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자 업계의 판도 변화를 예고하는 한 편의 레포트
미국의 금융 서비스 데이터 회사인 Greenwich Associates는 투자 업계의 미래를 전망하는 한 리서치 레포트를 발간한 적 있다. 이 레포트의 제목은 「Seismic Shifts: The Future of Investment Research (투자 리서치의 미래와 지각 변동)」인데, 이 레포트는 향후 도래할 투자 업계의 변화, 특히 투자 리서치 부문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은 전 세계의 자산운용사, 헤지펀드 및 연기금에 재직 중인 CIO, 포트폴리오 매니저, 투자 애널리스트 3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설문조사는 향후 5년에서 10년 후 과연 투자 업계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정성적, 정량적으로 묻는 질문들이었다.
이 레포트는 크게 다섯 가지 포인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1. 셀사이드 리서치 부서의 독립
2. 바이사이드 내부 리서치 역량의 강화
3. 대체 데이터
4. 인공지능의 부상
5. 데이터 스킬
# 셀사이드 리서치 부서의 독립
전통적으로 바이사이드 매니저들은 시장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대가로 브로커리지 하우스, 즉 증권사들에게 커미션을 지급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셀사이드 세일즈 부서는 이러한 커미션 수익을 얻기 위해 매니저들에게 증권사 리서치 부서에서 만든 리서치 자료들과 투자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세일즈를 했었다. 이러한 비즈니스적 관행은 아직까지도 만연한 것이 사실이다. 리서치 부서는 어찌 보면 수익구조가 독립적이지 못하고 세일즈에 종속적이었다.
그런데 유로존에서 시작된 MiFID II의 도입은 이러한 업계의 관행을 타파하고 리서치 부서가 독립적인 수익구조를 창출할 수 있도록 법적 프레임워크를 제공하고 있으며, 유로존의 시장 플레이어들을 새로 바뀐 업계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셀사이드 비즈니스의 판을 새로 짜고 있다. MiFID는 Markets in Financial Instruments Directive의 약자로 EU에서 제정한 금융 산업 규제 및 금융 소비자 보호에 대한 법적 기반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MiFID II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리서치 부서의 독립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리서치라는 기능이 세일즈나 트레이딩에 종속된 것이 아닌 고객들에게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 독립된 사업주체라고 보고 있으며, 이러한 규정이 투자 리서치 과정에서의 투명성과 공평성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물론 아직 이 MiFID II는 유로존에만 적용되어 있으나, 이것의 영향력은 조만간 전 세계에 확산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우선, 이 레포트에 의하면 응답자의 70% 이상이 향후 이러한 리서치 조직의 독립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응답자의 70% 이상이 이미 이러한 리서치 서비스에 돈을 지불하고 있거나 향후 지불할 의향이 있다고 답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설문조사 결과는 사실 현재의 업계 상황과 전혀 정반대인데, 현재는 이러한 리서치 서비스 이용료가 이미 주문 체결 커미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설문 결과를 통해 유추해낼 수 있는 것은 향후 리서치 조직이 셀사이드 업계에서 좀 더 독립적인 주체로 수익부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만큼 바이사이드 매니저들은 주문 체결 수수료와 별도로 셀사이드 리서치에 대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또다시 바이사이드 업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용이 한두 푼이 아닐 것이기 때문에 점점 더 자산운용사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내부 리서치의 역량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하게 될 것이다.
# 바이사이드 내부 리서치 역량의 강화
위의 설문조사를 보면 이미 글로벌리하게 많은 바이사이드 플레이어들이 다가오는 변화에 대한 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관 투자자들은 이미 셀사이드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으며, 그들 중 90%가 투자 결정을 위한 리서치 정보 및 자료 수집에 대한 첫 번째 소스가 내부 리서치라고 응답하였다. 이 설문 결과를 보면 셀사이드 리서치는 3위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 설문 결과이다. 아래의 그래프를 한 번 살펴보자.
위의 그래프는 향후 매니저들이 투자 리서치에 대한 아이디어 및 소스를 어디로부터 얻을 것인가에 대한 대답인데, 50% 이상이 셀사이드 리서치에 대한 비중을 줄이겠다고 답하였다. 이는 다른 소스와 비교했을 때 꽤 큰 폭의 감소이다. 오히려 매니저들은 대체 데이터 소스나 내부 리서치 조직, 그리고 독립적인 리서치 회사에 대한 비중을 높일 것이라고 답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확실히 데이터 기반의 리서치 회사나 내부 리서치 역량에 집중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대체 데이터의 활용
대체 데이터란 전통적인 금융 데이터가 아닌 여러 다른 종류의 데이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공위성 이미지나, 교통량 데이터, 신용카드 결제내역 데이터 등이 모두 대체 데이터의 범주에 들어간다. 헤지펀드나 운용사 매니저들은 남들은 모르는 새로운 알파를 창출하기 위해 이러한 대체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리서치 조직에서도 이러한 대체 데이터가 돈이 되기 때문에 이러한 데이터의 수집과 가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설문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70%가 이미 대체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거나, 혹은 향후 1년 내에 이러한 데이터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답하였다. 이러한 추세가 강화되면 될수록 투자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데이터 분석과 프로그래밍에 대한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할 것이다. 옛날 우리 아재들은 엑셀만 잘해도 인정받고 먹고살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엑셀만으로는 부족해도 너무 부족하다. 점점 더 파이썬이나 R과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들과 데이터 분석 역량이 각광을 받게 될 것임은 피할 수 없는 추세이다.
앞으로 대부분의 투자 회사들은 이러한 대체 데이터를 어떻게 기존의 투자 프로세스에 적절히 통합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며, 대체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기 위해 할당되는 예산의 규모도 점점 증가하게 될 것이다.
# 인공지능의 부상
우리는 지난 2016년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철저히 그리고 무참히 털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였다. 엄청난 컴퓨팅 파워의 향상으로 인해 지난 5년간 기술과 데이터 과학의 진보가 이루어졌고, 이는 머신러닝, 딥러닝, 자연어처리와 같은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서도 혁혁한 진보를 이루어냈다. 또한 최근 인공지능 기술은 상업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인공지능 기술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자동 번역, AI 비서, 자율 자동차 같은 것들이 모두 이러한 인공지능 기술의 산물이다. 이제 인공지능은 인간 고유의 영역이었던 투자 업계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투자업계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활용이 만연한 것은 아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70% 이상이 아직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지는 않고 있다고 답하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항상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이다. 응답자의 56%가 앞으로 투자 프로세스와 인공지능의 통합과 인공지능에 대한 내부 역량개발 집중을 생각하고 있으며, 40%가 인공지능 관련 예산의 증가를 계획하고 있다.
# 이제 MBA, CFA 보다는 데이터 사이언스
이처럼 금융업계의 판도는 점점 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추세는 자연스럽게 금융권의 인력 수요에도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10년 후에는 금융권에 필요한 역량이 모두 인공지능이나 데이터 과학에 대한 일변도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전통적으로 금융권으로의 진입 관문이었던 MBA나 금융공학 과정에 대한 중요도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결국 투자업계의 변화는 데이터, 데이터 애널리틱스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수요 증가를 야기할 것이고 점점 더 많은 금융회사들이 이 분야에 대한 역량 집중과 예산 배분 증가를 계획할 것으로 이번 레포트는 전망하고 있다.
향후 5년, 그리고 10년 금융업계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미 선진국은 이러한 변화를 직접 체험하고 있다. 물론 한국은 느리다. 하지만 이는 예고된 결말이다. 미래를 대비하는 것만이 생존을 위한 최적의 전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