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균형이라는 이름의 신기루
과연 무엇이 가격을 결정하는가? 표준적인 경제학 패러다임에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의 교차점이다. 이는 경제학과 1학년 학생들이 가장 첫 시간에 배우는 매우 당연한 사실이다.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의 교차점인 균형(Equilibrium) 상태가 되면 그에 따른 균형 가격과 균형 거래량이 결정된다.
하지만 문제는 정확히 '어떤 방식'에 의해 이 균형이라는 상태가 만들어질 수 있는가이다. 경제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욕구를 조절하여 가격을 형성하고 거래가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놀랍게도 고전 경제학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며, 바로 이러한 의문점에서부터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출발한다.
가격 형성의 메커니즘에 관한 고전 경제학의 접근법은 바로 가격의 무의성을 주장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다시 말해 시장 청산 가격(Market-Clearing Price)은 그저 '자연스럽게' 균형의 발생에 따라 자동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이었으며, 따라서 시장이 과연 '어떻게' 이 가격을 만들어내는가는 사실 여기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접근법에는 거래 메커니즘이 결과론적 균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가정, 즉 어떤 거래 메커니즘을 사용하든 동일한 균형이 발생할 것이라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그저 '합리적 기대 가설(Rational Expectation Hypothesis)'에 의존해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당연한 거 아니야?'라는 논리로 모든 과정을 전부 건너뛴 불가지론적 귀결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기존의 경제학에서는 균형 상태 밖의 시장 행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고전 경제학자들이 실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 경제의 작동 원리를 배우고 싶어 경제학과에 들어갔으나 이것이 충족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경제학과의 학생들이라면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알 것이다. 사람들은 모두 합리적인 주체이기 때문에 균형 상태가 알잘딱깔센 달성된다고 하는 이러한 비현실적 가정은 특히나 정보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현실 세계에서는 절대로 성립할 수 없는 명제였다.
# 왈라시안 경매
가격 결정 메커니즘에 대한 또 다른 접근 방식은 ‘왈라시안 경매(Walrasian auction)’였다. 여러 세대에 걸쳐 경제학자들은 트레이더의 수급을 종합해 시장 청산 가격을 찾는 왈라시안 경매의 일반론적 모델을 사용해 가격 형성 과정을 묘사했다.
이 모형의 메커니즘은 각 트레이더가 자신의 수요 스케줄을 경매인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경매인이 잠재적 거래 가격을 발표하면 트레이더는 해당 가격에서 최적의 수요를 결정한다. 새로운 호가가 제시되면 트레이더는 다시 주문을 수정하고 추가 수정이 없을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된다. 각 트레이더가 최적 호가로 최적의 주문을 제출하고 해당 호가에서 공급량과 수요량이 같아지게 되면 마침내 호가의 균형이 성립된다.
이러한 묘사는 시장 가격을 일련의 예비적 경매로부터 도출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균형을 벗어난 거래는 허용되지 않으며 인센티브 문제도 고려되지 않는다. 경매인은 초과 수요가 없어질 때까지 매도자로부터 매수자에게 물량을 재배치하는 역할만을 수행한다. 또한 이 경매 활동은 비용이 들지 않으므로 교환 과정에서 마찰(Friction)이 존재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균형 가격은 매수자와 매도자가 비용 없이 자산을 교환하는 보이지 않는 트레이딩 게임의 자연스러운 결과가 된다.
왈라시안 경매는 가격 결정 과정을 간단하고 우아하게 상상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모델은 과연 가격이 형성되는 실제 과정을 잘 포착하고 있을까? 여기서 가정한 것처럼 가격은 자연스럽게 진화하는 것일까, 아니면 가격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즉각적인 답을 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수동적인 역할만을 하는 경매인과는 다르게 실제 시장에는 그 역할을 수행하나 동시에 다른 니즈를 갖고 있는 다른 종류 시장 참여자 또한 존재한다. 그렇기에 어쩌면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트레이더의 행태에 관한 이슈일 수도 있다. 결국 거래라는 것이 단순히 수요와 공급을 균형 있게 맞추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면, 거래 메커니즘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왈라시안 경매는 이러한 의미를 밝혀내기에 충분한 모델은 결코 아니었다.
