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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Sep 02. 2023

유동성 수급과 변동성

# 유동성이란?

각각 체결(Trades)과 호가(Quotes)라고도 불리는 시장가 주문(Market Order)과 지정가 주문(Limit Order)은 거래 기회(Trade Opportunity)라는 관점에서 볼 때 서로 상반된 성격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다. 다시 말해, 전자가 시장에 이미 놓여있는 호가들을 잡아먹으면서 잠재적 거래 기회를 빼앗아가는 반면, 후자는 시장에 호가를 공급하여 이를 늘린다. 이 때문에 유동성은 일반적으로 현재 이용 가능한 거래 기회의 집합이라고 추상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시장가 주문을 제출하는 플레이어는 유동성을 필요로 하는, 즉 유동성 수요자(Liquidity Taker)다. 가격의 상승 혹은 하락을 예상하며 증권을 사고파는 뮤추얼 펀드나 헤지 펀드 혹은 일반 투자자들이 바로 이러한 유동성 수요자에 속한다. 반대로 지정자 주문을 제출하는 플레이어를 우리는 유동성 공급자(Liquidity Provider)라고 부른다. 시장 조성자(Market Maker)라고 불리는 주체들이 바로 이러한 유동성 공급자다.


시장 구조의 복잡도가 증가하면서 유동성의 정의가 다소 모호해지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이 유동성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가시 유동성(Visible Liquidity)다. 이 가시 유동성은 레벨 1 호가를 모니터링하는 모든 사람이 관찰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는 유동성이다. 다시 말해, 이 유동성은 중간 가격(Mid Price) 가까이에서 큰 규모로 거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또한 은닉 유동성(Hidden Liquidity)이라는 개념도 존재하는데, 이 유동성은 레벨 1 호가의 너머에 존재하는 호가 혹은 거래소를 거치지 않고 시장 조성자가 상계하는 거래 등과 같이 시장 참여자가 쉽게 관찰할 수 없는 유동성을 의미한다.



# 유동성 수요와 공급

위에서 논의한 개념들을 바탕으로 우리는 유동성 수요와 공급을 어느 정도 계량화시킬 수 있다. 우선, 유동성 수요는 시장가 주문으로 인한 전체 거래 대금 그 자체로 정의할 수 있다. 결국 시장에서 거래가 발생했다는 뜻은 유동성 수요자가 시장가 주문으로 최우선 호가를 쳤다는 의미가 되므로, 체결 데이터에 찍힌 체결 가격과 거래량의 곱을 유동성 수요라고 볼 수 있다. 즉, 여기서 유동성 수요를 계산한 공식은 다음과 같이 쓸 수 있다.

그렇다면 유동성 공급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유동성 수요의 개념과 비슷하게 유동성 공급 또한 지정자 주문으로 인한 호가 잔량의 명목 금액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매수 측과 매도 측에 쌓여있는 호가 가격과 잔량을 곱하는 것이다. 유동성 공급을 계산하는 식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는 전체 호가창 중 가시 유동성만을 기준으로 유동성 공급을 계산한다. (물론 보다 정확한 계산을 위해서는 전체 호가창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동성 공급을 계산하는 것이 맞지만, 시장가 주문의 체결량 분포를 지수 분포로 근사할 수 있다는 실증적 사실은 이러한 계산법으로 의미 있는 유동성 공급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에 어느 정도 정당성을 부여한다.)

결국 이렇게 유동성 수요와 공급을 계산하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여기서 유동성 수요와 공급은 전체 틱데이터를 가지고 계산한 후 일별 주기로 리샘플링했으며, 그래프는 S&P 500 선물에 대한 유동성 수요와 공급을 각각 20일 이동평균시킨 결과다. 유동성 수요와 공급은 시장 환경에 따른 시간 가변적 성질을 지니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유동성과 변동성

위에서 정의한 유동성 수요와 유동성 공급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우리는 또다시 하나의 지표를 만들 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유동성 수급 비율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동성 수급 비율(Liquidity Supply-to-Demand)은 간단히 앞에서 말한 유동성 공급을 유동성 수요로 나눈 값이며, 따라서 이는 현재 유동성 수요 대비 유동성 공급이 얼마나 더 많이 이뤄지고 있는가를 뜻한다. 만약 이 유동성 수급 비율이 상승한다면 현재 시장에는 수요보다 공급이 상대적으로 더 많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이 비율이 하락한다면 시장 조성자들이 발을 슬그머니 빼고 있고 동시에 유동성 수요자들은 더 큰 호가 스프레드를 지불하며 유동성을 수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증적으로도 유동성 수급 비율이 실제 변동성에 미치는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아래의 그래프는 S&P 500 선물에 대한 유동성 수급 비율과 그 실현 변동성의 역수를 함께 보여주고 있는데, 결국 이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유동성 수급 비율이 상승하면 변동성은 줄어들고, 반대로 이 비율이 하락하면 변동성은 급격히 상승한다.

이러한 현상은 유동성과 변동성 간의 순환고리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 만약 앞으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고 사람들이 기대한다면, 즉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다면 시장 조성자들은 공급하던 호가를 자연스럽게 뒤로 빼거나 아니면 공급량을 줄인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실현 변동성은 상승하게 되는데, 유동성 공급이 적은 상황에서 유동성을 수취하는 경우 이것이 더 큰 가격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의 변동성이 상승한다면 시장 조성자는 어떻게 행동할까? 당연히 이전보다 더 보수적으로 유동성을 공급할 것이고 이는 또다시 변동성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유동성과 변동성이 서로 피드백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불과 3년 전, 코로나 사태 때 발생했다. 2020년 3월, 그때 당시 유동성 공급은 역사적으로 가히 최악의 수준이었다. 유동성은 몇 주 만에 급격히 메말라버렸고 이에 따라 시장 변동성 또한 2008년 9월 이후로는 보지 못했던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른바 유동성 경색(Liquidity Crunch)이었다. 결국 유동성 수급은 시장 환경의 함수이며, 이는 다시 시장 변동성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주식 시장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자산군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각 자산들이 서로 다른 성질의 고유한 펀더멘털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반면, 시장 구조의 메커니즘과 시장 참여자들이 행태는 전자산군에 걸쳐 전부 동일하다. 


초창기 트레이딩 플로어에서는 소위 스페셜리스트라고 불리는 시장 조성자만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시장이 전자화되고 모든 시장 참여자가 지정가 주문을 낼 수 있게 되면서 이제 시장 참여자들은 시장가 주문과 지정가 주문을 통해 상황에 따라 유동성을 수취하거나 제공하는 선택권을 가지게 되었다. 이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 선택권이 유동성의 다이나믹스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만약 시장 조성 알고리즘이 매력적인 호가를 제시하는 다른 유동성 공급자를 발견한다면 일시적으로 그 알고리즘은 유동성 공급자가 아닌 유동성 수요자가 될 수 있다. 또한 앞서 말한 것처럼 만약 시장 상황이 시장 조성 활동에 불리한 방향으로 흘러가면 그 시장 조성자는 유동성 공급 활동을 중단하고 매우 적은 수준의 유동성 공급만 남긴 채 시장에서 이탈할 수도 있다. 결국 시장 구조의 변화에 따른 시장 참여자의 자유도 증가 및 알고리즘 트레이딩의 확산은 과거보다 유동성이 훨씬 더 동적인 개념이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제 이 유동성은 과거보다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할 수도 반대로 순식간에 소멸할 수도 있게 되었다. 기존의 시장 조성자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집행하는 플레이어들 또한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있어 이제는 미시구조적 흐름을 새로운 도구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마련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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