로 금융공학을 배운 것이 아니라 직장을 다니면서 실제 일을 하기 위한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내가 퀀트나 금융공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또한 금융권에 들어오고 난 이후의 일이다.


벌써 7,8년 전의 일인데, 금융공학을 처음 공부했을 당시만 해도 나는 왜 금융공학 교과서들의 맨 처음에 항상 기괴한 표기법으로 점철된 각종 수학적 정의들부터 나오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금융에서는 시장을 잘 이해하고 돈만 잘 벌면 장땡 아닌가? 뭐 하러 이렇게 어렵고 복잡한 수학을 배워야 하는 거지? 


하지만 퀀트 트레이딩이라는 업을 경험하면서, 또 본의 아니게 퀀트라고 불리는 굉장히 방대한 비즈니스 영역의 전반을 조금씩이나마 찍먹해보면서 나름대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수학이야말로 퀀트의 코어 근육이다'라는 점이다. 코어 근육은 바깥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코어, 즉 그야말로 핵심이기 때문에 힘을 써야 할 때 패시브 스킬 마냥 자동적으로 발동하여 기능을 도와주는 근육이다. 돈을 벌기 위한 퀀트의 세 가지 메인 비즈니스는 팩터 포트폴리오, 구조화 상품, 마켓 메이킹 이 세 가지 분야인데 놀라운 점은 어떤 분야를 막론하고 그것에 조금 더 깊게 들어가고자 한다면 여지없이 금융공학 교과서의 수문장인 수학이 항상 튀어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퀀트의 어떤 영역에 몸담고 있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것이 바로 금융공학 프로그램의 가장 처음이 확률과정을 정의하기 위한 수학적 전개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다.


# 퀀트의 제로 투 원

따라서 만약 다시 퀀트를 시작한다면 프로그래밍도 중요하지만 나는 가장 우선적으로 기초수학에 대한 공부를 다시 할 것 같다. 아무리 프로그래밍을 잘한다고 해도 이론적 기초를 스스로 설계할 능력이 없다면 그 사람은 평생 타인의 외주를 받아야만 하는 하청업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퀀트를 꿈꾸고 있는 대학생이라면 학교에 있을 때 학점에 목을 매기보다는 퀀트에 필요한 수학 과목들을 수강하여 모델링을 위한 기초 체력을 길러놓기를 권한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나 또한 문과 출신이라는 나름대로의 결핍과 아쉬움, 부족함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나의 이러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지언정 목표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합론과 측도론, 해석학, 확률론 등에 나오는 개념들을 서서히 알아가면서 내가 느낀 점은 그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퀀트 컨텐츠를 다룰 때와 그렇지 못할 때 그 인지 범주의 차이가 꽤 크다는 점이다. 물론 정통 수학과 친구들처럼 현실이 아닌 너무 수학에만 매몰되어 비즈니스 세계를 거들떠보려고 하지 않는 태도 또한 지양해야 하나 수학으로 금융 현상을 재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사고의 틀을 구축해놓는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매우 중요하다.


올해는 시간이 될 때마다 이전까지 얕게만 이해하고 있었던 수학적 개념들을 다시금 정리해 보고 있는데, 나는 이 과정에서 이전까지는 어떤 감흥도 없던 금융공학 내용들이 완전히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이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전까지는 개념의 한계로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것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물론 현실 세계의 취업이 당장은 급선무기에 자칫 선비놀음처럼 보이는 수학 공부가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당장 급하지는 않되 그럼에도 중요한 일을 자투리 시간에 조금씩 챙기는 것이 결국엔 점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법이다.


# 퀀트의 수학 공부

사실 그런데 고등학교 이후의 수학은 오히려 문과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제는 그 누구도 당신에게 수학 문제를 주어진 시간 내에 빠르고 정확하게 풀 것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의 수학은 어떤 하나의 수식을 해석하고 그 맥락과 내용을 받아들이는 어쩌면 오히려 다분히 문과적인 성질의 것이다. 금융공학을 위한 수학 또한 마찬가지다. 금융공학에서는 수학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수식이 표현하고자 하는 시장 현상이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동적으로 변화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학을 수학으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닌 실제 세계에 대한 묘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응용 수학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다.


수학이 처음에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수학이 기호학이기 때문이며, 이 기호들의 집합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직 내가 해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사람이 갑자기 어느 순간 맨하탄 한복판에 홀로 떨어진 격이다. 수학이라는 암호로 잠긴 그 수식의 의미를 아직은 해독할 수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각종 기호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카오스로만 보인다. 하지만 귀가 트이면 외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수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우리가 카오스라고 생각했던 그것은 코스모스가 되며, 이후에 우리는 그것을 말로 풀어 다른 사람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된다. 


퀀트의 실무는 수학과 텍스트라는 입력을 받아 그것을 개념화하고 일을 처리하기 위한 추상적 아키텍처를 짠 다음에 그것을 실제 화면 상에 코드로 구현하는 출력의 과정을 거친다. 따라서 퀀트의 수학 공부는 항상 출력을 염두에 두고 입력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해, 학창 시절 수학을 공부하는 것처럼 수학을 그저 수학으로만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그 수학적 내용을 금융시장에 매핑시키는 연습이 필요하며, 나아가 어떤 수식을 나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뒤 그것을 외부로 표출하는 연습을 지속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외부로의 표출은 고객에게 어떻게 이 개념을 설명할 것인가 혹은 지면에 실린 수식을 어떻게 사용가능한 파이썬 코드로 변환할 수 있을까 등을 의미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어떤 적분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고 해보자. 고등학교 때는 여러 수학적 기교를 활용해 연필로 끄적끄적 문제를 풀었겠지만, 퀀트 실무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주어지면 바로 그것을 코드로 짠 뒤 실행하여 답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적분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어떻게 코드로 변환할 것인가? 그리고 또 이 적분이라는 개념은 금융시장의 어떠한 현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접근하는 것이 바로 퀀트의 수학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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