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극한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과 의지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환경을 직접 겪은 인물이다. 그는 그곳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집필했으며, 이 책은 단순한 생존 기록을 넘어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삶의 태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고 있다.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관찰한 사실은 단순하면서도 충격적이었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러한 극한의 환경 속에서도 어떤 사람은 끝까지 버텼고, 어떤 사람은 비교적 빠르게 무너졌다. 그 차이는 체력이나 운만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각자가 현실과 맺고 있던 관계였다.
미래를 완전히 포기한 비관주의자들은 애초부터 생존의 의지를 잃었다. 그들에게 내일은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따라서 오늘을 견딜 이유도 사라졌다. 반대로 맹목적인 낙관주의자들은 막연한 미래에 자신을 내던졌다. “곧 해방이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라는 믿음은 그들을 잠시나마 버티게 해주었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삶을 지탱하던 마지막 기반도 함께 붕괴되었다. 프랭클은 실제로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이러한 희망이 무너진 이후 사람들의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하는 현상을 목격했다.
이 두 유형은 서로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오류를 공유한다. 그 오류는 바로 두 가지 관점 모두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다. 인간은 외부로부터의 고통 그 자체보다,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붕괴될 때 더 빠르게 무너진다. 프랭클이 강조한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외부 환경과 상황이 어떻더라도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는 태도였다. 즉, 현실을 직시하되 그 속에서 의미를 잃지 않는 태도가 삶을 이끌어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를 '합리적 긍정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합리적 긍정주의는 시선이 외부가 아닌 내부, 다시 말해 타자가 아닌 자신에게로 향해 있다.
# 시장에서 어떠한 기대도 실망도 하지 말 것
이러한 통찰은 금융시장에서도 놀라울 만큼 그대로 적용된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사실은 투기꾼)은 시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객관적 이해가 아닌 주관적 해석, 더 정확히 말하면 자신의 믿음을 시장에 투영하는 것에 가깝다. “시장은 결국 상승할 것이다.”, “경기가 이렇게 안 좋으니 지금은 시장이 하락할 시점이다.”라는 류의 확신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저 일개 개인의 의견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서사에 시장은 전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시장은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려는 의도를 가진 존재가 아니다. 시장은 그저 수많은 참여자의 기대와 정보, 그리고 우연이 얽혀 형성되는 현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시장에게는 어떠한 의지도 없으며 그렇기에 시장은 개인이 본질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시장을 예측하려 하고, 그 예측을 기반으로 감정적인 투기 행위를 지속한다. 그리고 그 예측이 맞지 않을 때, 단순한 금전적 손실을 넘어 자신이 믿고 있던 세계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수용소에서 맹목적 낙관주의자가 겪었던 '희망의 붕괴'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맹목적 비관주의 또한 마찬가지다. 시장을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결국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한다. 기회를 내다버리는 선택을 반복하면서, 그들은 점점 시장으로부터 이탈하고 결국엔 부의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이는 미래를 포기했던 수용소의 비관주의자와 닮아 있다. 결국 문제는 시장이 아니라, 시장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생존하고 번영하는 트레이더는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아집과 집착을 내려놓고 오로지 시장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반응한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데이터에 기반하여 판단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포지션을 전환한다. 상승장이면 상승에 참여하고 하락장이면 하락장에 작동하는 전략의 스위치를 킨다. 추세장이면 시장의 추세에 올라타고, 횡보장이면 횡보장의 잔잔한 파도를 즐긴다.
트레이딩에서 중요한 것은 미래의 향방을 맞추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 누구도 미래를 정확히 맞출 수는 없다. 또한 예측을 전혀 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시장이다. 돈은 내가 버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나에게 벌어다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장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시장은 나에게 시장을 존중하고 존경했다는 대가로 수익을 가져다준다. 결국 트레이딩에서의 성공은 결국 시장을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
# 구별하고 받아들이되 행동할 것
그런데 사실 이러한 태도는 고대 스토아 철학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삶의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어찌 보면 빅터 프랭클이 이러한 스토아 철학의 대가였을 수도 있다.
스토아 철학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이 당신의 통제 안에 있으며,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시장의 방향, 가격의 변동, 타인의 행동, 결과 — 이 모든 것은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 반면, 우리의 판단, 선택, 행동, 그리고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은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트레이딩의 본질은 단순하다. 시장을 맞추려 하지 말고, 시장을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데이터에 따라 행동하고, 틀렸을 때는 지체 없이 수정해야 한다. 이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절대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프랍 트레이더에게 있어서 리스크란 두 가지의 형태를 띠고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손실 발생에 대한 리스크이며, 다른 하나는 돈을 못 벌 리스크, 즉 돈을 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이나 공포에 빠져 플레이를 해야 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액션을 취하지 않는 기회 상실의 리스크다.
트레이더에게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는 트레이더의 직업 특성상 저 두 가지 리스크를 끊임없이 계산하면서 밸런스를 맞춰가야만 다음 번 플레이를 지속할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집착하다 보면 어느샌가 시장은 우리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우리에게 깨달음의 철퇴를 내려친다. 시장을 함부로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고 오만이며 자만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이, 인간의 자유는 상황을 바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대해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연속이 트레이딩에서는 생존을, 삶에서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 모든 생각들을 한 마디로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문장이 있다. 바로 20세기 미국의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의 ‘평온을 위한 기도’다.
하나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평온을 주시고,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를 주시며,
그 둘을 구별할 지혜를 주소서.
결국, 시장에서도 삶에서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아래의 세 가지뿐이다.
1)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
2)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그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3) 어떠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생존과 번영을 지속할 수 있도록 규율에 따라 묵묵히 행동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