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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공학 모델링의 역사 X 돈의 물리학

by 퀀트대디

# 정반합,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이

역사란 것에는 필연적으로 인과관계, 즉 원인과 결과가 존재한다. 모든 사건의 발단에는 그것을 촉발시킨 원인이 있고, 또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건이 결과로 도출된다. 모든 문명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금융공학 모델링의 역사가 인과의 패턴을 갖는 것은 굉장히 명약관화한 일이다.


우리는 보통 시장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델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 사용하곤 한다. 다시 말해, 왜 이것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모델을 보다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이것이 도출되게 되었는가를 역사적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모형도 시장을 완벽하게 설명해낼 수는 없거니와, 모델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왜 이를 사용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이를 어떻게 더 개선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고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간을 거슬러 반추하다 보면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이 고민했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개선을 시켜왔는지 알 수 있다.



# 금융공학 모델링의 역사

1. 결정론적 모델링 (Determinism)

무작위성에 대한 사고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그때의 모델링은 모든 것을 고정불변의 것으로 보는 결정론적 프레임워크 상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1년 뒤 삼성전자 목표가 8만원!이라고 외치는 주식 애널리스트의 모델링이 바로 그런 종류였다. 이러한 결정론적 모델은 불확정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이 예측 가능하다고 가정하고 있다.


문제는 실제로 1년 뒤에 삼성전자 주가가 8만 원이 될 확률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모델의 예측 결과 자체가 틀렸을 뿐만 아니라 모델의 가정과 전개 과정도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주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는 사실 하에 어떻게 모델을 수정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주가의 무작위적 움직임을 고려하고 있는 새로운 모델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른바 확률론적 모델링의 시작이었다.


2. 확률론적 모델링 (Stochasticity)

무작위성이라는 개념을 모델링의 세계에 초대해보자. 결정론적이기만 했던 주가에 무작위성을 입혀보면 어떨까? 만약 주가 자체가 무작위성을 띤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 주가라는 것을 확률미분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피셔 블랙과 마이런 숄즈가 만들어낸 블랙-숄즈 편미분 방정식은 바로 이러한 주가의 무작위성을 잘 묘사하는 모형이다. 그들이 이러한 획기적인 모델을 만들어낸 뒤로 옵션 시장은 계속해서 커져갔고, 거래 또한 활발해져 갔다.


하지만 영원불변한 것은 없는 법이다. 완벽하게만 보였던 이 모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과의 괴리를 보이게 된다. 모형이 산출하는 가격이 더 이상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과 일치하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모형을 아예 폐기처분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그보다 더 편리한 방법이 있다.


2'. 반복 (Iteration)

그 방법은 바로 다른 변수들에 또다시 무작위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모형과 실제 시장이 맞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이제 주가 이외에 또 다른 변수에 무작위성을 입히는 것이다. 가령 변동성이라고 해보자. 지금까지 고정된 상수라고 가정해왔던 변동성이지만, 이제부터는 아니다. 변동성 또한 무작위성을 가진다고 상정한다면 이제 모델은 새로운 확률변수를 하나 더 가지게 된 셈이며, 모델의 자유도는 더 높아진다. 이제 이 새로운 모델은 또 얼마간 잘 작동을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또다시 현실과의 괴리를 보인다고? 그러면 또다시 새로운 확률변수를 추가해 주자. 이번에는 금리, 다음번에는 신용도 등등...


3. 점프 (Jumps)

브라운 운동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무작위성을 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또다시 모델은 현실 세계를 잘 설명하지 못하게 되었다. 퀀트들은 또다시 모델에 새로운 변화를 주기 위해서 고심하였다. 그 결과 그들은 단순한 브라운 운동에서 벗어나 여기에 포아송 과정에 기반한 점프 모형을 추가하였다. 이제 주가라는 확률변수는 점프-확산 과정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제 주가는 브라운 운동의 성질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따금씩 점프를 하게 된다.


3'. 반복 (Iteration)

점프하는 변수가 하나로만 성에 차지 않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또 다른 변수에도 이러한 점프 모형을 도입하는 것이다. 크레용팝마냥 여러 변수들을 한꺼번에 점프시키자. 이러한 작업은 모델의 복잡도와 자유도가 엄청나게 증가하는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 돈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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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오언 웨더롤의 책, 「돈의 물리학」은 이러한 금융공학 모델링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금융이 물리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금융 모형이라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되어왔는가를 서사적인 필체로 써 내려가고 있다. 루이 바슐리에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리 오스본을 거쳐, 브누아 망델브로, 그리고 금융 모형을 실용화시킨 에드워드 소프와 피셔 블랙까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형과 가정들이 왜 이러한 모습을 띄게 되었는지를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금융 모형의 역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모형이라는 것에는 절대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모형은 모든 상황에서 적용이 가능한 이론이나 법칙이 아니라는 말이다. 즉, 모형에는 언제나 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금융 모형을 사용하는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냉철한 사실은 바로 이 모형이 언제 실패하게 되는지, 또 이러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이러한 금융 모형의 한계를 매우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이것은 마찰과 중력이 전혀 없다고 가정하고서 계산하는 고등학교 물리학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런 조건을 갖춘 세계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조건을 단순화한 가정을 몇 가지 함으로써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의 답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그리고 단순화한 문제를 일단 풀고 나서 이번에는 단순한 가정이 정답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평가하면 된다.

모형이란 용어는 물리학에서 이미 사용되어, 완전한 이론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부족한 것을 가리켰다. 이론은 세계의 어떤 특징을 완전히 그리고 정확하게 기술하려는 시도를 말한다. 반면에 모형은 어떤 물리적 과정이나 계(시스템)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간단한 그림이다.

- 돈의 물리학 中



# 금융 모델을 대하는 자세

비록 모델이 아무리 우아하고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더라도, 모델과 그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가정들은 절대로 실제 시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한 진실을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모델의 수학적 우아함과 아름다움에 깊게 빠져 그것의 한계를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건 마치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에 홀려 결국 배를 침몰시키는 뱃사공들의 모습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모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사실은 바로 모델이 말하는 것보다 실제 시장은 훨씬 더 복잡하고 거칠다는 사실이다. 금융공학의 예술은 바로 시장과 모델 간의 상호작용을 이해하고 또 모델의 약점을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모델이 가지고 있는 약점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델을 시장에 적용하는 데 있어 그만큼 그 퀀트가 강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계는 실제 시장에 대한 고려 없이 그리고 실제 시장에서 트레이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무시한 채 맹목적으로 모델의 수학적 아름다움만을 좇는다. 하지만 뛰어난 퀀트 그리고 트레이더는 언제나 모델을 실제 시장에 던져 그것을 시험해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그들은 언제나 어떤 종류의 논의와 토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성이 필요하다. 외모만을 보고 호감을 느껴 사랑을 시작하는 것은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하지만 그 사랑을 지속하게 만드는 것은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성격, 강점과 약점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나와의 원만한 상호작용이 아니던가. 모델에 대한 사랑도 이와 같아야 한다. 그것의 약점과 강점, 복잡성, 그리고 실제와의 상호작용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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