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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분의 일 Jul 17. 2023

사랑이 이별이 되는 순간

마주하고 또 마주해야 할 순간

글을 쓰면서 저의 손가락에서 나온 모든 문장에는 마침표를 찍으며 마무리를 맺습니다. 글을 써 내리면서 처음 운을 띄울 때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또 가볍지 않게 이어갑니다. 글을 써 내리면서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항상 후련한 것 같아요. 하지만 동시에 다음 문장은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막막한 순간이 찾아오죠. 결국 끝없는 문장들의 연결고리들이 하나의 글을 만들어 내요. 사랑이라는 감정도 같다고 생각해요. 이 글을 써 내리고 있는 지금의 저는 그분에 대한 그리움을 써 내리고 있지만 놀랍게도 그분이 저에게 이별을 고하며 저와의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찰나의 후련함이라는 감정이 느껴졌었어요. 지금 글을 쓰면서 그 순간을 떠올리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리 찰나이지만 제가 그런 감정을 느꼈었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저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강박으로 그분과의 관계를 지옥 같은 순간들로 만든 것은 저 자신이지만 저 조차도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거죠. 저도 이런 감정을 느꼈는데 그분은 얼마나 그 상황을 마주하는 게 힘이 들었을지 상상도 못 하겠어요.


지금까지 제가 경험했던 이별은 그저 저에게 탈출구 같은 경험이었어요. 저의 부족한 부분들을 알아가고 있는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별의 경험과 다르게 저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했던 경험을 경험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경험이라고 말하기보다는 그저 기억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기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아요. 어떠한 아픔이든지 그 크기에 비례하게 주는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라는 감정이 저에게 있어서 어렵게 갖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만큼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별의 아픔 또한 너무나도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아픔이 큰 만큼 그분이 저에게 남기고 간 것들 또한 많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그래서 더욱 힘든 시간을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분은 저와 만남을 이어나가는 순간에도 제가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주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줬었는데 저를 떠나가는 순간까지도 제가 몰랐던 저의 모습들을 알게 해 주고 그렇게 알게 된 저의 잘못된 부분들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반복하지 않게 만들어 주었거든요. 쓰러져 있던 저에게 손 내밀어 줄 때 저에게 주었던 것 들 만큼 떠나갈 때 까지도 저에게 많은 것들을 남기고 간 사람을 어찌 쉽게 잊을 수 있을까요. 아마 애초에 이렇게까지 의미가 없는 만남이었다면 시작도 안 했을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저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이별을 겪어왔어요. 소중했던 반려견과의 이별, 저에게 대가 없는 사랑을 알려주었던 가족과의 이별, 어린 시절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이별, 함께 뜻을 맞추며 열심히 일했던 사람들과의 이별, 지금과 같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이별이 주는 공허함은 아무리 경험해 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아요. 저의 마음속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감정들의 행렬이 사라지고 남기고 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정적과 공허함만이 그 자리를 가득 채우고 그저 텅 비어있던 저를 마주하는 기분이지요. 그래서 지금의 저는 그 텅 비어있는 공간을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로 채우려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글을 읽는 일, 글을 쓰는 일. 누군가의 감정이 고스란히 적혀있는 글, 앞으로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는 삶의 지침서 같은 글을 읽으며 2년 동안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조차 없었기에 생겼다고 생각하는,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 알지 못했던 저의 결핍되어 있는 부분들을 채우고 또 채웁니다. 흘러넘쳐도 상관없어요. 그렇게 흘러넘치는 감정들은 아무것도 없는 하얀색 모니터 속을 저의 손톱만 한 글자들로 가득 채워가고, 그 글자들이 하나의 글이 되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만약 제가 사고로 인해 크게 다친 뒤 저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포기해 가고 지금과 같이 다시 하나씩 찾아가는 경험이 없었더라면 저의 결핍을 그저 자책하기만 하며 부정적인 감정의 심연 속으로 빠져 살기 위해 그저 발버둥 쳤을 것 같아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저 제자리걸음에 안도하며 매일 저에게 찾아오는 하루를 버텨가는 거죠.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의 시선들과 저 자신의 시선조차 무서워서 방 안에 스스로를 가두었던 때처럼 말이에요. 지금 그때를 돌이켜보면 제가 겪었던 그 시간들을 버텼다고도 말을 하지 못해요. 그저 죽어있었던 거죠.


한동안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지냈고 저에게 많은 순간들, 경험들을 선물 받았던 만큼 사랑이라는 감정이 떠나가는 이별도 저에게 많은 것들을 선물해 줬다고 생각해요. 그분은 제가 절대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할 순간들, 경험들을 떠나가는 순간까지 남기고 갔다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이별이 주는 고통을 잊기 위해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거나, 새로운 취미를 갖곤 해요. 다치기 전의 저도 그랬던 경험이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분과의 이별을 마주하며 느껴지는 아픔 또한 저에게 남긴 선물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더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마주하려고 합니다.


