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와 인식의 차이,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
진화론적으로 봤을 때 현대의 인류는 본능적으로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만약 원시시대에 사주경계를 서는 습관이 없었다면 순식간에 사자밥이 되어 자손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그들의 생존을 도모해왔기에 이러한 습관은 자연스럽게 인류 전반에 걸쳐 만연해진 본능이 되었고, 이러한 본능은 몇백만 년에 걸쳐 그 유전자를 대대손손 후손에게 넘겨주었다.
이러한 우리의 본능은 금융시장에도 고스란히 반영된다. 대표적인 것이 실제와 인식의 괴리라고 볼 수 있는 실현 변동성과 내재 변동성의 괴리이며, 우리는 이를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VRP, Volatility Risk Premium)이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옵션 시장에서 이러한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은 장기적으로 양의 값을 가진다. 멀리 갈 것 없이 당장 코스피 시장만 살펴보아도 다음과 같이 코스피 시장의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은 평균적으로 양의 값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정상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의 걱정 수준은 실제보다 과도하다는 것이다. 또한 나아가 이는 결국 일반적으로 옵션이라는 상품이 구조적으로 비싼 값에 거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왜 옵션이 구조적으로 비싼 영역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 옵션을 기꺼이 구매하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보험에 드는 것과 같은 이유다. 평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꼬박꼬박 내는 보험료가 아까울 수 있으나, 뭔가 사고가 터졌을 때는 보험만큼 든든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옵션을 산다는 것은 보험료를 내는 것처럼 평소에는 꾸준히 프리미엄을 지급한다는 뜻이다. 주식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입장에서 거의 확실하게 휴지 조각이 될게 뻔한 풋 옵션을 매수하는 이유는 주식 시장의 테일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함이다.
내재 변동성과 실현 변동성 간의 차이만큼을 수익으로 치환시키기 위한 변동성 캐리(Volatility Carry) 전략은 이와 정반대의 포지션을 택하는 전략이다. 즉, 옵션을 매도하여 꼬박꼬박 캐리 수익을 받고자 하는 전략인 것이다. 옵션을 매수하는 자에게 선택권을 쥐여주며 그들의 걱정을 덜어주었기에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전략이다. 아래 그림은 몇 가지 가격도(Moneyness)에 따른 변동성 캐리 전략의 백테스팅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한눈에 봐도 장단점이 명확히 보인다. 장점은 당연히 평소에 따박따박 이자처럼 캐리 수익이 나온다는 점이다. 주식쟁이처럼 힘들게 시장의 방향성을 맞출 필요도 없다. 세타(Theta), 즉 시간 가치가 내 편이므로 만약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지나간다면 그거야말로 '오! 해피데이~'다. 그렇다면 단점은? 시장에 뭔가 일이 터지면 그야말로 나락으로 갈 수 있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변동성 캐리 전략은 감마를 내주고 세타를 취하는 행위이므로 시장의 변동성이 폭발하면 내 계좌도 같이 폭발할 수가 있다. '집에서 절대 따라 하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자연스레 생각나는 시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퀀트씬에서는 이 전략을 '기찻길에서 동전 줍기 전략(Pennies and the Steamroller)'이라고 부른다. 기찻길에서 동전을 주우며 짤짤이를 하는 것은 평소엔 꽤 쏠쏠하고 재미진 전략이지만, 만약 기차가 오게 되면 한 방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변동성 위험 프리미엄을 수취하는 일은 아무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매우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전략이지만 테일 리스크가 발생하게 되면 그렇게 짤짤이로 어렵사리 모은 돈을 한 번에 반납하게 될 수도 있는 굉장히 위험한 전략이다.
# 변동성의 성질: 군집 효과와 범람 효과
그렇다면 이처럼 비대칭이 심한 변동성 캐리 전략의 위험을 경감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바로 변동성이 가진 그 고유한 성질을 활용하는 것이다. 변동성이라는 것은 여러 성질을 가지고 있으나 그중에서도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것은 크게 두 가지, 바로 군집 효과와 범람 효과다.
