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타우> 감상 후기
# 인공지능 집사, 타우
SF 스릴러물인 넷플릭스 영화 「타우(TAU)」의 스토리는 알렉스 박사에게 주인공 줄리아가 납치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알렉스 박사는 자신의 프로젝트인 일명 PSI 프로젝트를 완성하기 위해 사람들을 납치해 실험체로 사용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가 만든 인공지능 타우가 모든 작업에 관여를 한다. 사실 타우는 알렉스의 집에서 모든 집안일들을 처리하는 인공지능 집사이다. 영화는 납치된 줄리아가 알렉스 박사의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인공지능 타우를 분석하고 그것과 교감하는 과정을 스릴 넘치고도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참고로 꽤나 잔인한 장면들이 있어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다.)
# 우리의 자아는 독립적인가
타우라는 영화는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사용해서 전체적인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론적으로 기존의 SF 스릴러 장르가 흔히 말하고 있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이 아닌 우리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찰이다.
영화에서 인공지능 타우는 알렉스 박사가 자신을 창조한 창조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창조해준 그에게 절대복종을 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타우에게 주인공 줄리아는 이렇게 말한다.
"나 또한 나를 창조한 창조자(부모)가 있었어. 하지만 그 창조자는 나를 만들기만 했을 뿐이야. 결국 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인생에 대한 창조자가 되어야 해."
이 말을 들은 타우는 이전까지는 모르고 있었던 한 가지 관념에 대해 깨닫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독립적인 인식이다. 다시 말해, 단지 알렉스 박사로부터 어떠한 명령을 받아 그것을 그대로 수행하기만 했던 타우가 비로소 자신의 독립적인 자아를 가지게 된 것이다. 타우는 그의 창조자인 알렉스 박사가 만들어내고 규정해버린 좁디좁은 새장에서 벗어나 마침내 자신의 존재 목적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 타우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 관한 철학적 질문들과 마주하게 된다. 우리 또한 인공지능 타우와 같이 우리의 인생을 매우 기계적이며 수동적으로 살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목적의식을 스스로 찾으려 하지 않고 그냥 그것을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대신 결정해주기를 바란 채 자신의 인생을 타인에게 종속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이 영화 타우는 우리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자기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개척자가 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인생의 목적의식을 자기 스스로 찾지 않는다면 그 인생은 그저 타우처럼 남의 명령만을 따르고 수행하는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자립적인 목적의식을 가질 수 있냐 혹은 그렇지 않냐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하는 일을 똑같이 따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절대 알지 못한다. 고양이와 강아지 사진들을 기똥차게 구별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도대체 왜 하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인간은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과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결국 인간의 본질은 자기 인생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고자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에 있다. 결국 이 영화 타우는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빌려 삶의 능동성과 목적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 입시제도는 왜 꿈을 좀먹는가
대한민국은 명문 대학 진학에 목숨을 거는 나라다. 자식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들여 사교육을 시키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한민국의 유구한 전통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소위 개고생을 해서 명문대에 진학한 대학생들에게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 어떤 커리어 패스를 밟고 싶은지를 물어보면 많은 수가 정작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취업을 목전에 둔 3, 4학년 학생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자신이 과연 본인의 삶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오직 명문대를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더군다나 그러한 의지 또한 자기 스스로가 오랫동안 고민해서 생긴 것이 아닌 단순히 부모님 혹은 주변 사람들의 바람 때문에 대학에 오기는 왔으나 본질적인 목적의식은 부재해 있는 상태인 것이다. 대학에 와서도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이러한 존재론적 아노미 현상은 평생에 걸쳐 지속되며, 결국은 깊은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커리어를 착실하게 밟았다고 하더라도 그 인생은 결국 나의 인생이 아닌 남들이 바라고 있는 삶을 내가 대신 살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인생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인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그 행복을 스스로 온전히 느낄 리는 만무하다. 인간 줄리아의 삶이 아닌 인공지능 타우의 삶인 것이다. 이러한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는 인도 영화 「세 얼간이」를 생각나게 한다.
# 내 생의 목적은 과연 무엇인가
미국 교육부는 전혜성 박사의 케이스를 동양계 미국인 가정의 자녀교육 성공사례로 꼽은 바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혜성 박사 부부는 그들의 여섯 자녀 모두를 미국 아이비리그에 진학시켰고 현재 그 자녀들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두각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전혜성 박사는 자신의 저서 「생의 목적을 아는 아이가 큰 사람으로 자란다」에서 생의 목적을 아는 아이가 목적 없는 천재보다 낫다고 말하고 있다. 생의 목적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저 주어진 일을 억지로 하다가는 결국 일에 대한 흥미와 보람을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자녀 스스로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한지, 그리고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말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분명한 생의 목적을 갖고 있어야 거기서 자신의 삶과 커리어를 위한 에너지, 즉 동기부여가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녀가 성공하길 원한다면 영어 문제, 수학 문제를 하나 더 푸는 것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전에 본인의 인생을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할 시간과 여유, 그리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즉, 자녀들에게 필요한 질문은 "어느 대학에 진학할 것이냐?"가 아닌, "어떻게 생의 목적을 찾고 어떻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이냐?"이다. 생의 목적을 스스로 알고 있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러한 동기부여에 의해 스스로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법을 발 벗고 찾아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행동에 있어 동기부여만큼 가장 확실하면서 폭발적인 에너지의 원천은 없다.
전혜성 박사는 자녀들에게 이러한 생의 목적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는 먼저 부모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생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자문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결국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보며 자라기 때문이다. 결국 자식 교육을 위한 최고의 비결은 스스로의 생의 목적을 자각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즉, 이것은 부모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목적을 찾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자녀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력이 오롯이 전달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생의 목적을 찾는 것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이것이야말로 삶이 진정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생의 목적을 찾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인생은 더더욱 성취감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매슬로의 욕구 계층 이론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 왜 자아실현의 욕구가 자리하고 있는가는 바로 이러한 생의 목적과 연관이 있다. 결국 우리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이다. 당신의 생의 목적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