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공간에서 늘 생활하다 보면 한 번씩 구조를 바꾼다. 통에 가득 담긴 모래와 자갈처럼 흔들다 보면 이리저리 굴러 빈자리를 메꾼다. 조각을 모으듯, 테트리스를 쌓아 올리듯 어느 사이 짐들은 천장에 닿고 바닥은 잠시 넓어진다. 새롭게 바뀐 거실에서 소파는 벽을 바라본다. 빈 벽에 빛을 쏘아 영화를 볼 요량이지만 빛이 없는 시간 동안은 내내 풍경 없는 안식처가 될 거다. 상관없지, 이미 이 좁은 공간에 어떤 풍경이 있었나.
어젯밤에는 빈 벽을 보며 잠시 울었다. 너는 용케도 내가 밤 외출을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고 나가자고 보챈다. 종일 쉴 새없이 나불대던 내가 꽤 긴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탓에 덜컥 두렵기도 했었나,
아니면 너는 또 평소처럼- 그런 연유였겠거니 짐작하고 눈물의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저 깊은 밤이니 춥지 않게 챙겨 입으라고만 했다. 사실 조금 다행이었다. 나는 줄곧 서럽게 엉엉 울면서도 이유를 몰랐다. 의아하면서도 멈출 줄 모르는 눈물. 슬프기보다는 분했던 것 같다.
온전히 나를 마주하는 것, 매일을 달려왔음에도 별 볼일 없는 나, 여전히 볼품없이 스스로를 미워하는 나로 돌아온 것이 분하고 분했다. 마음에 선을 긋는 일, 나를 재어 빈 벽에 표시해두어야만 나는 더 클 수 있을까. 실망스러운 그 높이가 나인 게 싫었다.
그는 말했다. "시간이 걸려도 같은 곳에 도달할 수 있다면 우린 동등한 사람인 거야. 우린 공평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에 계속 갈 수 있어"
어떤 분함은 단순한 이별의 슬픔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와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 이제 인사도 건네기 어렵다.
고립감은- 나는 조금도 나아지지 못했다. 어릴 적 모든 밤에는 고립의 둔 턱에서 빈 수화기만 들고 있었다. 우르르 쾅쾅 화산 같았다. 불안하고 정신없이 흔들리고 터지고 쏟아내고 그러고 나서는 뿌옇게 쌓인 잿 속으로 가라앉는다. 부지런한 청소부만 주기적으로 문을 두드린다. 나는 그 덕에 비실한 생을 좀 더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