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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퀀트대디 May 02. 2021

혁신을 위한 마음가짐

넥슨의 비트코인 매수 기사를 보며

# 넥슨, 비트코인 1130억 원어치 풀 매수!

넥슨 재팬이 최근 한화로 약 1130억 원에 달하는 금액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또한 매수 직후 넥슨의 CEO는 이러한 비트코인 투자에 대해 아래와 같은 성명서를 내기도 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비트코인을 매수한 주체가 넥슨 코리아가 아닌 넥슨 재팬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은 언제나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을 개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깔보는 일본이라는 나라는 사실 언제나 한발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고자 대비하는 국가이다. 현재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 생태계, 로보틱스 등에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미래에 혁신을 가져다줄 분야에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이미 2018년에 블록체인 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발트 3국 -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 을 차례로 순방한 적이 있다. 그중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 시대의 패권을 잡기 위해 가장 혁신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국가이다. 일본은 이처럼 누구보다 빠르게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발트 3국의 대통령들이 방한을 했을 때조차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베 총리가 이 국가들을 방문했던 바로 다음 달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 정부는 이들 국가가 단지 소련 해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그저 동유럽에 위치한 작은 약소국가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블록체인 에스토니아처럼

확실히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 헬조선의 '으르신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세계 역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현재 선진국이라고 해서 미래에도 선진국 지위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라는 것을 말이다. 일본은 또 다른 흑선, 또 다른 조총이 언제 어디서 나올 것인지를 예의주시하면서 새롭게 미래의 패권을 선점하고자 조용히 또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따라서 비판을 할 거면 비판의 대상에 대한 철저한 공부가 이루어지고 난 다음에 비판을 하도록 하자. 아무런 논리도 지식도 없이 웅왱웅왱 까대기만 하는 것은 본인의 인생과 사회 전체에 아무런 가치도 제공해 주지 못한다. 한국에 토론 문화가 제대로 정착할 수 없는 까닭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바로 상대방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듣기 위한 지식과 소양 자체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좋다면 왜 좋은지, 싫다면 왜 싫은지를 논리적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일인데, 우리 사회는 일단 근거를 확보하기도 전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본다.



비트코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은 좁게는 트레이딩과 투자라는 것에 대한 지식의 부재, 그리고 넓게는 블록체인 기술과 이를 통한 결제 생태계가 앞으로 어떻게 미래를 바꿀 것인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 원인이다. 이는 결국 이것을 옳고 그름의 문제, 혹은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로 바라보기보다는 정치적 기득권의 문제, 즉 내 밥그릇이 뺏기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명목 GDP 10위 국가라고 자위질을 해대지만 현실은 정신적, 사상적, 제도적으로 삼류 국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 진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지금 으르신이 얘기하고 있는데 어딜 가노?

자, 이것이 바로 진화의 출발점이다. 시간이 지나면 세상과 환경은 필연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현상 유지를 추구한다면 낙오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몸집이 매우 큰 공룡들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채 멸종했다. 산업혁명과 민주주의가 도래한 이후 왕과 귀족들은 단두대에 목이 댕강하고 잘려나갔다.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한 결과이다.


조선 말기, 강화도 앞바다에 흑선이 나타났을 때 조선 사람들은 오늘날 서울 시내에 이렇게 마천루들이 들어설 줄 예상이나 했을까? 아니다.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20년 전, 그때 당시 사람들은 오늘날 스마트폰이라는 이 작고 요상한 물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조차 했었을까?


우리는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지게 될지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변화하고 있는 세상을 몸으로 느끼면서 계속해서 미래에 대한 예측을 주기적으로 수정해 주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열린 자세다. 개방성, 즉 새로운 것을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열린 마음가짐이 있어야만 변화하는 세상을 오롯이 직시하고 또 준비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옳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가 어떻게 될지 절대로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의 변화를 모르쇠한 채 옛 것만이 최고라는 수구주의 마인드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옛 것에도 배울 점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수구꼴통이 아닌 온고지신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미래를 앞서 나가는 사람들은 보면 우리는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은 취할 것은 취하되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바꿔야 할 것은 순식간에 바꿔버린다는 것을.


과거가 이렇게 되어왔으니 미래 또한 같은 방식으로 될 것이라는 생각은 단지 과거 데이터를 사용해 미래를 외삽하는 것인데, 이는 예측력이 매우 낮은 방법이다. 변화의 속도가 날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와중에 예측력과 생존능력을 높이는 방법은 바로 환경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여 예측 모델을 조금씩 조금씩 자주 피벗팅하는 것이다. 나우캐스팅(Nowcasting)의 시대이지 않나. 사농공상으로 점철된 관료주의와 헬조선 특유의 선비 DNA를 버리고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혁신과 쇄신을 잃어버린 자가 갈 곳은 결국 무덤밖에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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