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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Oct 16. 2023

시장미시구조와 분산투자 큐브

# 시장 환경의 변화, 유동성, 그리고 퀀트 멜트다운

시장미시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오직 시장과 연속적으로 상호작용해야만 하는 두 가지 유형의 실무자들, 즉 매매체결 트레이더(Execution Trader)와 시장 조성자(Market Maker)에게만 중요한 일이었다. 다시 말해, 시장 흐름을 보다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들에게 이전까지 이 영역은 그리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경쟁이 격화되고 외부 시장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시장미시구조 이론은 이제 더 이상 별종들만의 지식으로만 치부되지 않는다. 특히나 IT 기술의 발전, 포스트 코로나 패러다임, 저금리 기조의 종말 등 현재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여러 이슈들은 공통적으로 유동성(Liquidity)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인데, 공교롭게도 이 유동성이라는 개념을 그 누구보다 깊게 분석하고 들여다보는 분야가 바로 시장미시구조 이론이다.


지구의 역사가 언제나 그랬듯 환경의 변화는 새로운 적응과 변이를 요구하기 마련이다. 2020년대의 시장은 과거 20년 동안의 시장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며, 이러한 변화가 요구하는 한 가지는 바로 과거보다 더 빠른 반응 속도다. 이렇게 빠른 반응 속도가 중요한 이유는 앞서 말한 유동성 때문이다. 유동성은 모든 개별적인 전략들 보다 훨씬 앞서 시장에 발을 담고 있는 모두에게 광역적인 효과를 미친다. 어떤 스타일의 퀀트건 간에 유동성 부재의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다. 2007년 8월 그리고 그 이후로도 종종 발생했던 퀀트 멜트다운(Quant Meltdown) 이벤트를 기억하는가? 퀀트 펀드들의 순간적이면서도 동시다발적인 대량 청산, 그리고 그에 따른 유동성의 소멸과 시스템 리스크(Systemic Risk)의 발현은 퀀트의 종(種)을 가리지 않는다.



# 시장미시구조라는 새로운 팩터

시장미시구조 이론의 본질은 쉽게 말해 유동성의 상태와 출처, 그리고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금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시장미시구조 이론이 왜 앞으로 셀사이드 뿐만이 아닌 바이사이드 퀀트 업계에서도 더 중요하게 다루어질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왜 장중 다이나믹스를 고려하는 작업이 기존의 팩터 포트폴리오 체계로 편입되어야 하는가? 그냥 단순하게 장기적 목표를 위해서 장중의 부침을 견디면 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의사결정은 상당한 비용을 수반한다. 왜냐하면 시장미시구조적 현상은 기대하는 것보다 그 고착성(Stickiness)이 심하기에 며칠 혹은 몇 주까지도 계속 동일한 현상이 지속될 수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 성과에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결국 포트폴리오의 성과 또한 수익에서 비용을 차감한 것이다. 결국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익을 올리는 것만큼 비용을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하며, 위험 조정 관점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서는 수익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동성을 낮추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시장미시구조에 기반한 유동성 분석은 포트폴리오의 구축 비용과 그 변동성을 줄일 수 있는 도구이며, 그렇기에 퀀트 매니저는 이를 통해 포트폴리오 성과에 대한 추가적인 최적화를 꾀할 수 있다.


가령 만약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발발의 잠재성이 높은 주식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해당 종목에 대한 매매를 미룰 수 있다면 불필요한 손절을 피할 수 있으며, 또한 공격적 HFT의 참여율이 높은 종목들을 식별할 수 있다면 과도한 슬리피지 비용의 발생을 줄일 수도 있다. 일례로, AbleMarkets 같은 업체들은 이미 실시간 데이터 상에서 공격적인 HFT를 식별하고 이를 통해 매매 체결의 속도를 높여야 하는지 아니면 늦춰야 하는지를 실시간으로 제시한다. 과거엔 이러한 기술을 상상할 수도 없었으나 이제는 이런 것들이 실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시장미시구조가 이제 퀀트의 영역에서 엄연히 새로운 팩터가 된 것이다.



# 분산투자 큐브의 완성

또한 분산투자의 관점에서 시장미시구조가 갖는 의미는 더 특별하다. 이전에 제시했던 '크로스 에셋 + 멀티 팩터' 프레임워크가 단순한 2차원의 평면이었다면, 시장미시구조를 고려한 주기(Frequency)라는 새로운 축의 도입은 분산투자 큐브(Diversification Cube)라는 3차원 프레임워크를 완성시킨다. 


화살표의 방향은 접근성의 어려움 및 복잡도 증가의 방향이다. 자산 축이 선형 자산, 장내 상품, 전통적 자산으로부터 비선형 자산, 장외 상품, 비전통적 자산으로 뻗어나가고, 팩터 축이 단순하고 포화된 팩터에서 복잡하고 덜 포화된 팩터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주기 축 또한 월간, 주간 혹은 일간에서 장중으로 뻗어나간다. 퀀트라면 잘 알고 있듯이 팩터 포트폴리오 운용의 묘는 바로 폭(Breadth)에 있다. 분산투자 큐브의 부피가 커진다는 것은 바로 이 폭이 확장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분산투자 큐브

다소 느렸던 전통적인 트레이딩 혹은 리밸런싱의 빈도에서 벗어나 보다 기민하고 민첩한 장중 트레이딩 빈도로 들어오게 되면 이전까지는 관찰할 수 없었던 새로운 패턴과 팩터를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분산투자 큐브로의 사고 체계 확장은 시장의 간헐적인 테마와 이슈에 대한 포트폴리오의 민감도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팩터 포트폴리오의 관점에서 시장미시구조를 팩터 공간의 새로운 축으로 도입한다면 포트폴리오의 안정성과 성과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시장미시구조를 새로운 분석 도구로써 도입하고 호가창과 친구가 되는 것은 퀀트에게 이제 더 이상 선택사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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