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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Feb 02. 2024

퀀트의 공부법 #5.

# 4편에 이어

사실 눈치챘겠지만 1편부터 지금까지 모든 방법들은 기본적으로 주도성 없이는 실천이 절대 불가한 것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주도성이란 남들이 만들어낸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그 해법을 생각해 내 실제로 적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모든 비즈니스도 마찬가지지만 퀀트 비즈니스 또한 본질적으로 이러한 주도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현실 세계는 항상 가변적이며 따라서 우리가 대하는 문제 또한 계속해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러한 주도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며 퀀트의 공부법 시리즈,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자 한다. 이러한 주도성이 없다면 사실 이전까지 이야기한 공부의 테크닉들은 전부 허울에 불과하다.



# 주도성이 폭발하게 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

가능한 한 혼자 생각하고 부딪혀보고 거기서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 배우는 걸 선호하는 게 원래 성격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러한 주도성이 폭발하게 된 계기는 학부생 때의 몇몇 경험들을 통해서이다. 


일례로 채권쟁이를 꿈꾸던 학부생 시절, 당시만 해도 채권쟁이가 되고 싶어 매일 연합인포맥스 기사를 읽으며 부족하지만 최대한 FICC 시장의 흐름을 따라가고자 애썼고, 또 학교 도서관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케케묵은 원서들을 들춰보며 여러 금리 상품들의 구조를 이해하고 또 코딩을 해보며 나름 계산기도 만들어보고 그랬던 적이 있었더랬다. 


당시 내가 채권론이라는 과목을 듣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문제는 그 과목에서 교수님이 가르친 내용들 중 몇 가지가 사실은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닌 건 아닌 사람이라 그 내용이 잘못되었다고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지만 교수님은 학부생 나부랭이이기에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라며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갔다. 그 이후로 나는 그 수업이 너무 시간 낭비라 생각했고 결국 수업을 거의 안 들었기에 C 학점을 받게 된다. 채권쟁이로 커리어를 시작한 사람이 채권론 수업을 C를 받다니 웃기지 않은가? 물론 내가 그때 잘못됐다고 지적한 내용은 나중에 실무에 들어와 보니 당연히 틀린 내용으로 판가름 났다. 


이처럼 시장은 절대 상아탑의 이론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주도성 없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대로만 하면 언젠가 시장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나심 탈레브를 존경하는 이유 또한 그의 철학이 과거 그가 옵션 트레이딩을 하며 직접 현실을 마주한 경험으로부터 탄생했기 때문이다. 각종 경제 정책들이 이렇다 할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다. 철저히 현실을 외면한 채 각종 가정으로 점철된 교조적인 이론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얼탱이 없는 일화도 있다. 이 또한 학교 수업에서 있었던 일로 그 당시 블랙-리터만 모형에 관심이 많아 투자론 팀플 과제로 여러 논문들을 읽고 블랙-리터만 모형의 프레임워크를 발표한 적이 있었는데, 그 발표가 끝난 후 교수의 피드백은 정말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교수님 왈,

"이건 학부생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게 아닌데?"


"아, 그런가요, 하하."

나는 그냥 이렇게 웃어넘기며 대응하고 말았지만 당시 내 속마음은 이거였다.


'아니, 이 양반아. 학부에서 할 수 있고 없고 대학원에서 할 수 있고 없고 그런 건 대체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하는 건데? 시장에서 돈을 잃고 버는데 학사건 석사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렇게 따지면 경제경영 박사들은 이미 모두 억만장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구.'


자, 이런 경험들을 겪고 난다면 어느 누구라도 주도성이 폭발하지 않을까? 실제 세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또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열의에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상아탑에 갇혀 제한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재단해버리니 말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이러한 값진(?) 경험들 덕분에 지금까지도 스스로 찾아서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밴 것이 아닌가 싶다. 덕분에 나는 꽤 일찍 깨달았다.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만 배우면 충분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과감히 파기해야 한다는 것을. 특히나 실제 금융시장을 다루고자 한다면 더욱더 주도성을 되찾아야 한다. 실제 시장에서 거래를 해본 적도 호가창을 본 적도 없으니 그들은 시장의 생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학교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 학교 밖 실제 세상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다.



# 주화입마에 빠져드는 것을 경계할 것

주도성을 회복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학습을 수동적으로만 지속한다면 퀀트의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퀀트의 주화입마는 바로 데이터와 수식에만 매몰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가끔가다 보면 엄청난 데이터의 양과 기똥찬 머신러닝 모델만 있다면 금융시장에서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그저 신기루를 쫓다가 오버피팅 월드로 발산해버리는 부류다. 이러한 주화입마에 빠져 문을 닫은 펀드들은 이미 과거에도 무수히 많았다.


따라서 이러한 주화입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데이터와 경제 현상을 따로 분리해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결국 퀀트로 돈을 버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무지성 패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닌 그 패턴 뒤에 있는 인과적 관계로부터 수익의 기회를 향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과적 관계를 고려하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안일한 머신러닝, 딥러닝 모델이 표본 외 영역에서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과성에 비해 상관성은 약해도 너무 약한 개념이다.


따라서 여러 경제 현상들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에 흔적을 남길까를 추론해 보고 또 반대로 데이터가 어떤 현상을 설명하려 하는지 분석해 보는 연습을 해보아야 한다. 이는 데이터와 경제 현상을 통합적으로 바라보려는 매우 좋은 습관이다. 가령 뉴스 기사에서 수익률 곡선의 역전에 대해 언급하면서 수익률 곡선이 역전되는 경우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경제침체가 발생했었다는 말을 한다면, 퀀트는 당연히 우선적으로 수익률 곡선의 데이터와 경제 침체 데이터를 수집하여 어느 정도의 상관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둘 간에는 평균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차가 존재했는가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볼 것이다. 당연히 이 둘 간에는 유의미한 통계적 관계가 있기에 당연히 위의 명제를 쉽사리 정당화시키고 싶은 욕구가 들 것이다.


그러나 분석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 둘 간의 상관성은 검증되었더라도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 수익률 곡선 역전이 향후 경제 침체를 예측할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되는가에 대한 인과적 관계에 대한 추론이 생략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인과적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금리와 은행 비즈니스의 역학 관계,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보는 방법, 신용 사이클과 은행 비즈니스 수익성과의 관계 같은 펀더멘털 정보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 퀀트는 단순히 데이터 분석과 통계 모델만 잘 다루면 된다고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절름발이 퀀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되돌아오자면 이러한 연습과 습관 또한 결국 엄청난 주도성을 요한다. 주도성은 내가 원하는 정보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근성에서 나온다. 이 뾰족한 집요함과 묵직한 근성만이 자신만의 차별성을 만들어주는 무기가 된다. 따라서 퀀트의 공부법은 올바른 마인드셋을 정립하는 방법에서 출발한다. 자, 이제 준비가 되었다면 다시 1편으로 돌아가 논문들을 프린트해서 오늘부터라도 실천적 공부를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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