우선, 군집 효과(Clustering)는 말 그대로 변동성이라는 것이 비슷한 애들끼리 뭉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변동성이 낮은 구간에서는 지속적으로 낮은 변동성이 관찰되며, 반대로 변동성이 높은 구간에서는 변동성이 계속해서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결국 이러한 변동성의 군집 효과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변동성이 높아지는 구간이 오면 변동성 캐리를 수취하는 작업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변동성이 실제로 커지는 상황이 오면 시장의 내재 변동성보다 실제 실현 변동성이 커지게 되고 이는 변동성 캐리 전략에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여기서 활용한 또 다른 변동성의 성질은 바로 범람 효과(Spillover)다. 기본적으로 글로벌 자산 시장은 서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즉, 자산 시장은 사일로되어 있는 것이 아닌 자금의 흐름에 따라 그 여파가 다른 자산 시장까지 쉽게 전이된다. 주식쟁이가 주식만 보거나 채권쟁이가 채권만 보아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러한 현상이 금융시장의 최일선인 변동성 시장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어떤 시장에서 발생한 이벤트는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이후 다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따라서 변동성 상승의 범람 효과가 발생한다. 역사적 시계열을 관찰하다 보면 여러 자산 시장의 내재 변동성이 동시다발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는 구간이 종종 나타나는데 그럴 때가 바로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 순간이다.
# 변동성으로 다스리는 변동성 캐리
변동성 시장의 군집 효과와 범람 효과를 캐치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내재 변동성을 활용한 마켓 타이밍 전략'에서 다룬 마켓 센티멘트 지표를 사용하는 것이다. 이 마켓 센티멘트 지표는 크로스 에셋 시장의 내재 변동성 수준이 현재 과거 대비 어느 수준인지를 말해준다. 만약 이 지표가 상승 중이라면 전반적인 글로벌 내재 변동성 수치는 감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하며, 반대로 이 값이 하락한다면 변동성이 상승하는, 즉 조기 경보 사이렌을 울리고 기찻길에서 빠져나올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롱온리 베타 전략에 적용했을 때와 비슷한 로직을 여기서도 적용한다. 1년짜리 센티멘트 지표를 가지고 만약 이 지표가 0.5 이상이라면 낮은 변동성 국면이라 판단해 변동성 캐리 전략을 가동하고, 만약 반대로 0.5 이하로 내려간다면 이제는 변동성이 높아지는 구간이므로 슬슬 판을 접고 어디 파전에 막걸리나 한잔하러 떠나는 것이다. 저 멀리서 뿌우~뿌우~ 기차의 경적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데 굳이 목숨을 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위험 경보가 떴을 때는 포지션 관리만 잘해도 무리 없이 생존을 도모할 수 있다. 전략의 샤프 비율도 1.1 정도로 우아하게 유지하면서 말이다.
논어 태백(泰伯) 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위방불입 난방불거(危邦不入 亂邦不居)
'위태롭고 위험한 곳이면 들어가지 말고, 혼란한 판에는 머물지 말고 발을 빼라'는 의미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하후돈이 박망파에서 제갈량의 화공에 당한 것처럼 일순간에 큰 낭패를 당할 수 있다. 하후돈이 화계에 걸린 것은 적의 매복이 도사리고 있는 환경을 인지하지 못한 무지몽매함에 있다. 변동성 캐리 전략 또한 마찬가지다. 전략의 이코노믹스가 과연 그 시점에 적절한가는 환경, 즉 국면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가 좌우한다. 또한 아무런 컨틴전시 플랜도 존재하지 않은 채 섣불리 덤벼들었다가는 하루아침에 황천길로 갈 수 있는 곳이 바로 변동성 시장이다. 변동성 전략을 사용하기에 앞서 변동성의 본질적인 다이나믹스를 이해하고 매크로 국면을 파악하듯 변동성의 국면을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