저는 지금의 제가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에 지금 제가 겪고 있고, 마주하고 있는 이별까지가 그분과 함께 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끝난 삶이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물해 주었고,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어요. 사고로 그저 다 무너져 내렸다고 생각했던 저에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 주었어요. 저의 손으로 하나씩 포기했던 일상들을 다시 되찾을 수 있는 용기, 힘을 선물해 주었어요. 지금처럼 제가 글을 써 내릴 수 있는 이유를 선물해 주었어요. 그저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며 안도하고 망각하며 나태해지는 저를 바로 잡을 수 있는 힘을 선물해 주었어요. 어떤 시련이 찾아와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우직함을 선물해 주었어요. 건강과 함께 잃었다고 생각했던 사랑하는 일을 선물해 주었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소중한 것들을 놓치지 않을 힘을 선물해 주었어요.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신중함을 선물해 주었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상대방을 먼저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는 힘을 선물해 주었어요. 죽을 때 까지도 모를 수 있었던, 그저 덮어놓고 피하기 바빴던 저의 결핍, 공허함을 마주하고 채워 넣을 수 있는 순간을 선물해 주었어요. 절대 다시는 저의 소중한 것들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진심 어린 각오를 선물해 주었어요. 저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선물해 주었어요. 그분과 함께 했던 순간들에 분에 넘칠 정도로 수없이 느꼈던 행복이라는 감정을 선물해 주었어요. 위에서 말한 것들은 그분이 다른 누구도 아닌 저에게 선물해 준 것들이라고 생각하기에 이것들을 절대로 전부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요. 순간의 고통과 괴로움으로 이것들을 잃고 싶지 않아요.


누군가가 듣기에는 나약한 소리 같겠지만 저는 그분과의 이별이 오면 제가 다시 무너져 내릴 줄 알았어요. 그분이 이별을 저에게 고한 직후에는 정말 다시 조금씩 쌓아 올리던 저의 온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죠. 감정이 좁은 분화구 밖으로 비집고 폭발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그분을 만나 오면서 그간 쌓여있던 한 없이 깊고, 수많은 감정들이 질서 없이 앞 다퉈 나가려고 서로 싸우는, 물어뜯는 느낌이었죠. 그렇기에 그분이 제게 이별을 고하기까지의 그분의 힘들었던 시간을 존중하지 못했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절대로 쉽게 말한 게 아닐 텐데 그분의 용기까지도 존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때의 저는 그저 눈앞에 다가온 이별을 부정하기 바빴던 것 같아요. 그저 제가 다시 손을 내밀면 전처럼 잡아줄 거라 생각했던 거죠. 전에 글에서 써 내렸던 것처럼 철없는 어린아이의 어리광이랑 다른 게 없었다고 생각해요. 솔직한 마음으로는 이런 감정들, 생각들을 하면서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확신이 있고, 용기가 있기에 그분과의 재회를 원하지만, 제가 이미 엎질러버린 저의 감정들, 그분의 감정들을 주워 담을 수 있고, 사람마음이란 게 뜻대로 되었다면 세상에 이별의 고통을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모든 일에는 때가 있듯이 저의 무지함과 부족함으로 다시는 오지 않을 그 순간을 떠나보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그분과 이별을 마주하고 그분에 대한 그리움을 글로 써 내릴 때에는 그분과의 재회를 원하는 지금 저의 마음을 잘 내비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마지막 순간에는 진심으로 그분과 그분의 선택과 용기를 먼저 존중해 주고 배려해주고 싶거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와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는 순간이 다시 찾아올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같은 이별을 하진 않을 거예요. 다른 이별을 하고, 또 다른 가르침을 얻고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완벽한 만남을 꿈꿀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그때에는 저의 삶을 함께 할 배우자를 만나고 지금의 제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저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겠죠. 지금의 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지금의 저의 생각들 까지도 그분이 저에게 선물해 준 삶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하고, 용기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더욱 지금 제가 겪고 있는 이별을 잊고 망각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피하지 않을 거예요. 더욱더 마주하고, 저의 삶에 선명하게 새겨 넣으려고 합니다. 처음엔 그분이 저에게 줬다고 생각하던 그저 괴롭기만 했던 이별이 마주하면 마주 할수록 지금의 저에게는 선물이 된 거죠. 지금 이별을 대하는 생각들과 태도 또한 바뀐 제가 이별을 받아들이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이런 저의 모습도 글을 써 내리면서 알아가게 된 거죠. 지금까지 쓴 글에서는 그분과의 이별을 마주했기보다는 그분이 저에게 주었던 사랑, 존중, 배려를 마주했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이별을 마주하고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 계기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그분이 제게 마지막으로 선물해 준 이별이 의미가 있을 거라, 그저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지금의 저는 제가 할 수 없는 일을 욕심내지 않아요. 지금의 저에게는 그런 마음이 오히려 저에게 독이 될 것을 알기에, 위에서 말했던 저의 많은 다짐들과 일들이 그분이 저의 옆을 지켜줄 때 하지 못했던, 지금의 제가 온전히 그분만을 위할 수 있는 배려이고 존중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오늘도 저는 그분이 저에게 남기고 간 선물들과 안온함을 써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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