# 거래의 즉시성에 가격표를 붙이다
시간이 흘러 경제학자였던 해럴드 뎀세츠(Harold Demsetz)는 1968년에 『거래의 비용(The Cost of Transacting)』이라는 논문을 통해 처음으로 증권 시장에서의 가격 결정을 연구했으며, 또한 수요와 공급의 시간 차원이라는 것이 어떻게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했다. 이러한 그의 분석은 시장 미시구조에 대한 정형적 연구를 위한 토대를 처음으로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아이디어는 기존의 균형 분석 그리고 왈라시안 경매가 가진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 다소 새로운 접근법이었다.
그의 연구는 거래에 비용이 수반될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관찰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비용은 수수료와 같이 명시적인 비용일 수도 있고, 거래의 즉각적인 실행과 관련된 암묵적 비용일 수도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그는 ‘즉시성에 대한 대가(price for immediacy)’라는 암묵적 비용에 주목했는데 왜냐하면 왈라시안 경매와는 다르게 트레이딩은 시간적 차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꽤 오랜 시간이 지난다면 매도자 수와 매수자 수가 장기적으로는 같아질 수 있겠으나, 어떤 특정 시점에는 그러한 결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즉시 매도하려는 매도자의 수가 즉시 매수하려는 매수자의 수와 같지 않으면 거래의 불균형으로 인해 어느 특정 시점에서 시장 청산 가격을 찾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그는 '즉시성(Immediacy)'이라는 서비스에 비용을 지불함으로써 이러한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구체적으로 어느 시점에서든 시장에는 수요, 공급에 대한 두 가지 원천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한쪽은 매우 급한(active) 수요(Da)와 공급(Sa)이고 다른 한쪽은 그렇게 급하지 않은(inactive) 수요(Di)와 공급(Si)이다. 지금 즉시 매수하려는 측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는 경우, 일부 매수자는 판매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혹은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여 대기 중인 매도자가 지금 거래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매도를 원하는 매도 측에서 불균형이 존재하는 경우, 더 많은 매수자가 지금 당장 거래를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더 낮은 가격에 입찰을 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균형 가격을 낳게 된다.
가격에 즉시성 비용이 포함될 수 있다는 생각은 왈라시안 프레임워크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가격 과정의 한 측면을 포착한 것이다. 이제는 거래 과정의 두 가지 시간대를 반영하는 두 개의 공급 곡선과 두 개의 수요 곡선이 존재한다. 이러한 결과는 균형 가격이라는 개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가격은 거래 의향이 있냐 없냐가 아닌 매수 의향이 있냐 없냐 그리고 매도 의향이 있냐 없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가 보는 호가창에서 일반적으로 매수 호가와 매도 호가 간의 갭이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시장 참여자들이 느끼는 시간적 차원의 인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 시장 미시구조 이론의 태동과 발전
뎀세츠의 연구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시장 구조(Market Structure) 자체가 거래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기 때문이다. 즉각적 거래에 필요한 가격 양보의 크기, 즉 스프레드(Spread)는 트레이더의 수나 거래량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그는 뉴욕 증권 거래소에서의 스프레드 크기와 거래량 간의 관계를 실증적으로 조사했으며, 이를 기반으로 그는 시장 구조를 분석해야만 비로소 시장의 행태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격 결정에 사용되는 실제 거래 메커니즘이 이미 확정된 결과로 이어지는 단순한 통로의 역할이 아닌 '균형 가격을 변화시키는 입력 변수 그 자체'라면, 거래 메커니즘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또한 가격 결정뿐만이 아니라 트레이더의 주문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거래 메커니즘을 고려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뎀세츠의 연구 이후 전개된 시장 미시구조 이론의 본질적인 목적은 거래에 의한 가격 형성 과정의 메커니즘을 밝혀내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시장 미시구조 모델들은 이러한 거래 과정을 어떤 매칭 문제의 일종으로 바라본다. 이 문제의 중앙에서 시장 조성자(Market Maker)라는 플레이어는 가격이라는 수단을 사용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달성하고자 한다. 결국 시장 미시구조 이론은 시장의 구조가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시장 참여자들은 어떠한 행태를 가지고 있으며, 주어진 거래 규칙 하에서 그들은 결국 어떻게 상호작용하여 거래라는 것을 발생시키는지를 연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