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발 달린 솥
삼족정립(三足鼎立)이라는 말이 있다. 정(鼎)은 3개의 다리가 달린 솥의 모습을 나타낸 한자이다. 예로부터 고대 중국에서는 다리가 세 개인 솥을 주조했다. 그 이유는 다리가 두 개라면 솥은 넘어지게 되고, 다리가 네 개라면 표면이 고르지 못한 땅에서 어느 한쪽 다리가 항상 들려있어 흔들거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삼족정립에서의 정립(鼎立)은 ‘솥의 세 발처럼 서다’라는 뜻으로, 세 사람 또는 세 세력이 솥의 발과 같이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 발의 각도가 120도를 이루는 자세는 다른 어떤 형태보다 안정과 균형을 상징한다. 삼각대나 삼발이의 발이 세 개인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런데 정립(鼎立)에도 안정된 균형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 있다. 세 발은 길이와 굵기에 있어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하나의 발이 짧거나 가늘다면 균형된 힘으로 무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어느 한쪽으로 쏠려있으면 이는 균형이 상실된 것을 뜻하며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온전함을 위해서는 세 다리가 균형을 이루어 솥을 굳건히 지탱할 수 있어야 한다.
# 금융공학 세계에 대한 이해
금융공학 세계는 이러한 삼족정립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왜냐하면 금융공학 또한 세 발 달린 솥과 같이 그것의 본질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요소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각각 1) 시장(Markets), 2) 모델(Models), 그리고 3) 구현(Implementation)이다.
당연히 온전한 금융공학을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 모두에 대한 균형 잡힌 학습이 필요하다. 만약 어느 하나가 부재한다면 잠깐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불안정하며 두 발 달린 솥처럼 결국에는 넘어지게 될 것이다.
# 균형 잡힌 금융공학적 지평의 확대
그렇기 때문에 결국 금융공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이 세 가지 모두에 대한 욕심을 내야 한다. 금융공학의 목적은 본질적으로 이전까지는 풀 수 없었던 금융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는데, 이 세 가지가 균형이 잡혔을 때 비로소 효율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1. 시장(Market) : 금융과 경제에 대한 논리와 현실 세계
금융공학은 공학이지만 결국은 금융시장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무리 수학과 컴퓨터 과학에 대해 정통하다고 해도 결국 사람들이 창조해 낸 사회적 결과물인 시장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는 무용지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금융 상품에 대한 이해, 시장 구조와 거래의 구조에 대한 이해, 시장을 구성하고 있는 시장 참여자들의 행태와 논리, 목적과 동기 등에 대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금융공학이라는 학문에 대하는 데 있어 그 출발선이 다르다.
2. 모델(Model): 수학과 통계학으로 빚어내는 이론적 토대
그다음은 현실에 대한 추상화 과정이다. 즉, 현실을 토대로 모델을 만들어 내는 이론적 부분에 대한 이해이다. 기본적으로 모델을 새로 배우거나 만들기 위해서는 모델을 만들기 위한 재료가 필요하며 이 재료가 바로 수학과 통계학이다. 바이사이드냐 셀사이드냐에 따라서 좀 더 집중해야 할 이론적 모델들이 다르긴 하겠지만, 기초 통계학과 미적분, 선형대수는 모든 금융공학 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도구들이다. 더불어 최근에는 금융의 영역에서도 머신러닝과 딥러닝에 대한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늘어나고 있다.
3. 구현(Implementation) : 컴퓨터 공학과 알고리즘
마지막은 구현이다. 내재적이고 추상적인 이론뿐이라면 금융공학은 단지 지적 유희에 불과할 것이다. 금융공학은 실제 시장에서 활용되어야만 그것의 실질적인 가치가 존재하는 것인데, 그 진가를 발휘하게 하는 역할을 마지막 다리인 구현이라는 것이 담당하고 있다. 프로그래밍과 알고리즘 설계를 통해 추상적이기만 했던 이론이 실제 시장에서 돈을 벌어오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파이썬과 R 같은 직관적이면서 이해하기 쉬운 프로그래밍 언어 덕분에 구현에 대한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금융공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들이다. 삼족정립이 말하는 것과 같이 이 세 가지 요소는 모두 중요하다. 어느 한쪽이 비어있다면 불안정이 발생하며 결국은 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공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 요소에 대한 균형 잡힌 학습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균형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어찌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겠는가. 금융공학을 공부해나가면서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자문해보아야 하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의 금융공학적 지평은 넓어지며 동시에 골고루 성장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